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을 입력하세요.'
150자 안에 나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고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내 지난 삶을 돌아봐야 해. '자퇴생, 반 백수, 취미는 글쓰기와 독서' 같은 건 어딘가 진부하고 재미가 없어 보여. 모든 시간을 돌려봐도 난 이런 사람이라고 내세울만한 게 없을 만큼 내 인생은 평범해. 결국에 쥐어짜낸 거라고는
일상을 새롭게 기록합니다.
거짓말이야. 내 일상은 너희들과 다를 게 없거든. 정말로 새로울 건 없는데, 요즘 어딜 가나 시선을 조금 받고 있어. 그건 아마도 내 애인이 여자이기 때문일 거야. 나는 성소수자이고, 그 안에서도 양성애자거든. 나는 나의 성지향성을 깨닫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를 밝히는 건 여전히 꺼려지는 일이야. '나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라는 한마디로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에서는 힐긋거리며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자주 느껴. 그럴 때면 나도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눈을 응시하곤 하는데, 내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그 눈들은 모를 거야. 그저 신기해서, 혹은 이상해서 눈이 저절로 가는 거겠지. 나는 가끔 그들에게 '언제부터 이성애자인 걸 알았어? 남친이랑 손잡고 다니면 막 쳐다보지 않아? 같은 성별 사람 안 만나봐서 이성애자라고 착각하는 거 아냐?' 라고 물어보고 싶기도 해. 사실 이건 내가 종종 받는 질문이야.
언제부터 양성애자인 걸 알았어? 애인이 여자면 남자 역할은 누가 해? 넌 그럼 남자하고 여자하고 동시에 좋아하는 거야?
라고 악의는 없다지만 나에게는 공격적인 질문들. 어떻게 답해줘야 이해할까 라고 고민하다가도, 내가 이걸 이해시켜줘야 하나 라는 허무함이 들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 없는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해. 억울하지. 우리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피해야 하니까. 가족들에게는 꽃을 받아 와도 친구에게 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는 애인이 남자인 것처럼 말하기도 해. 아니면 아예 애인이 없다고 해버리거나. "군대 갔다 왔어? 안 갔다고? 그럼 언제 간대?" 이런 난감한 질문들이 몰려오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건 아냐.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슬퍼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여성 콘텐츠들을 공유하기도 해. 조금 의견이 다른 부분이 생겨도 서로 배우며 격려해주기도 하고. 정혈(생리)인 날에도 얼마나 힘들지 잘 공감해주고, 더 신경써주기도 해. 정혈대를 대신할 수 있는 정혈컵이나, 탐폰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생리 그거 참으면 안 돼?"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들을 필요도 없지. 편하다고 하는 속옷도 공구하기로 했고, 시위에도 참여하고, 손잡고 산부인과 가서 자궁경부암 주사도 맞기로 했어. 언젠가는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내가 양성애자라고, 내 애인이 여자라고 해서 색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 오히려 나는 내 성정체성을 깨달아서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 같아 다행이라고. 그리고 네가 이 글을 쓰기까지 용기 냈을 나를 응원해주기만을 바란다고도 하고 싶었어. 아, 내 소개글은 이제 완성됐어.
일상을 새롭게 기록합니다. 퀴어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