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이크 9. 파란 BMW, 빨간 두카티

알다바이크BMW두카티

그래서 바이크 9. 파란 BMW, 빨간 두카티

이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어떤 친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지간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입 브랜드들은 대부분 아주 풍성한 라인업을 갖고 있다. 특히 미들급 이상부터는 엔진만 개발했다 하면 스타일에 따라, 성능에 따라 세세하게 모델들을 나눠서 우려먹고 쪄먹으며 다양한 취향의 구매자들을 노린다.

낮은 배기량에서 간신히 네이키드 모델을 찾으며 조금 아쉬운 모델들을 사다가, 돈을 더 쓰려고 마음먹자마자 선택지가 병목구간을 벗어난 도로처럼 넓어졌다.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바이크는 출신 브랜드에 따라 성향과 느낌이 사뭇 다르고, 이런 모델들이 모여 구성된 라인업은 해당 브랜드들을 의인화 시킬 수도 있을 만큼 확고하다.

가령 혼다는 정말 정석적인 모범생, 야마하는 핵인싸 유명인, 스즈키는 기계 집착 공대생, 가와사키는 어딘가 희한한 사람, BMW는 차분한 엘리트, 두카티는 화려한 날라리, 그리고 할리데이비슨은… 지금 당신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런 사람!

내가 할 일은 그저 나와 가장 성격이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소란스럽기 보다는 차분하고 담백한 친구를 원했다. 그러면서도 지루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면 싶었다. 다른 브랜드가 아닌 BMW를 구매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체 할부 프로그램 때문이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이 친구의 성격이 맘에 들었다.

차분한 BMW와 함께 나란히 놓고 끝에 끝까지 고민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두카티다. 이 두 브랜드는 영혼의 라이벌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 극과 극으로 달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새파란 색을 브랜드 컬러로 갖고 있는 BMW와 짙은 빨강이 트레이드 컬러인 두카티. 부드러운 유선형의 디자인이 특징인 두카티와 직선적인 라인을 주로 사용하는 BMW. BMW가 독일 브랜드이고 두카티가 이탈리아 브랜드라는 것까지, 완벽한 만화 속 라이벌 클리쉐다.

BMW F800R
두카티 몬스터659

그 중 내가 사고 싶었던 모델들은 각각 F800R과 몬스터659. 위가 F800R, 아래가 몬스터659인데, 특별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뭐가 어느 브랜드의 바이크인지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내가 당시 살 수 있는 바이크는 BMW라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끝까지 두카티의 바이크에 미련을 버릴 수 없었는데, 여러분들도 사진을 보면 내 기분에 공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F800R을 내 새로운 친구로 맞이하자마자 두카티를 생각하는 마음은 말끔히 사라졌다. 양다리는 현대 사회에서 권장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BMW의 오너쉽 프로그램이 정말 매우 다채롭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어서 와, BMW는 처음이지?
오너쉽 프로그램

차량이 출고되자마자 나는 BMW가 제공하는 ‘초급 라이딩 스쿨’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잠깐 이루어지는 짧은 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전에 내가 산 국내 바이크 브랜드에서는 이런 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BMW코리아가 자체 물류창고를 갖고 있어 교육을 진행할 넒은 공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누구의 위협도 없는 곳에서 전문 강사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바이크를 눕히고 휘두르는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새로운 바이크를 맞이할 때마다 가졌던 ‘쫄보 기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 나는 이 수업이 너무 좋아서 곧바로 중급, 고급 클래스까지 모두 수강했다. 매번 적지 않은 돈을 냈지만, 언제나 지출한 돈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BMW 케어’는 라이딩 교육으로 그치지 않았다. 매년 가을마다 ‘모토라드 데이’라는 이름으로 1박 2일동안 리조트를 빌려 축제를 연다. BMW의 오너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참가비를 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다. 오너들에겐 소속감을, 오너가 아닌 사람들에겐 BMW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주는 축제다.

