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이크 3. '오토바이'가 아닌 '바이크'

알다바이크

그래서 바이크 3. '오토바이'가 아닌 '바이크'

이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처음부터 바이크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10대 시절에는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앞에 왕복 6차선의 매우 큰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여의도로 이어졌는데, 그 때는 아직도 여의도 공원 앞에서 광복절 마다 9시 뉴스를 장식하던 폭주모임이 아직도 열리고 있었다. 여름 방학 동안 새벽에 몰래 거실에 나와 엄마 아빠의 눈을 피해 전화선을 컴퓨터 본체에 연결하던 어린 나에게 귀를 찢는 폭주족 ‘오토바이’들이 내는 소음이 달가울리 없었다.

시간이 흘러 스무살을 훌쩍 넘긴 2007년 여름. 나는 다니던 대학도 휴학하고, 특별히 만나는 친구들도 없이 두문불출 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의욕이 샘솟아야 할 스무살이었지만, 매일매일 삶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때였다.

머리를 비우고 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다가, 오피스 상권에 있는 미국 스타일의 맥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맥주집인 만큼 저녁에 시작하여 새벽 즈음에 문을 닫는 곳이었는데, 내가 맡은 시프트는 버스가 끊기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시간까지였다. 일이 점점 능숙해지자, 일을 끝내고 나오는 시간도 같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시급도 그만큼 늘어나긴 했지만 그 시급을 고스란히 택시비로 써야할 판이었다. 집에서 아주 멀지 않았던지라 집까지 걸어갈 수 있을 법도 했지만, 고단한 몸으로 한 시간이나 걸을 생각을 하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 때, 엄마가 갑자기 바이크를 하나 사오셨다. 그 당시에도 고장으로 말이 많았던 중국산의 저렴한 스쿠터에 심지어 중고로 구입하신거였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정말 멋진 디자인의 ‘오토바이’였다. 갑자기 그걸 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일러스트 이민

처음엔 운송수단

타기로 마음 먹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 면허 취득이었다. 엄마의 스쿠터는 125cc 짜리였고, 자동차 면허로도 운행할 수 있었다. 곧바로 자동차 운전 학원에 등록하러 갔다.

학원에선 으레 그렇듯, 나는 수강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서 무난하게 면허를 취득했다. 면허가 나오자마자 아빠는 집 앞 주차장에 방치되다시피 세워져 있는 구형 코란도의 키를 주셨지만, 나는 늘 엄마의 스쿠터를 노리곤 했다. 엄마도 당신이 타기 위해 사신 스쿠터였지만, 딸이 알바를 하며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일이 점점 잦아지자 자연스럽게 나에게 열쇠를 빌려 주셨다.

스쿠터를 타고 출근하기 시작하자, 아르바이트 하는 맥주 전문점에서는 나를 아예 마감조로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그 시절부터 밤잠이 없었던지라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그 때까지도 나에게 스쿠터는 그저 편리한 운송 수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피곤하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여느 때 처럼 택시만 간간히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을 그런 시간. 별 생각없이 오른손으로 스로틀*1을 감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왕복 6차선의 넓고 조용한 도로 위에 어느새 나와 내 작은 바이크만 남게 되자, 여름 새벽의 가벼운 공기를 마치 파도처럼 가르며 달리고 있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그 곳에는 도로를 지키고 있는 가로등들이 나를 위한 스포트라이트처럼 밝았다.

갑자기 내가 어느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느껴졌다. 매일같이 지나가는 길이 갑자기 특별해졌다. 그 순간, 나는 앞으로도 평생 바이크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인데도, 그 때의 그 풍경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조용히 마음 속에서 떠오른다.

일러스트 이민

사랑을 담아, 바이크

이튿날, 인터넷에서 ‘오토바이 동호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고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오토바이’라고 부르지 않고, ‘바이크’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의아해서 조금 찾아보니, 오토바이란 단어는 일본 특유의 ‘긴 영어 단어 짧게 줄여 부르기’가 적용되어 생겼다고 한다. 줄였다면, 원래 단어는 오토-바이크 였을까? 하지만 학교에서 이륜차는 영어로 ‘모터싸이클’이라고 배웠는데.

아무튼 한국 사회에서 ‘오토바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두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뜻하는 단어를 넘어서, 폭주족, 난폭한 운전, 소란스러움, 어지러움 같은 그런 이미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이전까지는 ‘오토바이’에 그런 것을 투영해 왔으니까.

그래서 바이크를 레저로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 탈것에 ‘오토바이’라는 이름보다, 아직 험한 이미지가 덧입혀지지 않은 ‘바이크’란 단어로 부르고 있었다. 훨씬 더 발음하기에도 쉽고, 어쩐지 세련된 느낌인데다가, ‘오토바이’보다 한 음절이나 적으니, 나도 이 단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란하게만 느껴졌던 두 바퀴의 ‘오토바이’가 ‘바이크’로 바뀌어가면서, 꾸역꾸역 살아가던 하루하루가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욕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글을 올리며 친해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엄마의 스쿠터를 끌고 밤바리*2에도 나가봤다. 새로운 헬멧이 사고 싶어졌고, 엄마의 스쿠터가 아니라 나의 바이크가 갖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의 사람들은 어느새 10여 년을 알고 지내며 학창 시절의 친구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들이 되었다.

바이크는 나에게 삶의 의욕과, 즐거운 시간들, 그리고 친구들까지 주었다. 그 때 엄마가 스쿠터를 사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가 바이크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1 스로틀: 바이크의 핸들 오른쪽에 있는 조작부. 단순히 고무로 된 손잡이인 왼쪽의 것과는 달리 오른쪽에 있는 스로틀은 손으로 잡으면 몸 쪽으로 감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자동차의 엑셀레이터 페달 역할을 한다.
*2 밤바리: 바이크 동호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자동차 통행이 적어지는 밤 늦은 시각에 특정한 장소를 지정해서 자유롭게 모이는 것을 지칭한다. ‘바리’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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