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할머니01

핀치 타래여성서사할머니치매

오늘의 할머니01

나와 할머니의 하루

이운

밤이 되면 할머니는 수면제를 찾는다. 하루 내내 잠만 자다가, 밤이 되면 또 자려고 하니 찾게 될 수밖에. 엄마는 할머니가 수면제에 의지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잠든 척을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소리를 지른다.

“수면제 줘! 너는 왜 나한테 수면제를 안 주는 거야. 잠이 안 와 죽겠는데!”


우리 할머니는 치매다.  


치매 환자를 생각하면 목적지를 잃은 채 길거리를 서성이고, 같은 질문이나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연상하기가 쉽다. 우리 할머니도 처음에는 좀 전에 말한 것도 금방 잊어버려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매번 처음 듣는다는 듯이 반응을 했다. “그렇구나. 아주 깜빡 잊어버렸어. 기억이 안 나.”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기억해보려는 노력을 하라고 할머니를 다그쳤는데, “난 몰라. 하기 싫어.”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장도 보러 다니시고 운동도 다니셔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시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 힘이 부쳐 주저앉거나 무작정 엄마에게 데리러 오라며 전화를 하는 경우가 일상이었지만, 차라리 그 때가 나았을 지도 모른다.

 오늘의 할머니는 살이 많이 빠졌다. 할머니를 안으면 항상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 냄새도 없어졌고, 주름이 가득해진 살에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 보인다. 아침에 엄마가 깨워야 일어나고, 매일 요일을 확인하지만 그건 그저 할머니에게 남아있는 습관에 불과하다. 할머니가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서 자기, 자리 바꾸어 다시 자기, 억지로 밥 먹기, 다시 자기, 화장실 가기, 돌아와서 자기를 무한 반복한다. 중간 중간마다 내 이름을 힘차게 부르는데, 소파에서 일어나기 힘들거나 물이 마시고 싶을 때와 같은 경우이다. 처음엔 웃으면서 달려가 할머니를 일으켜주고, 물도 떠다줬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겨버려 할머니와 투닥거리기에 이르렀다.

 “이운!!!!!!!! 나 좀 일으켜줘.” 

“할머니, 이렇게 나만 찾으면 어떡해. 내가 일하러 나가서 집에 할머니만 혼자 있으면 어떻게 일어날 건데.” 

“그러게. 움직여야지. 나 찬물 좀 떠다줘.” 

“내가 저번에 물 뜨는 거 알려줬지. 할머니가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소파에 누워계시는 할머니 앞을 지나가다가도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면 일부러 외면한다. 할머니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함이랄까. 

할머니가 밥을 먹게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밥 먹어. 할머니 약 먹어야 돼서 밥 지금 먹어야 돼.” 

“아냐, 안 먹어. 먹기가 싫어.”

 “어제 할머니가 국수 먹고 싶다 해서 엄마가 국수 해놨는데 안 먹으면 어떡해.”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할머니와 밥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거의 두 입만 먹고 내려놓거나 툭하면 밥을 물에 말아먹는다. 때로 할머니가 밥 먹기를 완강하게 거부하면 열량이 높은 베지밀이라도 드시게 만들거나, 할머니가 배고프다 하실 때까지 가만히 둔다. 

 하루는 할머니와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할머니가 화면 속 만두가 먹고 싶다 하셔서 반가운 마음에 만두를 사온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만두를 2개 드시더니 손을 놓으셨다.

 “아이고, 너무 많이 먹었어. 너 다 먹어.”

 “할머니 먹고 싶대서 달려가서 사왔는데, 이것만 먹음 어떡해.” 

“난 몰라. 난 너무 배불러.” 

만두 대신 내 속이 터져버리는 기분이었다. 항상 그런 식이다. 먹고 싶다 해서 사오면, 한 두입 먹고 말아버리는. 


그리고 엄마가 퇴근하면 나는 할머니가 오늘은 어땠는지 보고 혹은 고자질을 하고, 한 번씩 할머니를 의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상해. 할머니 화장실 갈 때는 벌떡 벌떡 잘 일어나잖아. 근데 왜 평소에는 나를 그렇게나 부르냐고. 그리고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갑자기 나보고 아파 죽겠대. 좀 전까지 나랑 밥만 잘 먹고 수다만 잘 떨더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아니, 만두도 사왔더니 두 개만 먹고 딱 놔버리잖아. 나 허무하게.”

 엄마는 내 이야기에 깔깔 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게 되기까지도 쉽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씻다가 넘어지고, 한밤중에는 방문을 열지 못해 문 앞에 주저앉기도 하고,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도 머리를 부딪쳐 넘어지는 일도 허다하게 일어나서 나의 신경과 두 귀는 온통 할머니에게 쏟아져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종종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는 환청을 듣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바쁘게 사계절을 구경시켜주던 할머니가 아기처럼 기어서 거실로 나오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올 때도,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답답함에 화가 날 때도 있다. 기억을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애꿎은 사람을 의심하는 일, 아무 기력 없이 잠만 자는 일들도 모두 치매 증상의 하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를 할머니로서, 한편으로는 치매 환자로서 생각해야 하고, 그만큼 치매 노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하기만 하고 든든할 줄만 알았던 한 여성의 시간이 흘러감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로는 지쳐서 차라리 그 시간이 얼른 끝나버렸음을 바라기도 하는 나의 마음 또한 어떤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나는 그렇게 오늘의 할머니에게 매일매일 적응해 가고 있다. 

SERIES

오늘의 할머니

이운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