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이크 17.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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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이크 17. 에필로그

이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휴! 이렇게 해서 시리즈 15편으로 저의 12년 바이크 인생을 풀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극식 인사.)

<그래서 바이크>가 나오게 된 과정에는 정말 시트콤에나 나올 법한 에피소드가 있다. 한창 더워지기 직전 초여름, 태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시그니쳐 향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지라, 향수를 사모으고 있던 차였다. 특히 파우더리한 향을 좋아해서 면세 찬스로 비싼 향수를 하나 샀다. 기대를 가득 안고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포장을 뜯고 펌핑을 해 보았다. 아뿔싸, 내가 원하던 향이 아니었다. 난 파우더리한 향을 기대했는데 그 향수는 ‘투 머치 머스크(too much musk)’ 했다. 면세로도 비싼 향수였는데… 속이 쓰렸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처치곤란 향수를 중고로 팔기로 했다. 시향을 위해 딱 한 번 펌핑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인터넷에 판매글을 올렸다. 향수에 대한 것을 살짝 잊어가고 있을 때 쯤, 향수를 사고 싶다는 사람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구매자가 변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척에서 사는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서로의 집 중간 즈음에 접선 장소를 정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향수를 들고 나갔다.

머스크 계열의 향수였기 때문에, 나는 구매자가 남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던 사람은 빨간 점퍼를 입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뒤에는 언더본의 바이크가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이 타고 온 바이크였다.

‘쿨거래’를 무사히 마친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거래하면서 내내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저… 혹시 바이크 타고 오셨나요? 얼마나 타셨어요?

우리는 그로부터 10여 분 동안 서서 바이크 얘기를 했다. 마지막에는 서로의 번호를 주고 받았다. 며칠 후에 또 만나서 차를 마시며 길 한복판에 서서 하기에는 너무 길었던 이야기들을 마저 나눴다. 글을 썼고, 바이크를 오래 탔고, 지금은 글 쓰는 일을 잠깐 쉬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가 나에게 <핀치>를 소개해 주었다. 나 역시 소개받기 전부터 <핀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나의 바이크 이야기’를 글로 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에게 “그럼 너무 좋지요!”라고 말하면서도 정말로 <핀치>에 글을 연재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정말 너무나도 더웠던 8월, 늦여름의 한가운데서 시작된 나의 바이크 이야기가 매서운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에 끝나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쓰기 전, 내 바이크 라이프도 이 흐름과 꽤 닮았다. 늦여름처럼 뜨겁게 시작해서, 단풍처럼 화려했다가, 풍성하게 수확했다가, 점점 차가워져서 살짝 동결 상태에 접어들었으니. 아니, 동면상태라고 해야 할까?

일러스트 이민

모토캠핑과 함께 
찾아온 봄

하지만 이 시리즈를 쓰면서 나는 다시 봄을 맞게 된 기분이다. 글을 쓰기 위해 과거를 되돌아 보았더니 바이크와 함께한 나의 지난 12년은 꽤 멋있었다. 그 기억들은 나와 바이크 사이에 쌓여가고 있었던 옅은 권태감들을 조금 걷어내 주었다.

최근 푹 빠지게 된 ‘모토캠핑’도 새롭게 타오르고 있는 나의 열정에 훌륭한 불쏘시개가 되어주고 있다. 바이크를 타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대충 다 해봤는데, 그 중에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바로 모토캠핑이었다. 나는 혼자서 투어조차 가지 않는 성격인데, 혼자서 캠핑을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완전히 포기한 분야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나를 <핀치>에 소개시켜주었던 그 사람이 이제 막 캠핑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머뭇거리던 나를 떠밀어 모토캠핑의 세계에 빠트렸다. 드디어 나의 오랜 소망도 이루어진 것이다(아무래도 그를 내 ‘올해의 귀인’으로 선정해야 될 것 같다). 열심히 글 써서 번 돈을 몽땅 캠핑용품 사느라 써버렸지만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행복하다.

바이크를 타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었던 나의 애인(이제는 반려자로 업그레이드 한)은 이제 나에게 모토캠핑의 매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곤 한다. 도대체 나가서 뭘 하냐는 질문에는 그냥 먹고, 자고, 먹고, 다시 잔다고 대답해 버린다. 실은 나도 캠핑이 뭣 땜에 이렇게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다. 바이크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적은 짐들을 챙겨 한적한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먹을 것을 만들고 화롯대의 불과 밤하늘의 별을 보는, 이 심심하고 번잡스러운 모든 과정들이 너무 즐겁다.

아무튼 모토캠핑에 빠진 나머지, 캠핑장을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더 크고 더 빠른 바이크가 다시 갖고 싶어졌다. 앞으로 내가 다시 대배기량의 바이크를 탈 수 있을지, 모토캠핑을 계속 즐길 수 있을지, 나아가 이 경험들이 나를 얼마나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게 해줄지는 열린 결말으로 두어야 겠다.

뭐 하나 진득히 하는 것이 없는 나에게 바이크는 정말 드물게 오랫동안 즐기고 있는 취미생활이자 문화다. 단순한 탈 것인 이 기계가 나에게 친구도, 경험도, 추억도 가져다 주더니 일자리까지 가져다 주었다. 아! 그리고 바이크는 나의 꿈까지 이루어줄 예정이다. 죽기 전에 책 한 권 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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