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서사와 수많은 명대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SKY캐슬>. 작년 11월부터 방영되어 JTBC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나도 그 화력을 전적으로 믿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직 여성 배우 5인 만으로 메인 포스터가 제작된 드라마는 처음이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영 엉뚱한 곳을 스쳐간 전개와 차마 두 눈 뜨고는 못 봐줄 지경의 캐릭터 붕괴가 이어졌고, 그 실망감에 결국 마지막화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노승혜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그일 것이다.
도무지 주부를 존중할 줄 모르니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정성껏 차린 저녁을 먹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것부터 깨닫게 해주려고요.
노승혜는 스카이캐슬에 입주해 있는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입시 성공을 위해 명문대 입학생의 포트폴리오를 탐내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내조를 착실히 수행하며, 김주영 선생을 입시 코디네이터로 들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의 온도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 노승혜는 초반부터 남편 차민혁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비판한다. 차민혁이 만든 감옥 같은 스터디룸을 망치로 깨버린다거나, 치사하게 생활비 카드를 압수해버린 남편에게 매 끼니를 컵라면을 대접하고, 엄동설한에 차민혁을 밖으로 내쫓는 행동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까지 준다.
극중 대부분의 어른들이 입을 모아 입시 경쟁을 부추길 때, 노승혜는 쌍둥이들에게 남이 아닌 자신과 경쟁하라고 말한다. 남편이 차세리에게 실패작이라는 비난을 할 때, 노승혜는 딸과 함께 길거리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 다른 부모들이 의대에 목을 맬 때 노승혜는 자녀들을 감싸 안고 남편의 가정 폭력에 맞서는 강인한 엄마가 된다.
노승혜는 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차민혁에게 이혼 서류까지 들이밀었지만, 차민혁의 기세는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노승혜에게 반성문을 쓰라며 길길이 날뛴다. (불쾌하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남편’이라는 위치를 권력으로 이용하는 장면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차민혁의 황당한 요구를 그냥 넘길 노승혜가 아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반성문’을 쓴다.
<반성문>
가부장적인 친정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가치관에 대한 깊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차민혁씨 같은 남자와 결혼한 것을 반성합니다. 세 아이 엄마로써 차민혁씨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육 방식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20년 간 아이들이 당해온 고통을 방관한 저 자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연장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