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er Vorteil, der Nachteil (3)
장점과 단점
남동생이 두고두고 나를 놀려먹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 사건이다. 11살 때 먹물을 제거하지 않은 오징어를 사온 후 요리했다. 당시 먹물 스파게티의 존재는 알았지만, 요리용 색소가 따로 있다는 것은 몰랐다. 오징어를 데치고 삶은 면과 볶는데, 예상과 달리 광택이 도는 검정색이 아니라 푸르죽죽한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일화에서 중요한 것은 엄마가 11살짜리에게 돈을 주고 혼자 장을 보러 가게 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내가 사기로 한 것과 전혀 다른 무엇, 이를테면 멋져보이는 신상 초콜릿 같은 것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고, 나도 그러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권한 또한 있었다. 내 모부는 자식들을 성별을 갈라 대접하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을 때 공정했으나, 나 또한 어렸다는 점에서 본다면 가혹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다른 가정들은 대놓고 남자아이만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대적으로 나는 내 상황이 낫다고 생각했으며, 주어진 책임을 잘 이행해내고 싶었다. 모부는 바빴고, 나는 동생을 ‘업어 길렀으며’*1, 책임감이 아주 강한 아이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자랐다.
그러나 가정 바깥의 한국 사회는 여성을 책임자로 대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높은 성취도를 보이더라도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에 계속해서 머물렀다. 해낸 일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부분-외모, 사회성 등–에서 잔혹하게 평가당했다. 특히 내가 몰두했던 분야가 ‘여성주의’ 혹은 ‘미술’, ‘여성주의 미술’ 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대학 때 남성 교수는 내 작업에 대해 “졸업 전시에 이런 작업 하는 애들이 꼭 한 명씩 있는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냐”라고 말*2했고, 졸업 후에 만난 남성 작가들은 “나이가 어려서 이런 (성적인) 주제로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요즈음은 역차별이 있다, 여자들이 더 인정받는다” 는 식의 말들을 여과없이 토해냈다.
기회가 되는 경우에, 나는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냈고 사람들의 평가는 상향조정되었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 나를 잘 모르고 스쳐지나갈 뿐인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이 가진 ‘여성성’의 기준을 갖고 나를 깎아내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나는 내게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에 지쳐갔다.
나는 독일에서 지내는 것이 편안하다. 여기서는 내 외모나 사회성에 대해 대부분 관심이 없고, 그 부분을 나는 안락하게 느낀다. 한국에서 가졌던 관계들에서 마이너스적인 힘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것이 덜어진 부분에서 생기는 해방감이 상당하다. 알아서 나 자신을 챙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지속적으로 생기기는 하나,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버텨내는 것은 익숙한 편이다. 눈물이 나는 일이 많지만, 울고 나면 조금 상쾌해진다. 나는 지구력이 있고 성실한 편이어서, 시간은 내 편이라고 멋대로 생각*3하고 있다.
‘너는 한국이 그립지 않니?’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많은 문장을 건너왔다. 개인적인 질문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답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실상 성격적인 문제에 앞서 이민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돈과 시간’이며, 돈이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은 정확하고 잔인한 사실이다. 다만 영주권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작동했던 요소들은 무엇일까?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1. 남동생의 표현이다. 모든 일에 진지한 나와는 달리 유들유들한 성격인데, 특유의 애교섞인 표현인 듯하다.
*2. 이 분은 내 졸업 작품을 보고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라고 하셨다.
*3. 유념해야 하는 것은,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주장하는 지점들과 관련한 나의 개인적 면모들-어떤 맥락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 부분들은 상당히 편집되어 있다. 동일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내 이야기가 서술들 중 하나로 기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