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에서 내가 애인을 바이크 투어로 꼬시기 위해 렌트해 갔던 바이크는 대만 브랜드 SYM의 ‘다운타운125i’라는 모델이었다. 125cc라는 배기량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 모델은 우리나라에선 편의상 ‘빅 스쿠터’로 구분되곤 한다.
‘빅 스쿠터’는 보통 250cc를 넘는 배기량에 15인치 이상의 휠을 가진 커다란 스쿠터들을 말한다. 여기서 휠의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다른 (상대적으로) 작은 스쿠터들이 12~14인치 사이의 휠을 장착하는것에 비하면 15인치는 매우 큰 사이즈라고 할 수 있다.
빅 스쿠터, 장점과 단점
작은 휠의 바이크는 조작감이 경쾌하다. 시트고*1도 크게 낮춰준다. 연비도 훨씬 좋다. 휠이 커지면 핸들을 휙휙 돌리기 힘들 정도로 핸들링이 둔해지지만 도로 주파력과 제동력, 그리고 승차감 등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일장일단이 있다.
커다란 휠을 채용한 빅 스쿠터의 장점은 굳이 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승차감이 좋을 것이고, 주파력이 좋을 것이고, 제동력도 좋을 것이다. 커다란 차체에서 오는 안정감 있는 텐덤석은 덤으로 딸려온다. 첫 바이크 투어를 뒷자리에서 경험하게 될 나의 애인에게 이 장점들은 맞춘 것처럼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빅 스쿠터’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당장 구글에서 빅 스쿠터(Big Scooter)를 검색하면 친절하게도 맥시 스쿠터(Maxi Scooter)라는 단어로 고쳐서 검색결과를 보여준다. ‘핸드폰’처럼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단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어의 정통성(?)은 접어두자. 어쨌든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빅 스쿠터’만큼 빅 스쿠터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으니까.
나는 125cc 배기량을 선택했었지만, 빅 스쿠터 또는 맥시 스쿠터의 주력 배기량은 250cc 이상이다. 맥시 스쿠터의 커다란 덩치를 감당하기 위해선 그 정도의 배기량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미들급인 600cc이상에서 맥시 스쿠터들은 빛을 발한다. 장거리 운행에 특화된 편안한 승차감과 넉넉한 배기량은 출시 당시에는 교외에 집을 두고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타겟팅한 것이었지만, 주말에 파트너와 함께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함께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는 기어를 바꿀 수 없는 스쿠터는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혼자 타고 다닐 때의 이야기. 언제나 함께 하는 텐덤 파트너가 있다면 이 맥시 스쿠터야말로 두 사람을 위한 바이크다.
우선 기어를 변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기어 변속 충격을 겪을 필요가 없다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운전자 입장에서야 내가 지금 기어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어 변속의 충격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가지만, 뒷 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풍경을 보고 있는 텐덤자 입장에서는 ‘덜컥’하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 특히 속도를 낮추기 위해 급하게 기어를 내리는 경우에는 불쾌함까지 느낄 정도다. ‘동승자를 위한 부드러운 기어 변속’은 스틱 자동차 시절에나 있었던 옛날 일이 아니다. 바이크 운전자들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스쿠터의 기본 옵션인 트렁크는 맥시 스쿠터의 큰 차체와 더해져 헬멧 두 개도 들어갈 만큼의 넓은 공간을 보장한다. 또한 과장 조금 보태서 소파 같은 착석감은 장거리 운전에서 쉽게 지치지 않게 도와준다. 더불어 가장 큰 장점 하나! 운전석보다 조금 높은 맥시 스쿠터의 텐덤석은 텐덤한 사람에게도 경쾌한 시야를 보장한다(대체로 다른 카테고리의 바이크들은 텐덤석의 시야를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
과격한 일부 라이더를
조심하세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맥시 스쿠터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때때로 '극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 중에 때때로 나쁜 선입견을 갖게 하는 주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동 기어 변속과 대배기량의 시원시원한 가속감이 더해진 결과, 맥시 스쿠터는 도심과 교외에서 과격한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다수 양산해 냈다. 대도시 주변의 산길에서 다른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추월하며 지나가는 커다란 스쿠터들 때문에 깜짝 놀라는 자동차 운전자와 라이더가 한둘이 아니다.
한편, 한 손으로도 편하게 주행을 할 수 있다는 스쿠터의 특징과, 비싼 가격의 고급스러운 바이크라는 점이 더해져서 일수 명함을 돌리는 사람들에게도 이 맥시 스쿠터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손으로는 명함을 던지고 한 손으로는 유유히 스로틀을 감으며 골목을 돌아다니는 커다란 스쿠터를 본 사람들 역시 그리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단점마저도 결국 맥시 스쿠터의 장점 때문에 일어난 일인 만큼, 이 커다랗고 편안한 바이크는 지금 시대에 가장 완벽한 탈것일지도 모르겠다. 팩트 한 대접에 거짓말 한 숟갈 보태면 세단만큼의 안락함에, 오픈카보다 시원한 개방감, 그리고 경차 이상의 연비를 자랑하는 완벽한 탈것으로 소개할 수도 있을 정도다.
자, 그러니 바이크를 편안하게 타고 싶으면서 종종 장거리 여행을 떠나고 싶으시다면, 맥시 스쿠터를 사자. 바이크 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애인이나 파트너가 있다면? 맥시 스쿠터를 사서 뒤에 태우고 교외의 카페라도 다녀와 보자. 너무 억지라고? 제가 바로 이 맥시 스쿠터로 바이크 극혐인 사람을 꼬셔서 같이 전국을 쏘다니고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