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요? 잘 알아요. 같이 기숙학원 다녔어요. 자리를 바꿔도 K랑 계속 짝이었어요. 수업시간이 지루할 때면 시시콜콜한 내용이 담긴 쪽지를 자주 주고받았어요.
창밖을 봐. 꽃이 활짝 폈어.
이 쪽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빨간 볼펜으로 진하게 색칠한 꽃과, 둥글둥글하고 질서 없는 글씨체가 마음에 들어서요.
K는 그런 사람인 거 같아요. 어설프지만, 소소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요.
아, 그 사람은 편지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편지를 쓸 때만큼은 그 상대만을 생각하니까 좋다고요. 그래서인지 항상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렸어요. 가끔 선생님들이 편지봉투들 들고 와서 편지 주인을 찾으러 다녀요. 그럼 K는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빼고 그 편지봉투들만 쳐다봐요. 혹시라도 자기에게 온 편지가 없나 하고요. 편지를 못 받은 날은 하루 종일 시무룩해있어요.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귀여웠던 거 같아요.
그 말도 편지로 해줬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K가 사정이 있어서 학원을 먼저 그만뒀거든요. 나중에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편지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 편지 속 글씨도 엉성하고 못생겼었죠. 근데 K의 편지는 그게 매력이에요. ‘글씨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나 진짜 글씨 못 써’ 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 글자 하나하나 속에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있다는 거요. K의 글씨가 깨끗하고 또렷했다면, 그만큼 매력이 없었을 거예요.
저도 그 때부터였어요. 편지를 좋아하게 된 거요. 원래도 편지를 자주 쓰는 편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거나 축하를 해줄 땐 편지를 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 때문에 쓴 적 밖에 없었거든요. K 덕분에 편지를 쓰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던 거죠. 그렇다고 그 이후로 편지를 더 자주 쓰진 않았어요. 소중한 인연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깊이 고민하며 쓰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사랑을 전하고 싶을 때, 상대방과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 위로해주고 싶을 때 등에만 편지지를 꺼냈어요.
K한테요? 수도 없이 써봤죠. 처음에는 서로 자주 주고받았어요. 밥 잘 챙겨 먹어라, 초콜릿 줄이자, 공부에 집중하자, 꿈 이루자, 등등 응원하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죠. 나중에는 K가 힘들어 해서 함께 있고 싶다, 힘이 되어주고 싶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잉크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많이 썼어요. 보내지는 못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써서 보낼 때마다 줄어든 잉크만큼 내 진심이 희미해지면 어떡하지 그런 엉뚱한 걱정을 했던 거 같아요.
가끔 K랑 주고받은 쪽지나 편지를 읽어 봐요.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편지 속에 그 때 주고받은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있나봐요. 그럼 제가 보내지 못한 편지들에도 K를 사랑한 마음들이 그대로 남아있겠죠.
K가 마지막으로 준 편지에
너의 편지에는 항상 따뜻함이 있어. 고마워.
라고 적혀있더라고요. 사실 그건 제가 K에게 배운 거였어요. K는 모르겠지만요.
오랜만에 K가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