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내가 엄마같다고. 하지만 이렇게 엄마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불려지니 더욱 비참하고 씁쓸했다. 딸로서 행동할 수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마저 먼지가 되어서 저 한마디에 그러모아놓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껏 자라오면서 의지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중국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 겸 학교체험을 가는데, 배를 타기 전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스불 잘 잠그고 문 단속 잘하고!"를 연신 외쳤다. 그 당시 주문처럼 외웠다. 엄마가 이때즈음 아빠와 헤어졌기에 동생을 돌보는 것도, 엄마를 챙기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이 주문은 이제는 외지 않는다. 행동할 뿐. 나가기 전에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갔는지, 전기 코드는 다 뽑았는지, 창문은 잘 잠갔는지, 문은 잘 잠갔는지 확인하는 것이 외출할 때 꼭 해야하는 행동들이 되었다. 혹시 집에 불이 날까봐, 도둑이 들까봐 등등 머릿속을 심란하게 만드는 강박행동들은 심해져서 이제 내가 본 기억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꼭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엄마는 말투에 애교가 많다. 엄마의 아이같은 말투에 나는 그저 인자한 어른처럼 "그랬어~?"하면서 이어지는 발화들을 받아주기 바쁘다. 엄마는 스스로 하려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해달라고 한다. 방법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정말 단순한 일들도 내가 해줘야 하고 하다하다 지쳐 퉁명스레 "엄마가 해"하면 엄마는 그세 시무룩해진다. 그러면 나는 또 미안해져서 자책하고 내가 한다.
엄마는 질투를 드러낸다. 한 달동안 작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뉴욕으로 여행을 갔었다. 꼼꼼히 계획을 세워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 나를 작은 외할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셨다. 작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잠시 한국으로 오셨을 때, 외가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계속 내 칭찬을 했는데 엄마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니라고, 내가 더 그렇다고. 엄마는 내가 나를 깎아내리게 만든다. 친구들이 엄마와 인사하게 되는 경우, 집에서 항상 물어봤다. "엄마, 몇 살처럼 보인데? 엄마 예쁘대?" 나는 거기다 정해진 대답을 해줘야 한다. "엄마, 30대 초반으로 보여서 엄마인지 몰랐대", "나랑 자매같대" 등등. (스스로를 얼마나 더 나이들게 만들어야 하지) 내가 어떤 옷을 사거나 엄마의 옷을 입어보게끔 만든 다음, 옷 입은 걸 보면 말한다. "나 너무 뚱뚱해. 꼬끼리같아"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깎아내야 한다. "에이, 아냐. 이 옷이 너무 작은거야. 봐봐 나도 여기랑 이런데 안맞잖아" 등등.
근데 또 엄마는 무심하다. 무심해서 무자비하게 상처를 낸다. 엄마가 짜증을 내는 대상도, 매일 돈이 없다고 말하는 대상도, 회사에서 힘든 이야기를 하는 대상도 온통 나이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엄마와 통화 중 (아마 싸우거나 일방적으로 내가 혼나거나 했을 거다) "엄마 나도 진짜 너무 힘들어. 나 상담 받고 싶어 그래서"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그랬다. "너가 그걸 왜 받아(너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런걸 받아. 너가 힘들 일이 뭐가 있어)". 엄마 특유의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싸늘한 말투가 있다. 툭, 하고 가벼이 던지지만 내 마음은 이미 깨져 산산조각났다.
엄마의 이런 말들, 행동, 태도, 생각들은 모두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든다. 잘 지내다가도 엄마가 이런 식으로 할 때, 나는 스위치가 딸깍 눌리고 짜증을 낸다. 그것도 금방 미안해져서 방금 던진 말을 만회하려고 더 다정하게 말하고 내가 먼저 사과한다.
엄마와 함께 있는 나는 난파선에 탄 선원같다. 탈출하면 살 수 있는데 나는 그 배를 너무 사랑해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그렇다. 너무 사랑해서 모든 말과 행동, 눈빛 등등 엄마의 모든 것이 나에겐 다 상처다. 의지할 수 없는 엄마, 엄마라고 부를 수 없는 엄마.
나도 힘들다 이야기하고 싶다. 엄마, 나 수업에서 질문을 하는데 초점을 잘못 짚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야. 내가 선택한 건데 근데, 미래를 서서히 악화시키는 답지를 선택한 거 같아. 엄마, 나 회사사람들이 꼰대짓하고 일을 해도 배우는 게 없는 것 같아서 힘들어. 엄마, 나 과사에서 근로도 해야하고 학과 공부도 해야하고 추가로 알바도 해야해서 힘들어. 엄마, 나 더 잘하고 싶은데 학원을 못다녀서 속상해. 엄마 아파, 열나는 것 같아.
벗어나고 싶지만 너무 사랑하는 우리 엄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 인해 많이 울었지. 그래서 많이 우울하고 여전히 우울해. 오늘도 챙겨줘야 하는 우리 엄마. 아프다면서 술 마시고 그래서 아프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 그러면 나는 하지말라고 화를 내야 하고 밥을 잘 챙겨먹으면 그 누구보다 다정하게 "잘했네~"하고 말하지. 진상이 왔다고 하면 "누구야. 내가 가서 책상 엎어줄게. 내가 싸워줄게. 나 잘싸우는 거 알지?", 전화를 끊을 때는 "오늘도 고생했네~".
엄마한테 한번만이라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어. 엄마를 제대로 '엄마'라고 부를 날이 있을까.
나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데 오늘도 엄마를 키우네.
(제목은 박연준 시인의 '아버지는 나를 처제,라고 불렀다'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