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vourites 9. 노승혜

핀치 타래리뷰여성서사

Favourites 9. 노승혜

입시 전쟁을 겪는 전업주부 어머니의 성장서사

타래 에디터

파격적인 서사와 수많은 명대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SKY캐슬>. 작년 11월부터 방영되어 JTBC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나도 그 화력을 전적으로 믿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직 여성 배우 5인 만으로 메인 포스터가 제작된 드라마는 처음이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영 엉뚱한 곳을 스쳐간 전개와 차마 두 눈 뜨고는 못 봐줄 지경의 캐릭터 붕괴가 이어졌고, 그 실망감에 결국 마지막화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노승혜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그일 것이다.  

도무지 주부를 존중할 줄 모르니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정성껏 차린 저녁을 먹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것부터 깨닫게 해주려고요.  

노승혜는 스카이캐슬에 입주해 있는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입시 성공을 위해 명문대 입학생의 포트폴리오를 탐내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내조를 착실히 수행하며, 김주영 선생을 입시 코디네이터로 들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의 온도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 노승혜는 초반부터 남편 차민혁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비판한다. 차민혁이 만든 감옥 같은 스터디룸을 망치로 깨버린다거나, 치사하게 생활비 카드를 압수해버린 남편에게 매 끼니를 컵라면을 대접하고, 엄동설한에 차민혁을 밖으로 내쫓는 행동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까지 준다.  

극중 대부분의 어른들이 입을 모아 입시 경쟁을 부추길 때, 노승혜는 쌍둥이들에게 남이 아닌 자신과 경쟁하라고 말한다. 남편이 차세리에게 실패작이라는 비난을 할 때, 노승혜는 딸과 함께 길거리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 다른 부모들이 의대에 목을 맬 때 노승혜는 자녀들을 감싸 안고 남편의 가정 폭력에 맞서는 강인한 엄마가 된다.

노승혜는 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차민혁에게 이혼 서류까지 들이밀었지만, 차민혁의 기세는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노승혜에게 반성문을 쓰라며 길길이 날뛴다. (불쾌하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남편’이라는 위치를 권력으로 이용하는 장면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차민혁의 황당한 요구를 그냥 넘길 노승혜가 아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반성문’을 쓴다.  

<반성문>
가부장적인 친정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가치관에 대한 깊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차민혁씨 같은 남자와 결혼한 것을 반성합니다. 세 아이 엄마로써 차민혁씨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육 방식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20년 간 아이들이 당해온 고통을 방관한 저 자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연장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SERIES

Favourites

타래 에디터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