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언박싱 11. <검법남녀2>가 놓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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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언박싱 11. <검법남녀2>가 놓친 세 가지

이자연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시즌2 그리고 몇 가지 의문

일러스트 이민

시즌제로 기획된 MBC <검법남녀2>는 현재 월화 드라마 중 시청률 1위 프로그램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TNMS 시청자 데이터에 의하면 <검법남녀2>의 20회의 경우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 시청률 순위 1위를 휩쓸기도 했다. 같은 날짜에 방영된 드라마, 예능, 뉴스 프로그램을 모두 이기면서 가파른 시청률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처음부터 드라마가 시즌제로 구성되면서 고른 호흡을 이어나갔고, 그 덕분에 이야기 얼개나 스토리 라인이 매우 튼튼했다. 등장 인물들도 입체적이어서 이입하기 쉬웠고, 각 에피소드도 뒷심이 좋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2018년 7월 17일, 시즌1이 32화를 마지막으로 끝을 내린 뒤, 올 6월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2에서는 시즌1과는 다른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기존 인물들이 새로운 인물로 대체되는 일이야 흔한 변화라지만, 인물들 사이에 놓인 긴장이 예전의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 오묘한 기분은 대체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

Q1. 주인공은 왜 희미해졌을까?

일러스트 이민

드라마 시작은 은솔(정유미) 검사의 등장이었다. 은솔 검사는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수원도 수석으로 마친 엘리트로, 매 사건의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억하며 뛰어난 관찰력과 암기력을 자랑한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오빠만 예뻐하는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끊임 없이 발전시켜온 결과였다. 사실 은솔은 시즌1 초반에 가정폭력 살인 용의자에게 감정에 호소하는 질문을 건네거나,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 법의학자 백범(정재영)에게 철 없는 행동을 하는 등 서툴고 비전문적인 태도를 자주 보였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나이든 남성 법의학자와 젊고 예쁘고 해맑은 여성 검사의 이야기는 불 보듯 뻔했다. 백범이 조언하고, 은솔이 따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은솔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성장을 이룩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패기 하나로 사건을 판단하고 해석하던 날들은 신중함과 자기객관화로 뒤바뀌었다. 특히 약물 중독과 함께 환각 증세를 보여 자살에 이르렀던 고등학생 사건은, 은솔만이 망자와 정서적 교감에 가 닿아 진위를 파헤쳤다. 그리고 시즌2, 열혈 신참 검사는 더욱 성숙하고 예리한 자세로 돌아왔다. 비전문적이던 태도는 더욱 가다듬어졌고 무게가 실린 목소리에서 진지함도 느껴졌다. 실제로 은솔 역을 맡은 정유미 배우는 은솔의 변화에 대해 “지난 시즌에서는 초짜 검사 모습을 주로 보였지만 이번엔 지난해보다는 성장했다. 아직 완전히 베테랑은 아닌 1년 차 검사지만.”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은솔의 발전은 활약과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시즌2의 두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조직폭력배의 마약 거래 일화에서 범인을 탐문하고 추리해 낸 것은 뜬금 없게도 백범이었다. 심지어 조백범은 국과수 법의학자이고, 법의학자 이전에 외과의사였다. 천 번 양보해서 수 많은 과학 수사를 거치면서 추리력이 늘 수는 있지만, 멀쩡한 검사를 두고 백범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백범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면 은솔을 굳이 성장형 인물로 두어야 할 개연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의문도 따른다. 은솔이 성장을 다 하면 드라마 속에서 실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저 어리고 해맑은 여자 주인공 자리로만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법적 갈등을 소재로 둔 드라마는 많았지만 법의학자와 검사의 공조를 다룬 수사물은 처음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호평을 생각해보면, 백범의 월권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Q2. 나이 든 남자를 사랑해야 젊은 여자는 생명력을 얻는 걸까?

일러스트 이민

인물의 변화도 있었다. 시즌1에서 국과수 약독물과 연구원으로 등장한 스텔라(스테파니 리)의 자리를 시즌2에서는 샐리(강승현)가 도맡게 된 것이다. 스텔라가 당당하고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스타일이라면 샐리는 자유로운 돌직구 형이다. 언뜻 둘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가 있었으니, 스텔라가 백범을 동등한 동료로 인식했다면 샐리는 그를 이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백범의 옆집에 사는 은솔에게 샐리가 말한다. 

저, 백범 쌤 좋아해요.

시즌을 막론하고 <검법남녀>는 마치 공식처럼 약독물을 다루는 인물들에게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심어주었다. 마법약을 만드는 마녀처럼. 컨셉 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데 어째서 샐리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를 졸졸 쫓아다니며 좋아하는 걸까? 마치 젊은 여자는 나이 많은 아저씨를 좋아해야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중년의 남성을 갖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어린 여자와 그에 무심한 중년 남자. 이 클리셰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사라지지 못하는 걸까.

스텔라가 피의자로 억울하게 몰린 백범을 보면서 분노했던 적이 있었다. 국과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감정을 표출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스텔라’ 라는 조연에게 많은 것을 느꼈다. 백범을 좋은 동료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자기의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구나,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등등. 한 여성 인물이 자기만의 캐릭터성을 갖는 것은 늙수구레한 남자를 좋아할 때가 아니라 그 얼마나 작은 역할이더라도 자기의 역사에 집중할 때다. 자기 전문성을 확보한 여자가 이렇게나 멋진데, 굳이 다른 데로 눈을 돌리는 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Q3.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지 않나?

일러스트 이민

시즌1에서 화성연쇄사건을 모티브로 둔 에피소드가 등장했던 적이 있다. 여자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갔고 여성 검사와 여성 법의조사관은 그 시신들을 하릴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성폭행 증거가 나왔을 때 둘은 힘겨워하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의 죽음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피해자들이 죽은 이유 말이다. 남성 인물들이 막연히 안타까워하는 동안, 그들은 스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2에서 자꾸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구도를 강조하려 든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늙은 남자를 사랑한 샐리가 그의 옆집에 사는 은솔을 자꾸만 경계하고 의심하는 장면들이 영 진부하기 때문이다. 시즌2에도 여성범죄는 범람한다. 상사의 성추행에 못 이겨 죽고, 남편의 계획에 의해 죽고, 그냥 살해 당하고, 심지어 납치당하는 것도 여아다. 피해자가 온통 여자인데 어떻게 여성들의 연대와 공감을 빼고 이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여성들 간의 경계와 긴장된 관계만이 강조되는 것이 더더욱 억울해진다. 세상은 그대로여도 무수한 여성들이 바뀌었는데 그런 지점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 여성대상의 범죄를 이야기의 소재로만 쓰고 싶은 건 아니겠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여자의 적은 남자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내버려 둘 때 비로소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여성 범죄를 다루는 만큼, <검법남녀2>는 여성들간의 관계도 세심하고 면밀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너무도 많은 여자들이 죽었을 때, 그걸 공감한 것은 오로지 여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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