BMW 모토라드 데이

할리데이비슨이나 베스파처럼 해당 브랜드 자체에 열성적이고 유대감이 있는 오너들이 많은 경우에는 오너들이 자체적으로 꾸준히 행사를 연다. 하지만 이런 행사는 이너서클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오너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레저 바이크 시장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바이크를 팔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에프터 케어 따위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BMW 바이크는 자동차도 함께 관리하는 BMW 코리아의 산하에 있어, 높은 인지도와 과감한 투자로 크고 작은 행사들을 개최할 수 있었다. 마치 자동차를 판매할 때처럼 바이크 오너들에게 에프터 케어를 제공했다. 매장에는 BMW 오너들을 위한 전용 의류와 장비들을 갖춰 두고, BMW 오너들은 그 의류들을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다.

계절이 바뀌어 라이딩을 하기 좋아질 때, 그리고 또 다시 계절이 바뀌어 바이크를 타기 힘들어질 때에도 전국의 BMW 매장에서 무료 정기 점검을 실시했다. 자연스럽게 BMW 오너들은 자신이 구매했던 그 매장을 주기적으로 찾아 바이크를 점검하고 관리했다. 그러다 매장에 전시된 멋진 신모델을 발견하면, 충동적으로 기변*1을 하기도 했다.

이윽고 바이크가 모이는 곳에서는 으레 BMW의 바이크가 주류가 되기 시작했다. 훌륭한 마케팅과 적절한 구매 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에프터 케어가 더해졌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까지의 바이크 업계, 바이크 문화 속에서는 자신들을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준 곳이 없었으니까. 바이크는 언제나 도로 위의 천덕꾸러기였고, 주차장의 불청객이었으며, 센터나 매장에서는 호갱님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 나 역시 BMW의 케어에 넘어가 BMW 팡인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우리도 해 드려요
라이더를 위한 애프터케어

수 년 동안 BMW가 다양한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점점 높여가자, 수입 브랜드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브랜드는 역시 두카티 일 것이다. 두카티는 바이크의 페라리 같은 이미지로, 여간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성능과 유혹적일만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특별한 마케팅이나 애프터 케어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두카티는 꽤 콧대 높은 브랜드로 여겨졌다.

그 동안은 괜찮았다. 어차피 레저 바이크 시장은 크지 않았고, 그만하면 잘 팔리는 편인데다, 수입 바이크 중 인지도도 높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레저 바이크 시장이 커져 가고 그 시장을 모두 BMW가 장악하기 시작하는데, 이전처럼 가만히 앉아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와 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러면서도 두카티는 BMW의 뒤를 그대로 좇을 수 없었다. 두카티의 자존심이 있으니.

그래서 두카티는 두카티의 스타일대로 했다. 두카티 라이더들을 위해 서킷 체험을 열고, 모토GP*2에서 선전하고 있는 두카티 레이싱 팀을 응원하기 위해 다 같이 모여 모토GP 영상을 본다. 이탈리안 음식인 파니니를 나눠먹으며 오너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시간을 만들어나갔다. 라이더들이 모이는 곳에 두카티의 빨간색 바이크가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두카티 트랙 데이

최근에는 바이크의 할부 구매 프로그램이나, 개별 브랜드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패밀리데이며 라이딩 스쿨 등의 이벤트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각자의 브랜드 성격에 맞는 이벤트를 열어서 그 브랜드와 친해질 사람들을 부른다.

내 다음 친구는 어떤 성격이 좋을까? 이번에야말로 두카티처럼 열정적인 친구를 만나봐도 좋겠지. 그리고 서킷 체험을 신청하는거다.


*1 기변: 스마트폰을 바꿀 때 쓰는 말인 '기기 변경'과 똑같은 의미로, 라이더들 역시 바이크를 다른 것으로 바꿀때 ‘기변’이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2 모토GP: 이륜차 레이싱인 모터사이클 그랑프리의 최상위 클래스. 사륜차에 F1 레이싱이 있다면, 이륜차에는 모토GP가 있다. 레이싱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가장 빠른 바이크를 타고 속도를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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