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이크 14. 모든 바이크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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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이크 14. 모든 바이크는 사랑스럽다

이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바이크를 사고, 바꾸고, 면허를 따고, 레이스도 나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바이크를 꽤 오래 탄 사람이 되었다. 원래 속해 있던 동호회는 어느새 존재가 희미해졌고, 동호회에서 만나 같이 바이크를 타던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바이크를 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운 동호회에 흥미가 가지도 않았다. 나 역시 바이크를 타는 시간보다 주차장에 세워두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주말에도 쉬기 바빠 바이크를 탈 생각이 안 들었다.

권태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바이크 관련 매체에서 아주 잠깐 일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바이크 타는 것이 좋았고, 바이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좋았고, 그 두 가지 모두 꽤 한다고 생각했으니, 정말 완벽한 직업이었다.

온갖 바이크를
직접 타 보니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다양한 바이크들을 접하고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 꽤 중요한 기점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 바이크 아니면 아예 건드리지조차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바이크를 남이 타는 것에는 허들이 매우 낮은 편이지만, 내가 남의 바이크를 아무렇지 않게 타기는 어려웠다. 스스로의 라이딩 실력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바이크를 시승하는 것을 매우 주저하는 편이었다. 커다란 바이크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몸에 맞는 바이크를 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바이크들은 성인 남성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유럽 바이크들은 유럽의 성인 남성 체형이 기준이다. 내 체형에 맞는 바이크로 한정짓는다면, 나는 탈 수 있는 바이크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감 부족을 핑계로 일을 안할 수는 없었다. 바이크 매체에 글을 쓰는 일에는 다양한 바이크를 타는 것도 포함이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매우 야망에 차 있었으므로, 소심하게 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구레이스 참가’라는 이벤트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라이딩 실력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됐다.

6개월 동안 탄 바이크 숫자가 그때까지 타봤던 바이크들보다 많았다. 특히나 대배기량, 대형 바이크를 타볼 기회가 많았다. 구입하려면 1~2천만원은 우스운 모델이다. 일반인이 시승하려면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시승행사를 통해 10분 안팎의 주행으로 맛만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모델을 적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사나흘 까지도 직접 타볼 수 있었다.

원래 타던 바이크와 비슷한 크기부터 조금 더 큰 모델, 깨금발을 들어야 간신히 닿을만큼 큰 모델, 심지어 시트 위에 앉으면 아예 양 발이 닿지도 않는 모델까지. 내 돈 주고 절대 살 일이 없는,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브랜드나 모델들까지. 다양한 크기의 커다란 바이크들을 타 보고 느낀 것이 있다.

일러스트 이민


세상에 나쁜
바이크는 없다

첫 번째, 바이크는 아무리 무거워도 결국은 똑같은 바이크라는 것. 일단 똑바로 세우고, 시동을 걸고, 출발시키기만 하면 바이크의 무게와 높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시트에 앉아 발이 제대로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다면, 바이크를 멈춰야 하는 순간들마다 곤란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곤욕도 처음 몇 번 뿐이었다. 익숙해지면 내 몸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다.

어쨌든 체형에 맞는 바이크를 타는 것은 매우 권장할 만한 일이다. 시트에 앉았을 때 발뒷꿈치까지 모두 안정적으로 땅에 닿는다면, 바이크가 균형을 잃어 일정 각도 이상 넘어지더라도 금방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바이크가 작아질수록 무게도 가벼워지니, 작은 체형의 사람들에게는 작고 가벼운 바이크가 더 다루기 쉽고, 그만큼 안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사실은 체형으로 인한 패널티는 실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대형 바이크로 업그레이드 하기를 주저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키가 작은 남자들은 덥석덥석 타는 바이크를, 여자들은 몇 번의 고민과 시승을 거쳤음에도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두 번째, 세상에 나쁜 바이크는 없다는 것. 저건 못생기고, 저건 불편해 보이고, 저건 누가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모델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저 돈 주고 저걸 왜 사지 싶었던 커다란 투어러도,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싫어하던 아메리칸 투어러도, 허리 아파서 저걸 어떻게 타지 싶었던 레플리카도, 디자인이 싫어서 쳐다도 안보던 듀얼퍼포스까지, 아무리 싫어했던 바이크더라도 일단 시트 위에 앉으면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이상하게 생겼든, 포지션이 불편하든, 일단 바퀴 두 개와 엔진만 달려 있으면 모든 바이크는 재미있다. 너무나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범위 밖의 바이크에는 관심조차 안 주던 나에게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마다 각기 바이크 취향이 다르고, 그 사람들의 취향을 각자 맞춰줄 만큼 수많은 바이크 모델이 있는데, 당연히 그렇게 많은 모델만큼 각기 다른 즐거움이 있을 수 밖에. 평소에는 나의 편견 때문에 낮잡아봤던 종류의 바이크를 타면서 얼굴 한 가득 웃을수 밖에 없었던 그날, 나는 이제 그 어떤 바이크도 싫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짧았던 6개월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함께 나의 F800R과 함께 달릴 라이딩 버디는 없는 채로, 다시 바이크를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하는 일상이었다.

대신 새롭게 구입한 작은 스쿠터를 타는 일이 잦아졌다. 바이크를 탄지 수 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대중교통을 잘 타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 사이에 시달리기 보다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 위에서 시달리는 것이 더 편해져 버렸는데 대형 바이크를 일상적으로 타기는 불편했다. 잦은 신호대기와 정체 속에서 클러치 레버*1는 종종 무겁게 느껴졌고, 호쾌하게 달리기 위한 커다란 휠과 덩치는 민첩한 조작을 하기에는 젬병이었다. 자동차를 갖고 있었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느니 차라리 차라리 두 발로 걸어다니는게 나았다.

그렇게 나는 세컨 바이크를 사야할 명분을 찾아냈고, 곧바로 125cc 스쿠터를 한 대 들이게 됐다. 석모도에 함께 다녀왔던 애인이 마찬가지로 125cc 스쿠터를 샀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는 멋진 디자인의 똑같은 스쿠터를 나란히 사서 커플 헬멧도 맞췄다. 스쿠터를 탄 우리는 그야말로 동분서주였다. 종로에서 전시회를 보고, 연희동에서 밥을 먹었다가, 홍대에서 디저트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즈음 나는 사랑스러운 F800R을 팔았다.


클러치 레버: 바이크나 자동차의 동력전달을 위한 부품으로, 기어를 변속하기 위해서 조작을 해야하는 부품이다. 스로틀 그립이 없는 왼손 쪽에 레버 형식으로 장착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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