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할머니는 수면제를 찾는다. 하루 내내 잠만 자다가, 밤이 되면 또 자려고 하니 찾게 될 수밖에. 엄마는 할머니가 수면제에 의지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잠든 척을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소리를 지른다.
“수면제 줘! 너는 왜 나한테 수면제를 안 주는 거야. 잠이 안 와 죽겠는데!”
우리 할머니는 치매다.
치매 환자를 생각하면 목적지를 잃은 채 길거리를 서성이고, 같은 질문이나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연상하기가 쉽다. 우리 할머니도 처음에는 좀 전에 말한 것도 금방 잊어버려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매번 처음 듣는다는 듯이 반응을 했다. “그렇구나. 아주 깜빡 잊어버렸어. 기억이 안 나.”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기억해보려는 노력을 하라고 할머니를 다그쳤는데, “난 몰라. 하기 싫어.”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장도 보러 다니시고 운동도 다니셔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시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 힘이 부쳐 주저앉거나 무작정 엄마에게 데리러 오라며 전화를 하는 경우가 일상이었지만, 차라리 그 때가 나았을 지도 모른다.
오늘의 할머니는 살이 많이 빠졌다. 할머니를 안으면 항상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 냄새도 없어졌고, 주름이 가득해진 살에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 보인다. 아침에 엄마가 깨워야 일어나고, 매일 요일을 확인하지만 그건 그저 할머니에게 남아있는 습관에 불과하다. 할머니가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서 자기, 자리 바꾸어 다시 자기, 억지로 밥 먹기, 다시 자기, 화장실 가기, 돌아와서 자기를 무한 반복한다. 중간 중간마다 내 이름을 힘차게 부르는데, 소파에서 일어나기 힘들거나 물이 마시고 싶을 때와 같은 경우이다. 처음엔 웃으면서 달려가 할머니를 일으켜주고, 물도 떠다줬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겨버려 할머니와 투닥거리기에 이르렀다.
“이운!!!!!!!! 나 좀 일으켜줘.”
“할머니, 이렇게 나만 찾으면 어떡해. 내가 일하러 나가서 집에 할머니만 혼자 있으면 어떻게 일어날 건데.”
“그러게. 움직여야지. 나 찬물 좀 떠다줘.”
“내가 저번에 물 뜨는 거 알려줬지. 할머니가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소파에 누워계시는 할머니 앞을 지나가다가도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면 일부러 외면한다. 할머니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함이랄까.
할머니가 밥을 먹게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밥 먹어. 할머니 약 먹어야 돼서 밥 지금 먹어야 돼.”
“아냐, 안 먹어. 먹기가 싫어.”
“어제 할머니가 국수 먹고 싶다 해서 엄마가 국수 해놨는데 안 먹으면 어떡해.”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할머니와 밥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거의 두 입만 먹고 내려놓거나 툭하면 밥을 물에 말아먹는다. 때로 할머니가 밥 먹기를 완강하게 거부하면 열량이 높은 베지밀이라도 드시게 만들거나, 할머니가 배고프다 하실 때까지 가만히 둔다.
하루는 할머니와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할머니가 화면 속 만두가 먹고 싶다 하셔서 반가운 마음에 만두를 사온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만두를 2개 드시더니 손을 놓으셨다.
“아이고, 너무 많이 먹었어. 너 다 먹어.”
“할머니 먹고 싶대서 달려가서 사왔는데, 이것만 먹음 어떡해.”
“난 몰라. 난 너무 배불러.”
만두 대신 내 속이 터져버리는 기분이었다. 항상 그런 식이다. 먹고 싶다 해서 사오면, 한 두입 먹고 말아버리는.
그리고 엄마가 퇴근하면 나는 할머니가 오늘은 어땠는지 보고 혹은 고자질을 하고, 한 번씩 할머니를 의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상해. 할머니 화장실 갈 때는 벌떡 벌떡 잘 일어나잖아. 근데 왜 평소에는 나를 그렇게나 부르냐고. 그리고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갑자기 나보고 아파 죽겠대. 좀 전까지 나랑 밥만 잘 먹고 수다만 잘 떨더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아니, 만두도 사왔더니 두 개만 먹고 딱 놔버리잖아. 나 허무하게.”
엄마는 내 이야기에 깔깔 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게 되기까지도 쉽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씻다가 넘어지고, 한밤중에는 방문을 열지 못해 문 앞에 주저앉기도 하고,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도 머리를 부딪쳐 넘어지는 일도 허다하게 일어나서 나의 신경과 두 귀는 온통 할머니에게 쏟아져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종종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는 환청을 듣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바쁘게 사계절을 구경시켜주던 할머니가 아기처럼 기어서 거실로 나오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올 때도,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답답함에 화가 날 때도 있다. 기억을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애꿎은 사람을 의심하는 일, 아무 기력 없이 잠만 자는 일들도 모두 치매 증상의 하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를 할머니로서, 한편으로는 치매 환자로서 생각해야 하고, 그만큼 치매 노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하기만 하고 든든할 줄만 알았던 한 여성의 시간이 흘러감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로는 지쳐서 차라리 그 시간이 얼른 끝나버렸음을 바라기도 하는 나의 마음 또한 어떤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나는 그렇게 오늘의 할머니에게 매일매일 적응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