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중랑구 망우리에 사셨다. 어렸을 적, 엄마가 나와 두 동생들을 안고 끌며 힘들게 당신의 본가에 가셨던 것이 떠오른다. 아빠 없이 그곳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다가,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나에게는 충청남도 한복판에 있던 아빠의 본가보다도 같은 서울 안에 있는 엄마의 본가가 더 먼 곳이었다.
그 생각은 십 대까지 그대로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같은 반에 청량리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속으로 ‘그렇게 먼 곳에서 여기까지 등교를 하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도 있다.
바이크가 바꾼 세상
하지만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고향이 사실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순식간에 서울의 끝과 끝을 왔다갔다 하니까. 우리 집은 서울 남서쪽 끝이고, 엄마의 고향은 북동쪽 끝이었어도, 이제 나에게는 겨우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바이크는 내 세상의 거리 개념을 완전히 바꿨다. 속초도 네다섯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고, 해남 정도는 아침에 출발해서 죽어라고 내리 달리면 해질 때 즈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만큼 내 세계는 작아지면서 동시에 넓어진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 세상을 넓게 만들어줬고, 그 곳에 빨리 도착하는 만큼 넓어진 세상이 나를 향해 모여들었다. 모터의 발명이 산업화를 가속화시켰듯, 모터를 만난 나의 세상도 급속도로 압축되었다.
물론 자동차를 운전해도 이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바이크만의 장점이 또 있다. 바이크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운송 수단이다. 자전거보다도 쉽게 타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물론 능숙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렇게 쉬운데 강하고 거친 이미지까지 있다. 그래서 자동차를 몰 줄 아는 것과 바이크를 몰 줄 아는 것에는 어쩐지 한강만큼의 거리가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바이크에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갖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보이면 언제나 영업을 시도했다. 바이크를 왜 타야 하는지, 바이크가 얼마나 재밌는지,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편한지. 말재주가 없어서인지 항상 실패했지만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 명이라도 타게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갖고.
하지만 장사가 잘 안되면 조금 의기소침해지는 법.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대대적으로 영업을 해보려고 아예 좌판을 깔았다.
바이크 하세요
바이크는 접근성이 좋다. 가격도 저렴하고 앞서 말했듯 다루기도 쉽다.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도 바이크라면 갈 수 있을 때가 많다. 마을에 읍내로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간신히 한 대가 올까말까한 시골 작은 마을과,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대중교통이 전무한 작은 휴양 도시에서 바이크를 더욱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거다.
하지만 당신이 대도시에 살고 있고,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언제든지 택시를 잡아탈 수 있다고 해도 당신은 바이크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라. 일상에 지친 어느 날, SNS를 보다가 누군가가 올린 풍경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열심히 검색해 보니 지방 소도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다. 너무 가고 싶어져서 머리를 굴려본다. 여기에서부터 그 소도시까지 기차나 시외버스로 가면, 거기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또…. 에라, 머리 복잡해져서 포기하고 언젠가를 기약한다.
하지만 당신이 바이크가 있다면? 헬멧 챙겨서 열쇠 들고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끝이다. 물론 자동차가 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바이크라면 이 자유로움을 무려 만 16세에도 누릴 수 있다.
바이크 탄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바이크에 미친 사람처럼 타고 다닐 때도 있었고, 주차장에 세워만 놓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바이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이크는 단순한 운송 수단에서 취미 생활로, 그리고 내 인생을 대변하는 것으로 점점 발전해왔다.
이제 바이크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오래된 연인과 같다. 더 이상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절대 쉽게 꺼지지 않는. 바이크를 타면서 항상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이크를 타게 된 것 자체를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바이크를 통해 왔었을 때에도.
그래서 나는 이 즐거움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다. 바이크야말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탈 것이니까.
<그래서 바이크> 시리즈에서는 바이크를 타면서 겪었던 일들에 관한 에피소드와, 그 때 당시 인연을 맺었던 바이크 브랜드와 모델을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번갈아 연재될 예정이다. 바이크에 대한 시시콜콜한 추억도 공유하는 동시에, 다양한 바이크 브랜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도 준비했다. 바이크 라이더 동지들, 바이크에 관심만 있는 사람들, 관심은 없었지만 궁금한 사람들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