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서 있던 바이크가 두 대에서 한 대로 줄어들었다. 같이 바이크를 탈 사람이 없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사실은 바이크와 바이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바이크를 타고 나서 마냥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이전까지 겪었던 ‘나쁜 일’들은 그저 학창시절에 누군가랑 싸웠을 때처럼 서로 오해를 하고, 서로를 싫어하고, 혹은 쌍욕을 주고 받는 정도였다. 그 정도까지는 그냥 그 사람과 더 이상 얼굴을 안 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법기관에 해결을 요청해야 될 정도의 ‘나쁜 일’이었다. 시달리다 지친 나는 바이크로 연결된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서 조용히 사라졌고, 내 주위에서 바이크와 관련된 것들을 다 치워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작은 스쿠터가 남아있었다. 나는 마치 사대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처럼 대형 바이크를 좋아했는데. 스쿠터는 오히려 거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내 옆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해보기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바이크와 멀어진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길을 걷다 바이크의 배기음이 들리면 귀가 쫑긋 섰고, 나도 모르게 주차되어 있는 바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나의 모습을 애인이 캐치한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스쿠터로 서울 데이트를 계속 즐겨왔지만, 나는 이걸 타고 멀리까지 가는 것에 나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곳에는 으레 바이크를 타고 온 수많은 남자들 한무더기들이 있었고, 나는 그 그룹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예전처럼 다시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것을 즐기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그가 어느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스쿠터 타고 멀리 가 보자. 더 나이 먹으면 힘들 거 같아.
주저하는 나에게 그는 가평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 스쿠터를 타고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 곳이라면 바이크 무리들을 만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대답이 나왔다. 각자의 스쿠터에 가벼운 짐을 싣고 늦여름의 도로를 달리고 나자, 다시 더 달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추석 연휴를 이용한 투어를 계획했다.
작은 스쿠터를 타고
부모님을 모시고 대신 운전해서 내려가던 시골길을 스쿠터를 타고 혼자 내려갔다. 친척들은 이렇게 작은 '오도바이'로 여기까지 온 거냐고 놀라워했다. 나의 미친짓 에 대한 인사치레 같은 이야기였겠지만, 내 귀에는 대단한 공적을 치하하는 찬사처럼 느껴졌다. 평소처럼 차례를 지내고 애인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윽고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지낸 애인이 혼자서 스쿠터를 타고 근처의 기차역까지 내려왔다. 낯익은 시골의 기차역에서 스쿠터를 타고 그와 조우하는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우리는 먼 길을 떠났다. 이전에 내가 다니던 투어와는 아주 달랐다. 아주 먼 곳을, 아주 느리게, 아주 즐겁게 달렸다. 느린 스쿠터를 탔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 도시, 저 도시를 경유하는 코스를 짰다. 늦은 밤 도착한 전주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도 없는 전주 한옥 마을을 구경하거나, 녹차밭을 보고 싶어서 보성에 들렸다가 엄청나게 싸우고, 메타세콰이어 길을 달리고 싶어 담양에 갔다가 관광객이 가득한 식당에서 떡갈비를 먹으며 화해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국도 위에서 보내야 했다.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바뀌어가는 공기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국도변에 있는 작은 버스 정류장 밑에서 달달 떨기도 했다. 가로등도 띄엄띄엄한 밤의 국도를 달려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엄청나게 비싼 한정식을 먹었는데, 생선을 즐기지 않는 우리의 손에 들려진 메뉴판에는 생선 정식 밖에 없었다. 투덜대며 다시 스쿠터에 시동을 건 우리 앞에 요란하게 펼쳐진 야시장이 나타났다. 노점상에서 주문한 야식을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 위에 펼쳐놓고 다시 한번 우리의 성공적인 투어를 자축했다. 마침 야시장의 무대에서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있었다. 노래방 반주의 이름모를 트로트가 우리의 축하 공연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목포까지 8시간을 내리 달려 제주도행 배에 바이크를 실었다. 제주도까지의 여정이 너무 험난했지만 일단 도착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얼마나 바이크를 타기 좋은 곳인지 그토록 스쿠터 렌탈샵들이 많은 제주에서, 우리는 우리의 스쿠터를 타고 여기저기를 누볐다.
처음부터 바이크는
자유였다
그의 재활 프로그램이 나에게 잘 들었다. 나는 다시 바이크 타는 것을 즐거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바이크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면 숨이 답답해 오지만, 무시하고 그 옆을 지나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도 바이크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무리지만, 애초에 예전처럼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불특정 다수의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사라졌으니까.
크고 비싼 바이크에 매몰되어 있느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바이크는 나에게 자유였다. 크기가 어떻든, 빠르기가 어떻든 상관없이, 바이크 위에 오르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 먼 길을 돌아와서야 다시 나의 처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연인에서 동반자로 서로의 위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고, 집 앞 주차장에는 똑같이 생긴 스쿠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새로운 바이크를 사려면 두 대를 동시에 사야 할 것 같아 당분간은 이 두 대로 좀 더 버텨보려고 한다.
가끔씩 다시 대배기량 바이크를 사고 싶어 속이 드릉드릉 할 때도 있지만, 이제 나에게 대배기량 바이크는 선망의 대상이나 최종 목적지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조금 더 빨리 가게해주는 것일 뿐.
아주 커다래서 발이 닿지 않는 것도, 너무 작아서 다리를 간신히 수납해야 하는 것도, 빠른 것도, 느린 것도 결국은 바이크. 스로틀을 감아야 비로소 나를 데려가 주는, 즐거운 탈 것.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 위에 올라앉아서 시동을 거는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