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우리 집에 온 지도 약 2달이 지나가고 있다. 할머니는 처음 왔을 때보다 상태가 좋아졌고, 밤에도 잘 주무신다. 요즘엔 내가 하던 집안일을 할머니에게 시키기도 한다. 처음엔 빨래 개기부터 시작했는데, 할머니가 갠 옷들은 힘이 없어 둥글둥글했다.
“할머니, 빨래가 힘이 없어서 둥글둥글해. 내가 다시 개야 돼.”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신다. 그래도 난 빨래를 개야할 때마다 할머니를 시킨다.
“빨래 좀 개. 나는 설거지 하고 올게.”
“네가 다시 갤 거 아냐?”
“그냥 해. 할머니 심심하잖아.”
그럼 할머니는 또 둥글둥글한 옷과 수건들을 쌓아두고, 내가 다시 개는 일의 반복이다. 그래도 이젠 빨래가 마르면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빨래를 개둔다. 집안에서 할 일 없이 TV를 보고 잠만 자던 할머니에게 일감이 생긴 것이다.
하루는 설거지 거리를 두고 잠시 나갔다 왔는데, 할머니가 설거지를 해놓으셨다.
“할머니가 설거지 했어?”
“응. 할 일도 없고, 가보니까 설거지가 안 되어 있길래 내가 했지.”
“와, 할머니 짱이네. 잘하셨어.”
할머니에게 칭찬 한 마디를 던져두고는 다시 부엌에 와 제대로 닦이지 않은 부분은 없나 확인을 했다. 아무래도 눈이 안 좋아지시다 보니, 안 닦이는 부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내가 글방에 갈 때 배웅하러 나온 적도 있었다.
“어디 나가?”
“글방 가려고.”
“글방이 뭐야?”
“여기 아래 책방 가서 글 쓴 거 자랑하고 오는 거야.”
“그래? 그럼 1등 하고 와.”
어딘가 순수한 할머니의 말에 웃음이 났다. 할머니 마음속에는 손녀가 1등 하는 게 가장 큰 응원이자, 기쁨일 테니까 말이다. 한바탕 웃고 집을 나서려는데 할머니가 따라 나섰다.
“왜? 나 따라 오려고?”
“응, 배웅해줄게.”
“할머니가 저 아래까지 갔다 올 수 있어? 여기 신발장까지 배웅해주려고?”
“응. 신발장까지만 해줄게.”
이를 보던 가족들은 할머니의 발전이 놀랍다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끔은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이모가 집에 오는데, 그럼 나는 할머니에게 문을 열게 한다.
“어머, 어떻게 여기까지 나와서 문을 열었어?”
“너 온다니까 내가 열었지.”
“어머 어머, 우리 엄마 많이 나아졌네.”
나는 매일 조금씩 할머니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처음에는 거부하던 할머니도 점차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노인이나 치매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이 변화들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집에 왔을 땐 거실에서 1바퀴를 도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화장실을 갈 때도 숨이 찬다고 주저앉던 할머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이 사소한 변화들조차 반가운 일이 되었다.
그 변화들 덕분에 바깥에 한창 꽃이 폈을 땐 할머니를 태우고 드라이브도 다녀왔었다.
“할머니, 나가자. 내가 드라이브 시켜줄게.”
“아냐, 나는 못 가겠어.”
“아냐, 할머니 옷 입어. 그냥 차에 앉아만 있으면 돼.”
혹시 몰라 사탕과 물, 마스크를 챙겨두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조그만 애가 이제 다 커서 운전도 하고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러니까. 내가 할머니 드라이브 시켜줄라고 운전 배운 건데, 할머니가 힘이 없으면 어떡해.”
“네가 나가자 하면 또 나가야지.”
“걸어 다닐 수 있게 밥을 잘 먹으란 말이야.”
“응, 잘 먹을 거야. 저기는 아직 꽃이 안 폈어. 더 따뜻해지면 활짝 피겠어.”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을 보며 잎이 피어날 앞으로를 기다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새로웠다. 또 하얀 벚꽃이 흐드러진 바깥을 보는 할머니의 기분은 행복해보였다. 집에만 있다가 나와서 사람들을 보니까 신이 난다고 하셨다.
“입에서는 사탕이 녹고, 바깥에는 꽃이 활짝 펴있고, 내가 달달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아.”
나는 가끔씩 가정을 돌보느라 본인의 인생은 제대로 즐기지 못한, 어느 순간 늙고 힘이 없어진, 그리고 치매 환자가 된 할머니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 안에는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준 할머니도 있기 때문에, 나는 더 마음을 써서 할머니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들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오늘의 할머니는 어제와 또 다르다. 때문에 나는 또 바라보고 적응해야 하며, 이 모든 일들이 즐겁지 만은 않다. 그저 할머니도 계절의 변화와 함께 오는 새로운 기분들을 다시 느껴보길, 조금만 더 이 세상을 즐겨보길 바랄 뿐이다. 내가 효녀이기 때문도, 내가 너무 착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의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생긴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아빠가 베란다에 식물을 심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가 이제 물주기 담당이에요. 어머니가 얘네 책임져야 해.”
“오, 여기서 이제 상추가 자라는 거야? 꽃도 예쁘네. 알았어. 내가 물 줄게.”
덕분에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임무 겸 취미가 생겼다. 베란다에서 창밖을 구경하던 할머니는 이제 꽃과 상추도 함께 돌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오늘의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