임신일기 - 19주차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 19주차

ND

2018년 4월28일

남편이 일주일 동안 미지근하게 배앓이를 하다 어젯밤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해 응급실에 갔다. 급성충수염이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단다. 충수염은 일반적으로 맹장염이라 말하는 그것이다. 아픈 건 남편인데 눈앞이 캄캄한 건 나다. 수술 후에는 지금보다 더 세밀한 간병이 필요할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남편은 물론 이제 나는 누가 돌봐주나. 

나조차도 나를 어느 정도는 환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한 상태를 병리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온당한 생각은 아니지만 스스로 제 몸 건사하기가 제법 힘들고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건 맞다. ‘아니, 그러면 국가에선 뭐 하나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제 몸 아니라고 여성에게만 임신을 장려한 거야?’ 하면서 수술 앞둔 남편 병실에 앉아 내 상황에 대한 분노만 키워버렸네.

2018년 4월29일

수술을 마친 남편은 병실에 입원해 회복 중이다. 입원실에 흔히 놓여있는 면회객 의자에 쪼그려 누워있는데 몸을 뒤척일 수가 없어 당연하게도 배가 계속 뭉친다. 수술 후 장 유착을 막기 위해 산책을 계속 시켜주라기에 남편을 데리고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어 다니는데 이 병동에서 내가 제일 걷는 게 힘들고 불편해 보인다. 쉬는 곳이 마땅치 않아 더 그렇다. 

환자들은 아픈 사람들이니 쉬고 보살핌을 받는 게 당연한데 임신한 여성은 몸이 불편하더라도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고 스스로 자기를 챙겨야만 하는 게 어째서 당연한 일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 사회는 “임신했으니까 힘든 게 당연하지.” 라는 말이 “그러니 쉬어야지.”가 아니라 “그러니 참아야지.” 로 이어지는 이상한 곳이라며 투덜투덜하는데 나만 너무 투덜대나 싶더라. 불편한 몸인데도 질병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서 작은 보살핌 조차 못 받고 쪽의자만이 내 자리가 되니 몸과 마음이 축축 쳐진다.

2018년 4월30일

나는 간병인으로는 아주 꽝이다. 임신 중엔 언제나 유산의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고 자궁이 한창 커지는 중이라 온 관절이 욱신거려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남편은 혼자 화장실에 가고 혼자 밥을 받아먹고 식기까지 혼자 반납한다. 환자에게 도움도 안되고 쪽의자에 누워 뭉친 배만 어루만지고 있는데도 네가 아무리 힘들어 봐야 수술한 남편만큼 힘들겠냐는 아빠 때문에 집에 못 가고 있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어린 오빠를 업고 누워계신 할아버지 똥오줌을 다 받았단다. 임신하면 원래 다 그런 건데 어디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면서 남편 혼자 입원실에 있게 하는 건 시댁이나 남들 보기 안 좋다며 쪽의자에 계속 누워만 있는 것도 나무란다. 아빠의 모든 말과 그 기저에 깔린 사고에 화가 난다. 임신도 안 해본 아빠가 임신이 다른 것보다 덜 힘들고 말고를 판단하는 것도, 딸 가진 모부만 유독 사돈의 눈치를 보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이전엔 이런 말들이 용인되어왔더라도 이제부턴 아니지. 절대 그럴 수 없지.

2018년 5월1일

문득 임신 중에 급성충수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졌다. 급성충수염은 원인이 불명이고 조심한다고 해서 조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방심할 수 없다. 충수염이 임부에게 발생했을 땐 임신 주수에 따라, 임부와 태아 상태에 따라 겪는 일과 처치가 다른 거 같았다. 아기가 뱃속에 있으니 임신으로 인한 통증인지 염증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위험을 인지하고 긴박하게 병원에 간대도 임산부라는 이유로 충수염 여부를 판단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보통은 CT 촬영으로 한번에 파악이 가능한데, 임부의 경우 CT 촬영이 태아에 위험을 가할 수 있어 피검사로 염증수치만 파악하고 증세를 종합해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수술을 한대도 마취제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수술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까다롭다. 환자가 정말 위험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태아의 안녕을 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어떤 사례에서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소견을 받아오지 않고서는 충수염 진단도 내려주지 않았단다. 임부의 충수염 수술의 경우, 태동을 확인하고 자궁수축을 안정시키는 게 가장 중요해 충수염 수술의 성공 여부보다 조산위험을 극복하는 것을 관건으로 둔다는데 임부 충수염에 대해 찾아볼수록 최선은 없고 차선만 고민할 뿐이더라. 

실은, 차선이라 해도 임부가 아니라 태아에게 어떤 게 차선일지 고민하는거지. 아무리 제 몸을 잘 살피고 조심한다 해도 원인 불명인 질병이 임부에게 발생했을 때 임부의 입장에서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임부를 두고 ‘태아를 위험에 빠뜨린 엄마’라는 오명 씌우기를 더 먼저 하는 거 같아 씁쓸해졌다.

2018년 5월3일

올해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무실의 동료들은 내년 달력을 보며 휴가를 계획한다. 아, 나는 이제 아기가 태어나면 한동안은 공휴일에 샌드위치 연가를 써도 여행을 못 가겠구나.

눈 딱 감고 모부나 시모부에게 아기를 맡기고 내년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볼까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알아보는데 옆에서 동료가 우리 회사에선 육아휴직기간에 출입국 사실이 발생하면 회사에 보고해야 하고 아기를 동반하지 않은 경우엔 소명해야 할 거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육아휴직 때는 육아가 본업이기 때문에 아기를 돌보지 않으면서 여행을 간다면 업무태만에 해당하고, 업무태만은 해고사유도 될 수 있단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공무원에 대해서는 기관에 따라 육아휴직 중 출입국 사항을 확인하더라. 이는 휴직기간 중 휴직사유와 달리 휴직목적에 위배될 시 복직을 명할 수 있다는 공무원임용령의 규정을 근거로 한다. 회사를 다니는 중이라도 정해진 업무시간이 아니라면 온전히 개인의 시간이고 연간 15일 이상의 법정휴가 역시 사용자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육아휴직 중엔 퇴근도 주말도 휴가도 없이 그 ‘본업’이라는 육아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 일까. 나는 공무원도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휴직기간 중 휴직 목적에 맞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며 출입국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서를 요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침해인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이 놀라운 사실은 육아휴직기간에 아기를 동반하지 않고 해외장기여행 혹은 어학연수를 가거나 대학원 진학을 한 공무원들이 발각되어 휴직 중 다른 활동에 대해 엄격한 확인이 행해졌다고 한다. 아니, 그 바쁘다는 육아 중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다고? 다양한 기사를 확인해보니 놀랍지도 않게 모두 남성 공무원들이 벌인 일이었다. 육아를 핑계로 휴직계를 낸 후 아기의 양육은 모두 아내에게 맡긴 채 자기의 승진과 여가를 위해 시간을 이용한 남성들 때문에 진짜 아기를 양육하는 사람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

행정도 참 그렇다. 육아휴직을 악용한 남성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탄탄한 장치를 구축하기보다는 모든 육아휴직자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행정적 나태함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자의로 타의로 육아휴직을 떠맡게 된 여성을 더 집에만 가두고야 말았다. 고민않는 행정가들은 이 죄값을 어떻게 치루려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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