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평소에도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잠을 자는 버릇이 있다. 이불이 없으면 위험에 노출된 것 같은 기분에 잠이 안 온다나. 그리고 그는 잠자는 동안만큼은 그의 공간이 온전히 지켜지길 바랐다.
저를 감싼 이 공간이 눈을 감고 있는 동안만큼은 온전하게 지켜지도록, 햇살이 이 공간에 들어올 때까지는 다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무사히 이 어두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세요.
이건 그가 자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기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때때로 그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햇살보다도 먼저 그 공간에 침범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얼마나 괴로운 지 중얼거리곤 했다. 그 반응은 단순히 그의 예민한 성격 탓은 아니었다.
새벽에 울먹거리며 내 온 몸이 부서져라 안은 적도 있다.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었단다. 이불을 조금 걷어내어 본 바깥은 너무 어두워서, 어떤 빛이 들어와도 다 삼켜버릴 것만 같았고, 그 이불 속에서 자신의 숨이 하나라도 새어 나가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켜 버릴까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참았던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꿈이 너무 무서워서 잊을 수 없다며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밤’이라는 시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등 뒤로 땀이 흐르며,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밤이 되면 또 꿈을 꿀까, 꿈에서 그 사람이 나타날까 무섭다고, 꿈에서는 그를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계속 나타난다며 힘들어 했다. 그럴수록 그는 이불에 집착했다. 그에게 이불은 잠자는 동안 최선의 방어막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약 17년 전, 그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에는 불청객이 난입했고, 그 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도움을 요청하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할까 싶어, 부모님 방으로 찾아가 그 사이를 차지하는 게 그 때 그만의 해결책이었고, 분명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거라고 믿은 것이 그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주었다. "그 때 엄마가 나한테 큰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냐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더라. " 그 말은 어린 그에게 큰 충격이 되어,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에게도 결점이 있기 때문에 아파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꽤 강한 사람이고, 상처에도 무딘 사람이라고 믿었으며, 결국에 자신의 아픔은 제대로 보듬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두 팔 걷어 달려 나가는, 아이러니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언제쯤 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치매는 걸려야 잊을까. 아냐, 치매 걸리면 현재 기억보다 과거 기억이 더 생생해진대. 나 절대로 치매 걸리면 안 되겠다.
라면서 실없이 웃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말해볼까 하다가도, ‘심리학적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 너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정도의 답이 아니라면, 자신이 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며 다시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이불을 꽁꽁 싸맨 채로 잠을 청한다. 그나마 팔 하나 정도는 내밀고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 그에게는 큰 용기이자 발전이었다. 그의 소원 중에 하나는 속옷 차림으로, 이불은 아예 걷어버리고 두 팔, 두 발 뻗어 잠을 자는 것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 즈음엔, 내 하늘색 몸통은 회색빛 가깝게 바래지고, 보풀이 내 온 몸을 덮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나를 껴안은 채 내뱉는 그의 기도에 나의 기도도 슬쩍 얹어본다.
그의 밤은 오로지 그의 것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