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가끔은 여왕인 것도 재밌어
영화 <더 페이버릿(2019)> 앤 여왕
절대권력이란 어떤 걸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흰 벽과 검은 구멍으로 이루어진 ‘얼굴’의 기호학적 작용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이를 비유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유일신의 얼굴은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기호체계다. 유일신의 눈, 입, 표정만이 유일한 의미를 가진다. 그 외 얼굴이 없는 존재들은 오직 유일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뜯어보며 그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기호체계는 소통하지 않고 군림한다.
앤 여왕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감출 필요가 없다. 배경처럼 서 있던 시종에게 “지금 날 봤지? 날 봤지? 날 봐!”하고 명령했다가, 정작 조심스럽게 쳐다보자 “감히 어딜 봐!”하고 화를 내는 장면은 군림하는 기호체계 그 자체다. 애비게일이 언제나 ‘사회생활용’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 자신의 진짜 생각이나 진짜 감정은 오직 독방에서만 쏟아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군림하는 얼굴은 예민하고, 변화무쌍하다. 여왕의 표정은 ‘풍부하다’는 형용사에 다 담을 수 없다. 아이처럼 신이 났다가도 금방 울적해지고,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다가도 장난스럽게 싱긋 웃는다. 파티에서 춤을 추는 신하들을 보다가도, 궁정 뜰 안의 평화로운 연주회를 듣다가도, 여왕은 갑자기 표정이 굳기 시작하고, 발작처럼 그만두라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절대권력의 고약한 변덕일까?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던 사라 처칠의 대사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준다. “불행이 폐하를 따라다녔지(Tragedy had stalked her).” 사람은 감상에 빠지는 순간이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앤 여왕의 경우에는, 그 기억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던 건 아닐까. 기억들은 아무리 절대권력이 명령을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기억과 혼자 남는 순간, 절대권력은 의미를 잃는다. 주변 모든 사람을, 영국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른대도, 여왕은 절대적으로 외롭다. 그래서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