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닌 tour
바이크 영업을 하겠다고 기세등등 시작해 놓고, 바이크의 즐거움보다는 바이크를 어떻게 샀고, 어떻게 골랐고, 면허를 어떻게 땄는지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늘어 놓았다. 여기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이제 바이크를 어떻게 하면 탈 수 있는지 기본 스텝에 대해서는 알게 되셨으리라.
물론 바이크를 고르고, 구입하고, 면허를 따는 순간도 라이더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결국 바이크를 ‘타기’ 위한 과정이다. 바이크는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혼자 타든, 둘이 타든, 여럿이 타든, 어쨌든 바이크를 타고 일상을 벗어나 달리는 것. 라이더들은 그것을 ‘투어’라고 한다. ‘투어(tour)’는 한 공간을 여행하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방문하는 여행을 의미하는 단어다. 바이크 여행은 어딘가에 도착해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그 곳으로 향하는 여정까지도 모두 ‘여행’의 일부다.
이 기분은 실제로 바이크를 타고 어딘가 다녀오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내가 F800R을 샀을 당시에 사귀고 있던 애인은 바이크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 험한 친구들 때문에 ‘오토바이’는 위험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와 사귀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F800R을 타고 나타났다. 마치 숫공작이 꼬리깃을 펼쳐 어필하는 것처럼, 그에게 내 매력을 어필한 것이다. 그 당시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멋진 모습은 바로 ‘바이크를 타는 나’였으니까. 당연히 그는 너무 멋지다며 신기해했다(나와 사귄 지 일주일밖에 안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전까지 그렇게 큰 바이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이상은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우리 사이에 낮은 담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사랑하는 이 친구에게 내가 사랑하는 바이크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바이크를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부러워서 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투어를 다녀온 날이면 집에 가기 전에 애인을 만나서 그 날의 투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신나게 자랑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투어를 다녀온 사람은 잔뜩 떡진 머리에, 눈에는 피곤함이 한 가득 달려 있는 채로, 누가 봐도 지친 사람의 몰골이기 일쑤라는 말이다. 그는 가끔 나에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투어는 왜 가는 거야? 덥고 춥고 힘들잖아. 차를 타고 가면 훨씬 편하지 않아?”
“바이크로 가는 여행과 자동차로 가는 여행은 완전히 달라. 자동차는 도착하고서부터가 여행이지만 바이크는 목적지까지 가는 그 자체가 여행이라고!”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해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들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한 4월의 어느 날, 편도 50km 정도 떨어진 적당한 곳으로 투어를 계획했다. 배기량은 125cc인데 미들급인 내 바이크보다도 커 보이는 빅 스쿠터를 렌트샵에서 빌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애인에게 추울테니 옷을 단단히 입고 나오라는 이야기를 하고 집 앞으로 달려갔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왔을 것이라 예상하고 주차장에 내려온 그의 당황한 표정을 말 그대로 뒤에 앉히고 무작정 출발했다.
목적지로 정한 곳은 석모도.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두어 시간 정도 달려서 바다를 볼 수 있는데다가, 배를 타고 들어간다는 상징성도 있었다. 이 날의 투어는 평소 다니던 것과 비교하면 신경 쓸 것도 많고, 도로 상태도 나쁘고, 공사하고 있는 구간도 많은데다가, 나보다 무거운 상대를 텐덤*1하여 달리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던 지라, 평소처럼 맘껏 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동차로 오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몸을 바싹 붙이고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보며 긴 시간을 보내거나,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꺄르륵 웃으며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헬멧 셀카를 찍는 것. 오돌오돌 떨면서 길가 편의점에 달려 들어가거나, 석양이 내리는 풍경 속을 달리며 ‘지금 우리가 얼마나 멋있을까’ 함께 자뻑에 빠지는 것. 작은 배에 바이크를 싣고 내리고, 한적한 주차장 공터에서 그의 첫 바이크 운전을 지켜보며 놀리던 기억. 해안도로를 달리던 순간, 말없이 함께 공유하던 순간들. 이 모든 기억이 섞여 진득하게 남게 되었다. 그날 밤에는 둘 중 아무도 잠이 들 수 없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서로를 더욱 깊게 탐색하였다.
평소처럼 자동차로 왔다면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주차장에서 내려 바다를 바라본 순간만이 편린으로 남았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그마저도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투어에서 돌아온 그는 곧바로 바이크에 입문하였고, 함께 투어를 다니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이야기로 곧장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그는 가끔씩 우리의 첫 번째 투어를 회상했고, 바이크 타고 싶다는 이야기를 불쑥불쑥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주말을 불태워 가며 목적없이 투어를 다녀오는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지는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결국 바이크에 입문하고야 만다. 투어의 즐거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바이크의 편리한 기동력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드디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에게는 걱정하지 않고 등 뒤를 맡길 수 있고, 혼자 바라보던 풍경을 같이 바라보며 재잘재잘 떠들 수 있고, 가끔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말해주는 투어 메이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