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약속을 잡으면 바로 후회부터 밀려와. 최근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상대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 같아서. 약속 자리에 가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 가끔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낯설게 다가오면서 현기증을 느낄 정도야. 지친 와중에도 내가 오늘 어떤 말을 했는지 돌아봐야 해. 그 말 괜히 했다. 그 때 그 사람 표정 안 좋았던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역시 나는 집순이가 체질이야 라고 깨닫기도 해. 한번은 친구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니까 ‘바람 쐬면 죽는 병에 걸렸어’라고 대답해버린 적도 있어. 혼자 나가는 일마저도 일주일 정도는 필요해. 내일은 바깥 공기 좀 쐬자. 여기까지 가는 동안, 다른 일도 처리하고, 옷은 이걸 입자고 정해놓고는, 다음날 가방을 멨다가 내려놔. 오늘따라 심장이 많이 뛰는 거 같고, 괜히 사고가 날 것만 같고, 꿈자리도 뒤숭숭했던 거 같으니까 내일 가는 게 나을 거 같아. 생각만 무한 반복하다가 5일 가량 지나면 엄마한테 한 번 혼나고 나가는 거지. 여름방학에는 엄마가 제발 좀 나가라면서 화를 내니까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목소리가 꿈에도 나와서 벌떡 일어난 적이 있어.
그렇다고 내가 밖을 무서워하는 것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나에게 붙을 꼬리표들이 무서워서 미리 도망치게 되나봐. 알다시피 내가 한 4년 전 부터 숏컷을 하고 있었잖아. 얼마 전엔 투블럭도 새롭게 도전해봤는데, 숏컷보다도 만지기 쉽고, 머리 말리는 데에는 5분도 안 걸리더라고. 앞으로 내린 머리가 바람이 불어 제자리를 찾으려 할 때 두피가 조금 아프다는 느낌은 빼고. 어쨌거나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머리카락 길이에 별다른 의미는 두지 않은 채 살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붙인 의미와 그에 부합하는 내 설명까지 얹어지길 원해. 자기들의 망상이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걸까.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어주지 않으면, 나는 또 그대로 이상한 사람이 되더라.
‘정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게, 그들이 생각하는 ‘정답’을 말하지 않은 게 그렇게나 불쾌할 일인 거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오해를 가득 안은 채 집에 돌아왔어. 괜찮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니까.
속상한 마음은 없지 않지. 모두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어서인가봐. 그런데 이미 내 뒤에는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고간 말로 더럽혀지고, 먼지까지 쌓인 꼬리표들이 달려 있어. 꼬리표들이 달리면 자르고, 또 달리면 떼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봤는데 다 소용없더라. 어제는 별을 보다가, 문득 저 별들이 내가 잘라낸 꼬리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주인을 잃고 떠돌던 그 무수한 말들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어서, 밤하늘에 별을 대신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 아마 하늘에 가서 자리를 잡을 정도라면, 나뿐만 아니라, 너를 향하는, 혹은 또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을 향하는 떠돌이 말들도 있겠지. 그래서인지 오늘은 하늘에 떠있을 떠돌이 말들이 평소보다 조금 더 쓸쓸해 보일 거 같아. 가볍게 내뱉어지고 누구 하나 주워 담으려 하지 않아서,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갖지 못한 걸 알게 돼서 일까. 그 말들이 나만 향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돼서 일까. 그래도 사람들은 밤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말할 테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려나.
저번에 추천해준 노래 잘 들었어.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경고장을 날린다는 문구가 유쾌하더라.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말을 무겁지 않은 투로 말하기까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을지 생각하면 씁쓸하더라고. 그 노래를 듣다보니 ‘나는 잘 몰라서’라는 이유만으로 너에게 무례하게 굴던 그 사람이 여전한 건가 걱정이 되더라. 네가 덤덤하게 상처받았던 일들을 쏟아내던 날, ‘나는 모르니까 네가 설명 좀 해봐. 나는 모르니까 네가 이해 좀 해.’라는 그 말들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설명하지 않으면 않은 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못한 대로, 어떻게 해도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참고 있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건 억울해.
나는 너무 착했다라고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여자의 청춘이 끝나버린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더라. 우린 너무나도 때가 안 탄 영혼인데, 자꾸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깨끗한 건지 더러운 건 아닌지 스스로 시험하려 든대.
우리 마음속에 새겨야 하는 말인 거 같아. 무례한 사람에겐 무례하다 말하지 못하고, 선을 넘는 사람에겐 거기까지만 하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하는 게, 타인의 혀로 상처받는 것보다 더 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 우린 이제 그만 이해해보자. 가시를 들고 있는 사람은 나를 찌르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는 것, 그 이상으로는 더 받아들이려고 하지 말자. 너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해. 네가 나에게 갖고 있는 그 마음처럼 말이야.
가끔은 나 혼자 견디기엔 버거운 감정들이 있어. 그 때마다 나에게 곁을 내어줘서 고마워.
화답으로 ‘강아솔 – 그대에게’를 추천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