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청소년 사이
지난 <이상한 나라의 투니버스 픽> 편에서는 투니버스에서 정식 방영한 유튜브 1인 방송을 비롯해 자체제작 프로그램을 둘러보았다. 몰카나 약자 차별에 근거한 웃음이 성인지 감수성과 동떨어져 보였고, 여자 아이들에게 각종 메이크업을 소개하면서 꾸밈노동을 자연스러운 과업처럼 비추기도 했다. 변화의 흐름을 채 따라가지 못한 게으른 콘텐츠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비뚤어진 성 가치관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이들의 미디어 수용력과 영향력은 성인보다 커지고 있다. 10대 사이에서 폭발적이었던 플레이리스트의 웹드라마 <에이틴>의 경우, 회차 마다 여자 주인공이 입고, 걸치고, 바르고 나온 모든 제품이 품절된 것만 보아도 콘텐츠 시장에서 10대가 입지 굳건한 소비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오로지 10대를 겨냥한 콘텐츠를 가지고 성공적인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에서도 다양한 함의를 가늠할 수 있다. 다른 연령대보다 또래 문화 속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은 그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을 나누고 따른다. 쉽게 전파를 하고 받는 집단의 속성때문에 미디어는 더더욱 아이들의 콘텐츠 접근 가능성을 염두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어린이·청소년 시청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을까? 시청자로서, 소비자로서의 어린이·청소년은 어떤 권리를 갖고 있을까? 그들을 위해 TV는 어떤 책임과 의무를 떠안고 있을까? 여러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세계를 둘러보기로 했다.
결의문인 듯 심의 규정인 듯
영국에서는 15세 미만의 사람을 모두 어린이로 취급하는데,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에서 어린이 시청자를 위해 TV프로그램 규제를 다음과 같이 두었다. 먼저 폭력 자체를 포함한 폭력성이 드러난 묘사는 언어적이든 신체적이든 어린이가 청취할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에는 제한되고, 맥락상으로 정당화 되어야 한다. 게다가 어린이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나 비슷한 묘사는 어린이 대상의 프로그램에서는 결코 방영되어서는 안 된다. 웃음을 빌미로 여성 출연자에게 "몸 자체가 무기다", "살을 못 빼는 것은 게을러서다" 라고 말한 <급식왕>이 문득 겹쳐 보인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 대상으로 두고,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며, 언제든 아이들이 따라하기 좋은 자극적인 단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콤은 이러한 심의 규정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염려하는 시선 또한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규제와 지적이 있을 때마다 ‘프로불편러’ 취급을 하는 이들을 위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이다. 방송과 표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관련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권리는 의무와 책임을 동반한다. (생략) 자신이 무엇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감을 부여하는 규제 내에서 숙지된 선택을 하는 성인 수용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와 동시에 숙지된 선택을 적절히 행사하기에는 너무 어린 수용자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
일례로 어린이 방송채널을 보유한 BBC는 남자 주인공만 넘치는 만화가 아이들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요 만화의 일부를 폐지하겠다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대신 여자 정비사가 주인공인 만화를 새로 만드는 것으로 개선의 여지를 보였다. 게다가 호주의 경우, 어린이 TV시청기준(CTS, Children’s Television Standard)을 마련하여 특정 성별, 인종, 장애, 종교, 성 정체성 등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방송은 방영할 수 없다고 강하게 못을 박기도 했다.
방송 전반을 둘러볼 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일반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어린이 청소년 시청층을 보호하려는 책임이 표현의 자유보다 선행돼야 한다. 어떤 가치를 우위에 둘 것인가에 따라 그 국가의 가치 판단 기준과 시민 의식을 가늠할 수 있다면, 성인의 눈으로 계속해서 아이들의 정서적 피해를 확인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오프콤의 당부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의 임무는 18세 미만을 보호 하는 것이며 그러한 책임은 방송 종사자 뿐만 아니라 부모,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는 사람과 공유하여야 한다.
어른들은 몰라요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브라이언 심슨은 콘텐츠가 아이들에게 유해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해당 콘텐츠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그려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등장 인물의 입장이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여 받아들이는 만큼, 건강하게 성장하는 인물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더 많은 씩씩하고 강단 있는 여자 주인공이 절실한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실제로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와 호주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대에는 아이들에게 모든 광고를 금지시킨다. 아이들이 TV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를 갈음하기 어려워하고, 광고의 상업성이 판단력을 흐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만화 채널을 보다 보면 프로그램 사이사이마다 무수한 광고들이 꽉꽉 차있다. 아이들 타겟의 채널인 만큼, 장난감이나 문구류가 대부분이고 또 그 안으로 유사 화장 장난감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곱게 화장한 10대 청소년들이 화면에 나와 즐겁게 게임을 하면서 놀다가, 프로그램이 끝이 났을 때엔 유사 화장 장난감 광고만 즐비하다면, 아이들은 결국 무엇을 찾게 될까.
호주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 채널과 드라마가 1년에 390시간은 의무적으로 방영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어린이 또한 질 좋은 정보를 수용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의 정보 혜택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게다가 특정 비율은 그 해에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이어야만 한다는 조항도 있다. 새롭게 업데이트까지 염려하는 구체적인 규정이다. 앞에 두 사례를 연이어 보다 보면, 어쩐지 한국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미디어의 수혜를 받는 대상자라기 보다는 잠재적 소비자로만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이 채널의 존재 목적과 취지는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채널일 수 있을까.
모른 척 깨기
투니버스와 애니원, 챔프, 대교, 대원, 애니박스, 스페이스툰 등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많은 방송국들 사이에서 진짜 ‘어린이의 정서적 건강’을 염려한 프로그램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유일하게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투니버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딜 봐도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어린이 채널이 비슷한가 싶었는데, 다른 국가에 버젓이 강도 높은 심의 규정이 있는 걸 보니 아무도, 오랫동안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모양이다.
어른의 세계에 놓인 불평등은 언제나 알아서 잘 언급된다. 일터에서, 길 위에서, 화장실에서, 대중 교통에서. 그게 일반 성인이 가진 권한일 것이다. 하지만 층위도 형태도 모두 제각각인 아이들의 불평등은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더욱 어른에게 기대야 한다. 말 그대로 ‘미성년’이기에 직접 말할 수 없고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데, 알아서 잘 걸러 들으라는 태도는 너무 잔인하다. 성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투 두 리스트가 주어진다면 오늘의 할 일은 무얼까. 그건 아이들을 왜곡된 콘텐츠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