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사실 시험 끝나자마자 타투했다.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거든. 엄마가 저번에 스티커 붙인 거냐고 물어본 거 사실 타투 맞아. 엄마가 타투한 사람들 보면 이해 못하기도 하고, 무섭다고 해서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없었어. 나름대로 의미 가득 채워서 한 건라, 엄마도 예쁘게 봐주면 좋을 텐데, 내가 자유롭게 자랑할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야.
그리고 요즘 연애해.
나 저번에 술 취하고 들어왔을 때 누구한테 그렇게 전화한 거냐고 물어봤잖아. 오빠한테 잘못 걸었을 땐, 같이 술 마신 애가 남자였나, 쟤가 남자에 미쳤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며. 물론 다음 날 오빠가 자기한테 걸었던 거라고 오해를 풀었지만. 엄마는 가족들 사이에 이야깃거리 하나 더 생겼다며 웃어댔지만, 사실 그 날 택시 태워줘서 보내준 거 내 애인이야. 내가 동기들이랑 신나게 술 마시다가 너무 취해서 애인한테 전화했는데, 걱정된다고 어플로 택시 불러준 거였더라고. 집에 도착해서도 다른 동에 가서 문 안 열린다고 헤매고 있으니까, 애인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대. 진짜 웃기지. 아무튼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착한 친구야. 나랑 같은 학교이고, 그러니까 같은 여자야. 맞아, 여자 친구야. 엄마가 정신병이라고 하는 동성애자가 엄마 딸이라고.. 엄마가 순수하게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더 용기를 낼 수는 없었어.
그냥 우린 자주 싸우고, 내가 힘들어서 헤어지자고도 하고, 그 친구가 붙잡고, 그래서 다시 만나고. 언젠가 또 싸우겠지 하면서도,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사랑을 주고받아. 여느 커플들이랑 다를 게 없지? 정신병인 게 아니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연애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진짜 신기한 건 그 친구랑 만나다 보니까 내 애착유형이 ‘회피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야. 헤어지자 한 것도, 걔랑 자꾸 싸우니까 도망가고 싶었는데, 그게 회피형인 사람들의 특징이래. 갈등상황을 못 견디는 거.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는 거. 옛날에 부모님과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 유형을 드러낸다고 하더라고.
근데 엄마가 저번에 오빠랑 나한테
-엄마가 그 땐 너무 어리고 바빠서 너희를 직접 못 키웠잖아. 그래서 나는 참 아쉬운 게 많다. 언제 걷기 시작했는지, 어떤 옹알이를 했는지, 물어봐도 난 모르니까. 그래서 가끔은 시간을 돌리고 싶기는 해.
이렇게 말했잖아.
-엄마도 사정상 할머니랑 같이 산 적이 얼마 없거든. 그래서 엄마는 그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사랑이 외로움으로 남아있어. 근데 나도 너희한테 그렇게 못 했잖아. 그래서 혹시 너희도 자라면서 그런 게 있진 않았나 걱정이 돼.
마치 엄마의 죄를 고백하듯이 말하는데, 내가 그래서 회피형이 되었나 싶기도 했지. 물론 엄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 다만, 우리 엄마는 너무 무서워 라고 생각한 정도. 아마도 그건 학원을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혼났던 기억 때문일 거야. 오빠도 같은 마음으로 엄마한테는 어떤 반박도 못하고 엄마 말이라면 들어야만 했다고 하잖아. 그 땐 엄마가 밉고 싫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엄마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어.
우리나라 사회에서 “훌륭한 엄마라면 이런 건 해줘야죠.” 라고 떠벌대는 기준들 말이야.
엄마, 근데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아빠는 우리한테 그런 말 한 적 한 번도 없어.
-내가 너 학원 다니는 거, 옷 사는 거, 먹는 거, 용돈 다 벌어다줬는데, 아빠한테 이렇게 대해? 나만큼 불쌍한 아빠는 어디에도 없을 거다.
맨날 이렇게만 말해. 내가 아빠 대우 안 해줘서 서럽다고.
내가 집안일 하면서 아빠는 왜 집안일을 안 하냐고 엄마한테 아빠 흉보잖아. 근데 엄마랑 나 말고, 누가 아빠 그거 안 한다고 뭐라 한 거 본 적 있어? 아빠는 집에 올 때 아이스크림만 사와도 사람들이 칭찬해주잖아.
-애들이 먹고 싶다 해서 사왔나 보네. 이런 아빠가 요즘에 어디 있어. 너도 참 신랑 잘 만났지. 잘 결혼했어.
아빠가 먹고 싶어서 사온 건데요.
라고 말하면 아빠한테 너무 그런다고 나만 혼났잖아.
그런데 같이 다이어트 복싱하러 다녔을 때, 엄마는 복날에 삼계탕 안 끓여줬다고 같이 운동하던 아줌마들이 엄마한테 뭐라 했잖아.
-엄마가 삼계탕을 안 끓여줬어? 나쁜 엄마네. 엄마가 너무 무관심하다.
엄마는 당신이 무심해서 그렇다며 웃어넘기고는 했지만, 나는 그걸 농담으로 여기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났어. 삼계탕 못 먹으면 죽는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삼계탕 안 먹고도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그 하나에 엄마의 자격을 운운하다니 치사하다 싶었거든.
다음부턴 엄마도 “그거 하나 안 끓여주면 엄마 자격 박탈당하나요?” 라고 반박 좀 해봐.
한 살 더 세상을 알아갈수록, 사회는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만 들어. 여자와 남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 여자에게는 유독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 걸까 싶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은 따로 있는 건지, 그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건지, 답 안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물어보고 싶어.
만약에 엄마의 호칭이 ‘아빠’로 바뀐다면 뭐가 달라질까? 우리한테 아이스크림만 사다줘도 훌륭하다고 칭찬받고, 엄마에게 남아 있는 죄책감도 같이 녹여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