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김희애 배우를 좋아한다. ‘우아한 거짓말’, ‘윤희에게’를 보며 나도 모르는 새에 빠져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지만, 그 두 개의 영화에서 김희애는 딸을 가진 엄마 역할을 했다. ‘우아한 거짓말’ 속의 김희애는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가슴에 묻은 채, 맏딸과 이를 악물고 세상을 살아가는 엄마라면, ‘윤희에게’ 속의 김희애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딸과 살아가는 엄마이다. 내가 이 두 영화 속 김희애 배우를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에 의해 묻히지 않도록 하면서도,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편하게 보여줘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대감 때문에 ‘부부의 세계’ 속 김희애 배우의 모습도 색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드라마 속 지선우(드라마 속 김희애 역할의 이름)는 병원 부원장이면서,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의 역할,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아내의 역할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미디어가 다루던 여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김희애 배우이기 때문에 기대감과 설렘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지선우는 남편이 바람 핀 사실과 주변의 지인들이 이를 눈 감아줬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다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혼을 이끌어내는 똑똑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이 썩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아빠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있고, 아빠가 바람 핀 것은 엄마의 잘못이고, 별 거 아니니까 이혼하지 말라는 아들의 모습과 남편의 접견 금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남편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모습은 보는 나의 마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아들이라 그래. 딸이었어 봐, 바로 이혼하라 그런다. 그래도 자기한테 유리하게 만들려면 어쩔 수 없겠지, 이게 현실일 거야. 차라리 이대로 이혼하고 윤희에게 찍으면 좋겠다.’ 라며 손가락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지선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주에 방영한 7,8화에서 지선우의 집으로 던져진 돌이나, 지선우가 집에 혼자 있는 동안 괴한이 침입하여 그에게 폭행을 저지르는 장면 등은 도저히 나를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장면들의 시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해자의 시점이었고, 불필요할 정도로 과했으며 길었다. 보는 동안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지. 이 장면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왜 김희애 배우를 데려다가 저런 연기를 시키는 걸까.’ 라며 수많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이 새 가정을 꾸려 돌아왔을 때, 잘못을 범한 자들이 아닌, 지선우에게 조롱과 손가락질을 하는 여자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듯 흘러가는 분위기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폭력과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남자가 자기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여성, 돈 많은 사람이고 가방을 사줄 것 같아서 유부남을 유혹했다는 여성, 그리고 등장인물 소개란에서조차 ‘~의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여성들을 보며, 이 드라마는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안겨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 화 방송될 때마다 화제를 이끌어 그 인기를 뽐내고 있는 드라마가 여성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모습이 구시대적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현실 속 여성들은 변화하고 있다. 뒤를 돌아 손을 뻗은 포즈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는, 이제 그런 건 ‘너나 해’라고 말하며 수트를 입은 채 무표정으로 노래한다. 그의 외적인 모습만 보던 나는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노래실력에 감탄하는 한편, 미디어의 교묘함을 느꼈다. 미디어에서 성적 대상화한 여성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그들의 실력이 아닌 외적인 모습에만 눈을 두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또한 같은 선상에서 치밀해 보인다.
여성은 엄마로서 바깥일도, 집안일도 해내야 하고, 남편이 바람을 폈을 때는 얌전히 이혼을 요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언제든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라 경고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런 위험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백마 탄 왕자님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마무리까지도 완벽하다.
끝없는 폭력 신에 긴장하고 끔찍해하는 나에게, “드라마에서 이런 걸 보여주면, 이제 여자들은 남자가 바람 피워도 쉽게 못 헤어져.” 라는 말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만 봐도 미디어는 조용하게 우리의 삶에 침투하여,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의 의식을 세뇌시킨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속 여성들이 성적대상화 되는 모습, 피해자가 되는 모습은 궁금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흥미 유발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여성들은 힘이 있고 변화무쌍하며 이성과 감정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여자들의 능력은 내가 감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하다. 지선우만 봐도 의사로서의 능력은 이미 입증되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 여혐 가득한 세상을 떠나는 일 뿐이다. 그에게 공감해주지 못하는 신경정신과 의사도, 아빠가 더 좋다는 아들도, 그를 협박하며 폭행을 사주하는 전남편도 모두 필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미디어는 여성들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일이 남성의 폭력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것, 남성이 잘못한 일에 대해 피해여성이 같은 여성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여성들이 미디어 속 편견들에 이의하고, 수정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예민하고 감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하여 당연한 권리들을 요구할 뿐이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편견들이 마냥 재밌고, 자극적이라며 손가락 사이로 그들을 보고만 있으면, 이 문제는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도, 미디어도, 그리고 이 사회도 흐린 눈을 똑바로, 크게 떠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