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it Partnerin

핀치 타래여성서사퀴어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이 너무 거대하고 장려하거나 과도하리만큼 장식이 달려 있는 옷 또한 사회가 규정하고자 하는 여성성에서 벗어난다는 점인데, 이 또한 쉽게 특이한 남성들을 ‘위한’ 취향으로 독해해내는 의견 안으로 수렴되고는 한다. 여성이 외관에 관해 행하는 모든 일이 남성을 위한, 적어도 남성을 의식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친구가 불러 주어, 팸투팸 모임에 간 적이 있다. 술을 마시고 스킨쉽 게임을 하는 등의 자리였다. 넥라인이 깊이 파여 가슴이 반쯤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갔는데, (술 기운도 한몫 했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성이 내 가슴에 찬탄을 보냈고, 주목받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에게도 그것은 무척 신나는 경험이었다.


남성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상대방이 내 가슴인데도 자기 것인 양 굴 때가 많은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신체가 남성에게 복속되는 것이라고 대놓고 명시하거나 혹은 은연중에 암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하지만 자의식을 가진 여성이라면 이러한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가 어렵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대놓고 가슴을 만지고 싶어하거나, 혹은 드러난 가슴을 가려 주고 싶어한다. 이러한 복장이 성관계를 전제하는 것 아니냐는, 많은 것들을 거칠게 생략한 전자와 많은 오해들이 있을 수 있으니 보호해주겠다는 후자를 놓고 볼 때, 굳이 평가하자면 후자가 그나마 낫기는 하지만, 둘 다 동등한 입장에서의 접근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팸투팸 모임에서 겪은 시선과 행동들로부터 나는 암컷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동시에 여성이 여성에게 보내는 성애적인 시선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짜릿했던 것 같다. 이 자리에서 긴장감을 내려놓고 취하더라도 누군가 내 의도에 불합치하게 만지는 등의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또한 즐거운 기분을 증폭시켰다. 안전한 성애화의 공간이라고 느꼈고, 이 두 가지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내게 많은 해방감을 주었다.*1


동성애 연애를 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앞서 말한 바대로 내 복장은 팸-동성애 연애에서 ‘여성적’(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서술이기에 따옴표를 붙여 기록한다) 역할을 맡는 사람-에 가까웠으나, 성격이나 하는 행동은 부치-동성애 연애에서 ‘남성적’ 역할을 하는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과 맺는 관계로서의 사랑, 그리고 관계에 참여하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관점에 대한 것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맞춰 주려고 노력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서로 신뢰를 구축하는 것.

그런데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특히 동성애 연애에서, 이것을 초기에 알기가 꽤 어렵다. 이성애 연애는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맡는 역할이 어느 정도 분명하고 구분지어져 있는 것에 반해, 동성애 연애는 그 부분이 상대적으로 모호하다. 이 타이밍에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혹은 목소리의 높낮이와 비언어적인 표정과 몸짓 같은 것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정보가 쌓이면 상대방이 어떤 경우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되지만, 아직 상대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의 깊이가 얕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전달하고 무엇을 상대방과 나눌 것인지에 대해, 동성애 안에서는 좋게 말하면 열려 있으며 나쁘게 말하면 백지에 가까운 부분들이 많다. 이 초기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상대방의 복장으로부터 상대방의 역할을 유추해 내려는 시도들이 많은데, 나는 서로 상반된 신호를 보내는, 말하자면 고장난 신호등인 셈이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다음 뒤돌아 생각해 볼 때, 상대방을 잘 모르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헷갈릴 때는, 시간이 들더라도 정석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 상대방에게 말 걸고, 무해한 대화를 한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무해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 수준에서는 의미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너무 애쓸 필요가 없고, 가볍지만 해가 되지 않을 만한 주제와 방식을 잘 골라야 한다.

2)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본다.

내 방식대로라면 나는 이것을 ‘자기 말만 하지 않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다’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말의 총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어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 말이 많아지는 심리에 대해 잘 모르기는 한다. 여기서 전달하고 싶은 요점은 초기 단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본인이 말을 많이 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아닌지는 각자 판단하자.


