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이크 5. 나의 첫 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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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이크 5. 나의 첫 바이크

이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동호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엄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대인배에 보살이었다(만약 누가 지금 나의 바이크를 매일 같이 빌려가려고 하면 열쇠를 어디다 숨겨버릴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엄마의 기분까지는 미처 배려하지 못했다. 이게 다 바이크가 너무 재밌었던 탓이다.

그저 신이 나서 엄마의 스쿠터가 정말 내것인양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매일 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날잡아서 편도 2시간 정도 걸리는 강화도까지 가기도 했었다. 엄마는 당신이 직접 타시려고 사 놓은 바이크의 열쇠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북악산 스카이웨이에 올라가는 도로 위에서 슬립*1까지 하자 더이상 양심의 가책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 더 자유롭게 바이크를 타는 방법, 혹여 사고나 고장이 나더라도 누구에게도 죄송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다. 나의 바이크를 사는 것.

일러스트 이민

첫 바이크 구매기

돈은 이전에 알바하면서 모아뒀던 것과 이것저것 하면 125cc 짜리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떤 모델을 살지 고민할 차례.

자동차처럼, 바이크도 생김새나 용도 등으로 나뉘어진 카테고리가 있다. 세분화하면 아주 오래된 것부터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까지 열 손가락으로는 세지도 못할 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쉽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분류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바이크 위에 앉는 방법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깊은 트렁크가 있고 그 위에 안장이 있어, 의자에 앉듯이 탈 수 있는 것은 스쿠터. 

경주용, 혹은 폭주족이 타는 시끄러운 ‘오토바이’로 취급되는, 엎드리듯 타는 것은 대체로 레이스 레플리카(줄여서 그냥 레플리카, 혹은 R차). 

‘바이크’라는 단어의 가장 기본형으로 생겨서 스쿠터와 레플리카 그 중간지점 같은 자세로 타는 것은 네이키드.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여기서 용도와 스타일에 따라 더 세분화 된 소분류가 있지만 이 부분은 당신이 바이크에 관심을 갖게 될 때의 지적희열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스쿠터는 그동안 타봤으니까 다른 걸 타고 싶었다. 당시 125cc 급 레플리카는 멋있는 게 없었다. 물론 싸고 멋진 걸 찾는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왕이면 첫 바이큰데 멋진 걸 타고 싶었다. 멋진 헬멧도 쓰고, 멋진 장비도 차고 싶었다. 그래서 네이키드 바이크를 사기로 결정!

네이키드 바이크라는 대분류를 정하면, 이제 소분류를 정해야 한다. 125cc에서 고를 만한 모델에는 클래식한 타입과 스포티한 타입이 있었다. 내 취향은 클래식 타입에 좀 더 가까웠다. 클래식 네이키드는 과거 ‘카페 레이서*2’란 이름으로 펑크락과 함께 런던의 한 시대를 주름잡던 모델을 따라해서 만든 것이다. 원래 펑크락을 좋아하는 데다 어렸을 적 클리퍼*에 체인에 가죽자켓을 즐겨 입던 나를 위한 바이크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클래식 네이키드를 위한 보호장구들이 다양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장비가 스포티한 디자인이었다. 물론 멋스러우면서도 안전하고 클래시컬한 보호장구도 있었지만, 그런 건 비쌌다. 어차피 제대로 타보자고 마음 먹은 거, 좀 더 운동성능이 좋은 바이크를 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결국에는 스포츠 네이키드를 사기로 결정했다. 

아, 여기서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스포츠 바이크도 탔다가 클래식 바이크도 타면 안 되나? 당연히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장비를 최소 2세트 이상 갖춰야 한다. 바이크는 차와 달리 탑승자의 전신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탑승자의 옷매무새를 바이크의 스타일과 동일하게 갖추는 것 또한 바이크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스포티한 장비를 갖추고 클래식 바이크를 탄다고 누가 잡아가는 건 아니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그건 멋지지 않다! 난 멋진 바이크를 멋진 모습으로 타고 싶다! 보호장구와 안전장비도 바이크를 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라면, 당연히 통일성을 갖추고 싶다. 그것까지 나의 바이크인 것이다.

카테고리가 정해지자, 구입해야 할 모델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125cc급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나는 국산 브랜드인 대림자동차의 VJ125, 일명 ‘로드윈’이라고 불리는 모델을 구입하기로 했다. 당시 125cc의 스포츠 네이키드는 그 모델밖에 없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저배기량 붐이 일어나면서 폭이 넓어졌지만.

나의 첫 바이크, 로드윈
직접 타고 찍은 모습

인터넷에서 좋은 중고 물건을 고르고, 구입하러 가기까지는 즐거웠다. 동호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거래를 하러 간 것까지도. 하지만 판매자에게 돈을 건네고 내 바이크가 되자마자 문제가 시작되었다.

가장 큰 난관은 내가 기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동차 면허도 자동으로 따서 기어의 개념도 몰랐다. 왜 기어를 넣은 상태에서 클러치 레버를 놓으면 시동이 꺼지는 걸까? 커다란 사거리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진 적도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다시 시동을 켜고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게 억겁처럼 느껴졌다.

바이크에 올라 앉으면 발 앞꿈치가 겨우 닿아, 바이크가 조금만 기울어져도 중심을 잃어 넘어지기 일쑤였다. 내린 상태에서도 바이크의 무게가 버거워 잘 다루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단 시동을 걸고 중심을 잘 잡아 달리기 시작하면 그렇게 재밌는 것도 없었다. 결국 답은 하나, 그냥 많이 타서 몸이 익숙해지게 만드는 수 밖에는 없었다.

바이크 삼매경

평일 내내 밤바리를 다니다가, 토요일이 돌아오면 투어를 떠났다. 파주, 강릉과 속초, 그리고 제주도까지 곳곳을 누볐다. 우리나라에 가볼만한 곳이 그렇게 많은지, 한적하고 예쁜 도로가 그렇게 많은지, 일기예보에 나오지 않는 비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강원도는 정말 얼마나 산이 많은지 바이크를 타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이 해방감은 자동차 여행으로는 느껴보지 못할 감정이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탈 것에 앉아 달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 햇살의 따뜻함과 바람의 서늘함, 그리고 나무들의 싱그러움까지 피부로 눈으로 코로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남쪽으로 계속 달리고 있다 보면 체감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까지 느껴졌다. 세상 온갖 것이 신기했다. 

평소에는 눈도 뜨지 않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장비를 챙겨서 바이크 앞으로 나오는 날이 쌓여가면서, 점점 라이딩이 자연스러워졌다. 딴 생각을 하면서도 기어를 바꾸고, 불안정하게 기우뚱 할 때 다리 힘으로 버티는 데까지 약 일 년 정도 걸렸다. 같이 투어를 다니는 사람들도 더 이상 나를 불안한 눈길로 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슬슬 배기량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때였다.


*1 슬립: 바이크가 다양한 이유로 미끄러져서 일어나는 사고
*2 카페 레이서: 1950년대 영국의 바이크 문화를 이루던 무리의 한 종류. 카페에서 만난 둘 또는 그 이상의 인원이 지정한 장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카페에서 다른 카페로 이동하는 식으로 하던 경주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로, 최근에는 그 시절의 스타일을 복각한 바이크에 붙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3 클리퍼: 밑창을 고무 소재로 두껍게 덧댄 구두. 통굽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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