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 27. 나의 '총 쏘는 게임'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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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 27. 나의 '총 쏘는 게임' 적응기

딜루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게임의 역사 속에서 소위 ‘총을 쏘는 게임들’(FPS나 TPS를 총칭한다.)은 게임 씬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진행했던 많은 게임 리뷰들을 보고 이미 짐작한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장르의 게임들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총을 쏘는 게임들’은 내게 있어 피할 요소 중 하나였다.

좋아하는 제작사인 ‘바이오웨어’가 총 쏘는 게임인 <Anthem>을 발매하기 전까지는. 그것도 무려 공식 한글로.

그럴싸한 티저 트레일러와 함께,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후속작이 그 프로젝트의 성공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들려오자 그 게임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퍼블리셔인 EA는 전통적으로 인수한 회사의 단물만 빨아먹고 해산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생각 보다 할 만한데?

팬심 때문에 시작했지만, 발매일에 살짝 겁을 먹었던 것에 비해 게임은 할만했다.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쾌감은 짜릿했고, 캐릭터의 직업에 따라 또 ‘지나치게’ 총 쏘는 게임 느낌도 나지 않아 적응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캐릭터의 명가 소리를 듣는 바이오웨어답게 다양한 매력의 캐릭터들이 인터미션 사이사이에 눈길을 끌었다. 여성 캐릭터들이 핵심 롤을 맡고 있고, 게임 속 NPC들은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척 만족스러웠다.

앤썸의 여성 캐릭터들은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이미지 제공 Bioware

그러나, <Anthem>은 게임이다. 메세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재밌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바이오웨어는 슈팅 게임의 명가는 아니었다. 아무리 캐릭터가 매력적이어도 긴 로딩을 기다렸다가 총을 잠깐 쏘고 십여분 남짓한 임무를 완수하면 또 긴 로딩을 기다렸다가 잠깐 말을 걸고 다시 로딩을 기다렸다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 처럼 목적지에 간 김에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초보자가 혼자 하기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존재했다. 만들다 만 게임처럼 곳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이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버그는 많았고, 나아가 발매 직후 게임을 플레이하면 PS4가 먹통이 된다는 치명적인 하드웨어 이슈까지 터졌다.

내가 내러티브에서 느꼈던 재미와는 별개로, 버그가 잡히고 안정화가 된 상태에서 게임을 다시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 와중에 <Anthem>을 재미있게 했으면 <디비전 2>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 듣게 된다. (그리고 4월 25일, 안타깝게도 Anthem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디비전 2>는 바이러스로 인해 황폐화된 워싱턴 D.C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세력에 맞서는 요원들의 이야기이다.

<Anthem>에서도 비슷하게 총을 쏘고 물건을 주웠으니 <디비전 2>도 적응하기 쉬울 거라는 개인적인 기대는 게임을 켜자마자 부서지고 말았다. 총이라고 해 봐야 저격총, 그냥 총, 권총 이 정도밖에 모르던 내게 낯선 용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총은 왜 돌격소총과 그냥 소총으로 구분되어있는지, 기관단총이랑 경기관총은 또 어떻게 다른 건지, 명중률은 왜 있고 (총이라는 건 그냥 과녁에 맞게 쏘면 되지 않나? 그게 빗나갈 수도 있단 소리인가?) 안정성은 도대체 무슨 소린지!

게임을 막 시작하면 낯선 용어에 당황하게 된다. 이미지 제공 Ubisoft

결정적으로, 나는 3D 멀미까지 있다. 웃긴 것이 하늘이 보이는 야외를 대낮에 돌아다닐 때는 멀미를 하지 않는데 어둡고 밀폐된 건물 안에서 물건을 찾거나 한밤중에 잘 보이지 않는 곳을 헤집고 돌아다닐 때는 멀미 증상이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총을 쏘더라도 <오버워치> 때는 멀미를 안 했는데!

왜 오버워치는 했는데 이건 안 돼?

이쯤 되니, 나 혼자서만 FPS나 TPS 장르를 어려워하는 건가 싶어 여기저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 남녀 청년 게이머의 플레이 취향과 성차 및 성 고정관념’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많은 여성 게이머들은 FPS나 TPS를 기피하고 있다. 이에 관한 이유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소재나 내러티브 자체에서 여성들이 이입할수 있는 요소가 매우 적고, 게임의 톤이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라는 관점이 존재한다. 게다가 위의 저널에 따르면 한국의 게이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MMORPG식 장르 구분에 익숙한 상태였다. <오버워치>의 캐릭터 분류는 기존에 MMO에서 보던 익숙한 문법에 가까웠다. <디비전 2>의 경우 다양한 무기 선택을 할 수 있고, 게임의 자유도가 높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초보자에게는 장벽이 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워싱턴 D.C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황이 되기 십상이다.

반면에 <오버워치>의 경우 캐릭터를 고르면 그 캐릭터의 무기만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학습의 폭이 좁아 접근이 쉬웠다. 게임의 전반적인 톤 또한 밝기 때문에 <오버워치>는 쉽게 대중화되었을 것이다.

내 몫을 하고 싶다

<Anthem>도 <디비전 2>도 ‘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혼자 플레이하기엔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네러티브에 집중하는 성향을 가진 게이머들의 경우 혼자 느긋하게 탐험을 하며 세계를 둘러보고, 환경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하며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파티 플레이를 권장하고 있는 게임들은 위의 유저들이 즐기는 요소를 충족시켜주기가 어렵다.

막상 이 상황에 닥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미지 제공 Ubisoft 

결국 사람과의 플레이가 일종의 장벽이 되는 셈이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숙련자와 게임을 하면 내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른 채 게임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고, 게임 내용을 알고 싶어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스토리를 읽으며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을 기다려줄지 알 수가 없다. 빠른 진행과 클리어는 성취감 대신 끌려가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렇다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하자니,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바닥에 눕게 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즉 ‘게임을 조작하지만 주도권은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것은 초보자들이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데 기여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비단 FPS나 TPS 장르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어

여러 번 죽을수록 게임에 익숙해진다고 하던가,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니 적어도 기관단총과 소총을 쏘는 타이밍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게임 패드로 하니 3d 멀미 증상도 줄어들었다. 조작과 세계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어 주변 오브젝트나 게임 속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보게 되고, 총알 세례를 피하느라 정신없어 듣지 못했던 무전기 속의 음성(자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임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짧은 순간의 미션 브리핑이나 현장감이 모국어가 아니라 자막으로 제공되는 탓도 컸으리라.

폐허 속에서 이야기를 추측하는 재미가 있다. 이미지 제공, Ubisoft

그렇게 게임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니 게임이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열쇠를 찾고, 라디오에 기록된 음성을 들으며 무슨 일이 있었나 추측하고, 무기를 조합하는 재미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 또한 증가했다. 이런 장르에 조금은 익숙해졌기 때문에, 나는 아마 이 경험으로 다른 ‘총 쏘는 게임’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대형 프랜차이즈 게임들은 제작비의 회수를 위해서라도 기존 게이머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집어넣고 있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배치하고, 이야기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해당 장르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을 시작했을때 그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어디까지 연구되고 있을까? 단순히 게임 속에서 난이도를 낮추는 것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수 없이 낯선 경험 속에서 그런 의문이 남았다.

<Anthem> 발매일 : 2019년 2월 22일 발매, 공식 한글화

<디비전 2> 발매일 : 2019년 3월 15일 발매, 공식 한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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