일단 말을 걸고, 지속적으로 무해한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화제로 관련된 대화를 하는 것, 할 수 있으면 선물도 하고, 이렇게 했다면 일단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계속 말을 걸고 조언이나 가벼운 선물 등을 주려고 애썼더라도 상대방은 그냥 ‘좋은 동료-선후배’로 생각할 때도 있으며, 반대로 이 쪽에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상대방이 ‘이건 혹시?’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것은 플러팅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까다로운 지점이다. 퀴어 테마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둘 다 레즈비언 정체화가 끝난 상황이고 퀴어 테마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이건 동지애인지... 플러팅인지... *2


내 경우 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1)의 과정이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이는 서로가 갖는 호의를 빨리 구체화하고 싶어서 일단 자본다는 경우도 있다. 이게 나이가 비교적 어릴 때*3 한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사람간 개체 차이인지도 생각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 사이에 몇 번인가 일회적인 잠자리의 상대로 여성들을 만났다. 처음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여성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1) 핑거돔과 러브젤을 준비하고, 손톱은 바특하게 깎아 모난 곳이 없도록 다듬고, 섹스 전에 손 깨끗이 하기.

2) 깁-성관계에서 (손가락, 딜도, 여타 섹스토이 등으로) 삽입하는 역할-과 텤-받아들이는 역할-의 분배 이야기해 두기.

3) 키스 전과 삽입 전에 허락 받기. 섹스는 협업이고, 두 명이 하는 관계적인 일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동성애 섹스의 장점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중 큰 것은, 이성애 섹스를 할 때는 남성이 본인의 속도와 리듬으로 섹스를 운영하고 자기본위적으로 먼저 사정해 버리는 경우가 잦아서, 나와 상대방이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동성애 섹스에서는 비슷한 속도로 같은 장소를 함께 탐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는 부분이다. 친밀한 상대방과, 내밀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느낌은 상당히 따뜻하게 다가온다.

4) 손으로 깁을 할 때 되도록 상위 관절을 쓰도록 노력하기. 사람의 팔에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이 있는데, 감각은 손가락으로 하되 움직임은 어깨를 사용해보려고 시도해 보기.


1)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2)는 자연스럽게 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으니, 양자가 만족하는 섹스를 위해서 약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 두시면 좋겠다. 한 번은 내가 깁만 받은 채로 섹스를 끝낸 적이 있는데, 우리가 나눴던 대화의 맥락과 내용을 이후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텍도 받는 분이었고... ... 이 실수를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3)에 대해서, 분위기가 깨질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눈을 보고 하면 좋지만 부끄럽다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라도 물어 보시기를 권한다. 섹스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상대방이 긍정적인 피드백(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거나, 먼저 키스하거나...)을 줄 것이고,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중요하니까 강조해 두고 싶은데, 언어로 혹은 몸짓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는다면 멈춰야 한다.

4)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섹스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신체를 사용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평소에 근육을 사용하는 연습을 해 두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그다지 다름이 없고, 팸과 부치를 나누는 것에 큰 관심은 없지만, 그러한 역할들이 관계 초기의 혼란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팸과 부치의 역할 구분을 가지고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도 있다.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더 자유롭고 자신에게 충실한 방식으로 파트너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나는 동성애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으며, 남성의 성애화된 시선과 그로부터 비롯된 행동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의 성애화된 시선들과 그 행동들로부터 신선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2. 레즈비언들이 셋 이상 모이면 인권운동 단체를 창설한다는 슬프고 우스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3. ~20대를 염두에 두고 쓴다.

SERIES

독일의 맥주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어머니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딸'이 되고싶은 딸의 이야기

설화

#여성서사
"엄마~"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내가 엄마같다고. 하지만 이렇게 엄마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불려지니 더욱 비참하고 씁쓸했다. 딸로서 행동할 수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마저 먼지가 되어서 저 한마디에 그러모아놓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껏 자라오면서 의지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중국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 겸 학교체험을 가는데, 배를 타기 전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스불 잘 잠그고 문 단속 잘하..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