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는 ‘유재석의 염려’라는 음원을 들을 수 있다. 그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투로, “그래, 은이야. 너 고민해결해주는 그거 한다며. 그것도 좋은데, 네 고민부터 좀 해결해. 은이야, 그만 숙이랑 붙어 다니고, 데이트 좀 하고. ~ 은이야, 친구 말 좀 들어. (이하 생략)”* 라고 말한다. 이 음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유재석의 말투와 한숨, 그를 듣는 김숙의 웃음 등이 조화를 이루어 배꼽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송은이가 이 팟캐스트를 만들게 된 이유를 알고 난 후에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언니, 나 방송에서 자꾸 잘려.” 절친한 동생이자 후배 개그우먼 김숙의 말*에 송은이는 ‘우리끼리 해보자’며, “우리가 잘리지 않는 방송을 만들자.”*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고 한다. 또한, 자신과 김숙 같은 비혼 여성 예능인이 기존 방송 시장에서 자리를 찾기 어려워지자 스스로 방송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비로 녹음 장비를 사서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인터뷰 기사를 접한 후, 과연 유재석은 이런 걱정을 해본 적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가 국민MC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무수한 고민들로 밤을 지새웠을 것도, 그 시간 끝에 ‘국민MC’라는 타이틀을 달고, 탁월한 능력과 지식, 그에 걸맞은 겸손함 등으로 무장한 그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국민MC이기 전에, 남성 예능인이다. 그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능인 앞에 ‘남성’이 붙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는 큰 차이를 가져다준다.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김숙이 “2015년이 남자들 판이었다.”*라고 예능판의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한마디로도 ‘남성’이라는 성별이 가진 힘이 어떤지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이어 그는 “송은이는 43살의 나이에 엑셀을 배우고 있다.” 라며 웃음을 유발했지만, 사실 웃기만 하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는 왜 부족할까. 여성 예능은 오래 가지 못해서? 금방 망해서?
그런 것만으로 이유를 대기에는, 알탕 예능들에서도 망한 사례들은 충분히 많다. 다만, 여성 예능에 비해, 남성 예능의 수가 확연히 많다 보니, 그 안에서 알탕 예능 하나가 망한다 해도 그 타격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예능인들이 남자 예능인들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재미가 없어서?
혹자는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24년 경력에서 20년의 공백기*를 보낸 김숙을 먼저 사례로 들어보겠다. 김숙은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듯한, 일명 ‘가모장제’적인 태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통쾌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남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만 잘하면 돼.”,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집안이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동안 예능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 예능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여성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보이는 남성 예능인들에게 ‘상남자다.’, ‘진짜 남자다.’와 같은 말들로 그들의 행동을 포장하고 칭찬해줬다면, 김숙은 반대로 그러한 행동에 유쾌하게 반기를 들면서, ‘남성답다’고 하는 모습들이 사회에 자리 잡은 가부장제에서 기인하고 있고, 그 모습은 억압적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다음으로, 송은이는 우리가 몰랐던 연예인들의 재능을 집어내어 그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안영미의 19금 개그*와 셀럽파이브, 다비이모를 적절한 예시로 들 수 있다. 얼마 전 예능인 김신영이 송은이의 소속사로 들어간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실로 이루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료 연예인들을 위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송은이의 프로필상 방송 경력들을 보면, 그는 매년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남성 연예인들에 비하면, 그 방송의 수는 많지 않다. 이를 보고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예능판에서 남성 연예인들은 한 이미지로 빠르게 인기를 얻게 되면, 채널을 돌려도 그 남성만 보일 정도로 많은 방송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송은이가 매년 방송을 하면서도, 본인을 포함한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점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경험에서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쇼핑왕 누이’, ‘판벌려’, ‘밥블레스유’와 같이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프로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보고도 그들이 재미없고, 능력이 부족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기존에 만연하게 퍼져 있던 알탕 예능에 빠져, 여성들의 재능과 능력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남성위주로 흘러가는 방송가에서, 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기도 쉽지 않았을 거란 사실은 말하자면 입 아프다.
김숙이 경력 24년 중 20년의 공백기가 있었다는 것, 송은이가 자신의 적성검사를 다시 해 사무직이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들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여성예능인들을 위한 자리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예능판에서 남성은 남성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도 그들의 능력을 쉽게 인정받고 자리가 충분히 보장된다. 남성들이 성희롱적인 이야기를 해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줘도, ‘남자니까 그럴 수 있어.’라는 말들로 이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들은 그에 비해, 감춰야 할 모습들도, 조심해야 할 모습들도 너무 많다. ‘여자가 너무 예민하다. 너무 세다.’와 같은 말들로 검열 하는 잣대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네 고민부터 해결해. 친구 말 좀 들어.”라는 유재석의 말에서, 그가 남성이라서 가질 수 있었던 권력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가 의도하고 한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송은이는 정말로 본인의 고민 해결을 위해 ‘잘리지 않는 방송’, 즉 자기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송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것일지도.
송은이와 김숙의 노력들, 그 외에도 여성 연예인들의 노력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발맞춘 사람들의 인식 변화 덕분에, 이제 막 여성 예능인들이 ‘대세’ 타이틀을 달면서 한 자리씩 차지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 남성이 담배로 여성 연예인들을 당황시키는 개그가 시대착오적으로 다가오고,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가 불편하고, 남성이 여성의 외적인 모습을 평가하는 개그는 재미도 없다. 여성이 여성과 연대하며, 불편함 없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예능을 보고 싶다. 여전히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는 부족하고, 더 많은 여성의 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 예능인들을 잊었는가 한번 생각도 해봐야 한다.
*참고자료
1)팟캐스트 ‘송은이 김숙 비밀보장’ 73회-비밀보장 제2회 어워드 참고. (글자만으로는 어투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직접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2)강푸름 기자, 「‘기획자’ 송은이의 성공, 주류를 흔들까?」, 『여성신문』, 2018.01.24.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3083
3)신소영 기자, 「"잘렸다"는 후배에게 송은이가 화내며 한 말... 부러웠다」, 『오마이뉴스』, 2020.01.26.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0501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4)위근우 칼럼니스트, 「상호모방 몸에 밴 TV예능 세상서 ‘기획자’ 송은이가 돋보이는 이유」, 『경향신문』, 2017.10.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201734005&code=960100
5)무한도전 462회, 2016.01.09. 방영 https://tv.naver.com/v/688031/list/61419
6)대화의 희열 1회, 2018.09.08. 방영
7)비디오스타 68회, 2017.10.24. 방영
8)전지적 참견 시점 101회, 2020.04.25. 방영
9)무한도전 462회, 2016.01.09.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