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33주차. 이런 사회에 아기를 낳아도 될까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33주차. 이런 사회에 아기를 낳아도 될까

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8월4일

계약한 산후조리원에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산전마사지를 받고 왔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사지를 받으니 발 부종도 다소 진정된 거 같고, 온통 뻐근하던 몸이 조금은 유연해진 거 같다. 너무 거대해져 내 손이 닿지 않는 나의 몸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만져주는 사람의 손길은 역시 좋구나. 이래서 다들 마사지, 마사지 하나보다. 이래서 다들 아기 낳고 꼭 마사지를 많이 받아 붓기 빨리 빼고 산후통에서 빨리 빠져 나오라고 하나보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출산 후엔 돈 걱정 말고 무조건 마사지를 많이 받으라는 조언들이 내게는 애먼소리로 느껴졌다. 50분간 진행되는 산후마사지 1회 비용이 10만원이 넘는다. 구내식당 한 끼 식사에도 덜덜거리며 도시락을 싸먹던 내게, 너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단 말이 너무 엉뚱했다. 이제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마음으로 하는 이야긴지 이해하지만 여전히 내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다시 무심한 제도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건 물론, 출산 전후로 망가지는 몸을 회복하는 비용까지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을 수정하지는 않으면서 저출생을 재난에 빗대어 얘기하는 입법행정가들은 가임기 여성을 도대체 뭐라고 보는 걸까.

2018년 8월6일

아기가 급격하게 크는지 하루하루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1분, 아니 10초만 서 있어도 허리가 무너질 거 같다. 똑바로 걷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서 허리를 굽혀 걸어보기도 하고 뒤로 제껴보기도 하면서 나름 바른 자세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봐도 불편하다. 계속해봐야 허리가 망가지는 느낌만 든다.

아기를 2.8kg까지만 뱃속에서 키우다가 얼른 낳고 싶다는 푸념을 종종 한다. 그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 같다고. 그보다 더 큰 아기를 내 좁은 산도로 통과시켜 낳는게 무섭고, 낳아보려다 실패해 진통은 진통대로 다 겪어놓고도 수술해야 할까봐 무섭다. 지금보다 더 큰 몸으로 만삭을 살아야 할 것도 나는 너무 두렵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아기를 작게 낳고 싶다 말하면 다들 의아해한다. 의아를 넘어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느낀다. 저 편하자고 작고 온전하지 못한 아기를 낳으려는 이기적인 엄마라는 걸까? 나는 9개월간 숱한 고생을 겪으며 뱃속에서 아기를 키운 내가 지금도 너무 대단한데, 사회에서 '좋은 엄마'로 인정받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도대체 그 기준은 누가 만들고 판단하는 건지 모르겠다.

2018년 8월8일

"어쩌라구요. 너무 바라는 듯. 나랏돈으로 아기 키우려고 아기 낳았나요?"
“능력 안되면 에어컨, 건조기, 세탁기 적당히 사용하세요.”
"조금 있으면 아기 간식비 왜 안주냐고 할 거 같아요."
“기사처럼 이 사정 저 사정 다 봐주면 끝도 없습니다. 편법 쓰는 사람도 많아질거구요.”
“산모만 힘드냐? 전 국민이 다 힘들다. 요즘 엄마들 공짜 너무 바란다.”
“징징거림이 끝도 없네. 쌍둥이 낳으면 전기 무료로 해줘야 하냐?”
“할인혜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원인데 진짜 욕심이 끝도 없다.”
“복지 적당히 바래라. 무슨 상거지도 아니고. 하여간 인간성 더럽다.”

"전기료 공포 산모들, 할인제도 신청 이런 낭패를 봤나" 한겨례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신생아가 있는 집에는 전기세를 감면해주지만, 많은 산모들이 몸조리를 친정이나 시가에서 하는데 주민등록상 주거지만 할인혜택이 적용되어 실제론 무용지물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아기는 스스로 체온조절을 못해 에어컨이나 가습기, 제습기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고, 매일 아기 옷 세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할인이라고 해봤자 1만 6천원이 고작이라 턱없이 부족하단 이야기에 온통 저런 댓글 뿐이다. 팍팍한 시대에 아기를 낳고 기르는 젊은 부부들에게 건네는 작은 공감조차 그렇게 어려운가.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화가 나야 하는데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기가 곧 나올 텐데 이런 사회에서 아기 낳는 거, 너무 큰 죄는 아닐까.

2018년 8월10일

커피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가득해 "어, 앉을 곳이 없네."하며 객실 안을 두리번 거리던중 한 분이 자리를 내어 주셨다. 앉으려는데 저 멀리서 역무원이 오더니 "저기 아가씨, 다음부턴 이런데 서 있지 말고 바닥에 보면 빨간 스티커 있어요. 그게 임산부석이니까 그 앞에만 서 있어요."했다.

나는 역무원이 "저기 아가씨, 다음부턴..." 하고 말을 걸길래 ‘아, 이제 커피를 들고 타면 안 되는 건가?’ 싶었지, 임산부가 객실 내 아무 자리 앞에나 서 있었다고 혼날 줄은 몰랐지. 나는 아가씨도 아니고. 역무원의 말이 끝나자 내 옆에 있던 다른 분도 거들었다. "그냥 다니지 말고 임산부들 달고 다니는 거 있어요. 그거 하고 다녀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도 임산부석의 존재를 알아요. 그렇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 앞에 서 있는 게 무슨 소용이예요. 거기 서 있어도 아무도 안 비켜주던데요. 임산부 뱃지도 여기 있어요. 배가 이렇게 나왔어도 안 비켜줄 사람은 안 비켜줘요." 

내가 그렇게 입을 떼니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임산부가 자기 목소리로 말하니 아무래도 신기한 모양이다. 임산부 뱃지 달고 임산부석 앞에만 서 있으라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한 열차에 임산부 열 명이 타면 어떡할 건가. 그 자리에 서도 아무도 비켜주지 않는다 하니 그러면 역무원에게 말하란다. 이렇게 현실감각 없어도 괜찮은걸까. 이마저도 권력이라 생각한다.

이후 열차를 환승하고 젊은 여성분이 자리 양보해주셔서 감사하다 인사하던 중에 중년 남성에게 또 자리를 인터셉트 당했다. 지하철만 타면 판춘문예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사실 임산부에겐 일상이고 공감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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