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탓

핀치 타래퀴어사랑이별

기분탓

우리가 헤어진 건

이운

우리가 어떻게 끝났더라? 

네가 나에 대한 확신이 더 생기지 않아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힘이 나지 않아서. 내 눈은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그 얘길 하는 너를 보니까 술기운이 확 깨면서 나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나 간다. 

라는 내 한마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 

술값 정산이 마지막 카톡. 

끝까지 냉정해 넌.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한 약속, 농담이었다고 금방 잊어버린 건 아니지?

 헤어지고 최소 3달 정도는 다른 여자 만나지 말기다. 

근데 네가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인 줄은 몰랐지.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랑 뽀뽀하는 사진을 프사로 해두는 건 너무하잖아. 나한테는 티내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했잖아. 내가 SNS에 데이트사진 올리면 당장 지우라고, 게시글 지울 때까지 잠수 타는 게 너의 특기였잖아. 

 너는 분명 나한테 나쁜 사람이었어. 

난 그런 따스함에 익숙하지 않아. 그래서 너의 온기가 느껴지면 찬바람이 부는 곳에 서서 내 마음이 더 데워지지 않게 식힐 수밖에 없었어.  

나쁜 년. 

나랑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내뱉을 건 뭐야. 차라리 ‘미안해, 난 어쩔 수 없는 이성애자 인가봐.’ 라고 말해주지. 나 국어 못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렇게 돌려 말하니까 난 계속 더 잘해줘야지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잖아. 너는 끝까지 나를 눈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내가 자꾸 미안한 사람이 되게 해. 


 얼마나 울었는지 배가 고프더라. 밥을 먹다 목에 뭐가 걸린 것만 같아 자꾸 물을 삼켰어. 하지만 결국 넘기지 못하고 다 토해냈지.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그런 존재였던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넘어가지 않는, 목구멍에 불편하게 남겨 있는 이물질 같은 것. 


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서 손을 잡으려고 해도 손에 땀이 많다고, 식당에서 연인세트를 시키려 해도 너는 해당 메뉴가 끌리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주위를 봤나보다.  친구 사이였을 땐 아무렇지 않던 행동들이, 연인 사이가 되어서는 불편해지는 게 말이 돼? 

 우리도 평범한 연인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네가 마음 편히 나를 사랑했으면 싶어서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그 외에도 우릴 받아줄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가야지 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너는 

 나도 언젠가는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고 싶어. 여자 둘끼리만 사는 건 좀 그렇잖아.

 이 한마디로 우리의 미래에서 나만 남겨두고 가버렸어.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이런 연애는 처음이니까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믿었고, 사랑 받아본 적 없다는 너를, 주는 사랑에만 익숙하다는 너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다른 사랑을 찾는 너의 뒷모습만 내내 바라보고 있었어. 

 너는 분명 나에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던 거야. 나는 어쩌면 그 신호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런 너에게 사랑한다고 바라봐달라고 한 나, 그 사랑을 노력 하면서까지 받으려 한 너,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이기적이었을까. 사실 누구에게도 잘잘못을 따질 순 없는 거겠지. 그냥 우리는 서로 다른 정도로 사랑하고 그 속도가 맞지 않아서 헤어진 거 그 뿐일 테니까. 


 그래 우린 어쩌다보니 헤어진 거 같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나의 하루가 저물어버린 것처럼. 그러니까 우리가 같은 여자라서 헤어지게 되었을 거라는 거, 그거 그냥 내 기분 탓일 거라고.



이운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2020년 1월~4월의 의미

Pick A Card

헤테트

#타로카드
오늘은 2020년 1월~4월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한 번 살펴보려고 해요.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불특정 다수를 위한 리딩이니 하나도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만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책이나 잡지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봐주세요. 누군가는 그 가벼운 글귀 속에서 감동이나 감명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