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멀리 가려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애초에 바이크의 전 단계인 자전거부터가 스스로의 힘으로 멀리 가기 위해서 발명된 것인데, 그런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 더 멀리, 더 빨리 가려고 한 것이 바로 바이크니까.
나 역시 바이크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바이크를 타고 일상을 벗어나고, 여행을 떠나고, 다른 지역,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그러니까 최종 목적지가 되는 바이크는 어쩐지 정해져 있는 느낌이다.
더 멀리, 더 빨리 가기 위해 타는 바이크. 이 바이크들은 주로 투어러라고 불린다. 크게는 (그냥)투어러와 아메리칸 투어러, 그리고 듀얼퍼포즈로 구분하곤 한다.
가장 먼 곳으로
가장 빨리
투어러가 포장된 모든 도로 위에서 더 빨리, 더 멀리, 게다가 더 편하게 가는 바이크라면, 아메리칸 투어러는 포장된 길, 그 중에서도 길게 뻗은 직선 도로를 빠르고 편안하게 달리는 바이크다. 듀얼퍼포즈는 이 둘과는 조금 더 다르다. 포장된 길 뿐만이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곳까지도 달릴 수 있어, 앞의 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바이크다. 하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 같다. ‘바이크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가고 싶다’.
민첩하고 날렵하고 가벼운, 일반적인 바이크의 특성과 모두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투어러는, 일단 그 크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유럽 브랜드라면 으레 멋들어진 투어러 하나 쯤은 가장 비싼 라인업에 만들어 두어야 할 정도로 유럽에서 특히 강세다.
리어에 달려있는 커다란 탑케이스에 하루 이틀 정도의 여행 물품을 담아둔 채로 알프스의 과격한 와인딩 도로에서도 물 흐르듯 달리다가, 아우토반 위에서는 자동차보다 더 빨리 달리면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바이크의 고속도로 주행이 합법이다) 하루만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를 넘나들며 달리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이라고 하면 적절한 설명일까?
‘가장 크고 가장 비싼 모델’이 으레 그렇듯이, 투어러 장르의 바이크는 비싼 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기 위해 (혹은 비싼 가격 값을 하기 위해) 갖출 수 있는 모든 첨단기술과 사양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투어러의 운전석에는 항상 버튼이 가득하다. 그 버튼은 핸들 앞의 윈드스크린*1의 높낮이를 조정하거나, 장착되어 있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간혹 히터를 켜거나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는 등 정말 '자동차스러운 기능'을 작동시키는 것도 있다. 후진 기어가 있거나, 에어백이 가장 먼저 적용된 바이크 역시 이 투어러 모델이다.
아메리칸 투어러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 시작된 장르다. 앞휠과 뒷휠 사이의 거리가 멀고, 시트의 포지션이 낮으며, 핸들은 상대적으로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아메리칸 투어러의 시트 위에 앉으면 상체는 꽤 뒷쪽에 둔 채 다리와 팔을 앞 쪽으로 쭉 뻗은 자세가 된다. 팔다리의 모든 관절을 접어서 바이크를 무릎으로 단단히 붙잡은 채 앉아야 하는 다른 바이크들을 타다가 아메리칸 투어러 위에 앉게 되면 꽤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앉으면 다른 바이크들에 앉았을 때와는 달리 접혀진 관절이 없어서 어디 하나 저리는 부분 없이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포지션을 만들기 위해 길어진 휠 베이스 때문에 아메리칸 투어러는 코너링에 약하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지만 휠 베이스가 짧은 모델일수록 코너링에 강하고, 휠 베이스가 길수록 직선거리에 강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괜찮다. 아메리칸 투어러는 정말로 미국의 쭉 뻗은 도로들을 달리기 위해 태어난 장르니까. 적어도 길고 쭉 뻗은 도로에서만큼은 아메리칸 투어러만큼 빠르면서 편하게 달릴 수 있는 바이크는 드물다.
듀얼퍼포즈는 이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하게 생긴 바이크다. 프론트가 마치 새의 부리처럼 툭 튀어나와있고, 겅중하게 키가 높아 곤충을 닮았다는 사람도, 새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공통적인 의견은 ‘이상하게 생겼어’다.
하지만 이 이상한 외양이 이 이상한 바이크를 더욱 멀리 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훌쩍 높은 차체는 길이가 긴 오프로드용 서스펜션을 채용했기 때문으로, 이 서스펜션 덕분에 듀얼퍼포즈는 매끈한 포장길은 물론, 고르지 않은 산길이나 자갈길, 혹은 사막에서도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스펜션 때문에 높아진 프론트 라이트 주위의 카울이 이 바이크를 마치 부리를 가진 새의 얼굴처럼, 혹은 단단한 턱을 가진 곤충처럼 보이게 한다.
물론 이 바이크를 가지고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을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바위와 나무 뿌리가 뒤엉킨 산길을 올라간다거나, 가파른 각도의 바위 절벽을 거슬러 올라간다던가 하는 그런 주행 말이다. 어쨌든 오프로드용 서스펜션이 있기 때문에 온로드 바이크로는 갈 수 없는, 혹은 어떻게 달린다 하더라도 절대 속도를 낼 수 없는 흙길이나 풀숲길 정도는 마치 아스팔트가 포장된 도로 위에서처럼 스로틀을 맘껏 감으며 달려나갈 수 있다. 이 이상한 바이크가 멋져보이기 시작한다면 이제 당신도 듀얼퍼포즈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뜻. 벗어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실은, 그게 바로 접니다.)
처음엔 편견이 있었지
연재 내내 스포츠 네이키드를 찬양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최근의 나는 이 ‘멀리 가는 바이크들’에 관심이 많다. 내 바이크 인생은 스포츠 네이키드로 시작해 스포츠 네이키드로 끝날 것이라고 믿었는데. 뭐, 조금 샛길로 빠져서 클래식 네이키드까지는 사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 정도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다른 장르의 바이크를 타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매우 완고한 성향의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때나 '라떼는 말이야'를 찾는 꼰대들처럼, 바이크에서만큼은 내가 겪은 바이크만이 최고의 바이크라고 생각하며 다른 장르의 바이크들은 그 위에 앉을 생각조차 해본적 없는 그런 완고한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아메리칸 투어러의 대표주자인 할리데이비슨은 타기 직전, 아니 그 위에 앉았을 때 까지도 ‘이 바이크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스타일도, 생김새도 맘에 안드니까 그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것까지 맘에 안 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지난 편에서 썼던 것처럼 세상에 나쁜 바이크는 없었다. 어떻게도 맘에 들지 않았던 할리데이비슨조차도 지금은 너무 멋지고 재밌어 보인다.
어쩌면 예전의 나는, 그런 큰 바이크들을 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내 마음 속에서 배척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저 바이크는 분명 실 거야’ 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제 나는 아무리 크고 높은 바이크라도, 결국 그것은 바이크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두 바퀴에 엔진만 달려 있다면 나는 타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제 ‘신 바이크’는 없다. 전부 달디 단 바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