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어떤 대명사로 부르면 좋을까?"
내가 중학생 때 영어를 가르쳤던 재미교포 출신 선생님이 그랬다. “영어는 멍청한 언어야(English is stupid language).” 규칙이 있다가도 예외가 너무 많은 것을 풍자하는 말이었다. 오히려 나는 대명사에 ‘성별’을 붙이는 부분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트랜스섹슈얼인지, 팬섹슈얼인지, 논바이너리인지 왜 대명사에 굳이 하나하나 표시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냥 ‘그는’ 그렇더라는 한 마디면 되는 것을.
어쨌든 태어날 때부터 영어를 쓰고 살아야 하는 미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젠더 다양성 만큼이나 ‘대명사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시스젠더 여성이나 시스젠더 남성이 아닌 만큼, 자신을 ‘she’나 ‘her’ 대신 ‘they’나 ‘their’, 또는 ‘ze’나 ‘zer’로 불러달라고, 자기소개와 함께 덧붙이는 것이다. 극단적일 만큼 사소한 곳에서부터 젠더 다양성을 가시화하고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 정치의 실천이다. 물론 ‘she’와 ‘he’의 나라에서만 살고 싶은 편견 가득한 사람들은 번거롭고 귀찮다며 자신의 ‘무식할 권리’을 훼손당했다고 목놓아 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무지는 그야말로 특권이다.
<원데이앳어타임>의 엘레나 알바레즈는 자신을 ‘she’나 ‘her’로 불러달라고, 그의 연인 시드는 ‘they’나 ‘their’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똑똑하고 깨어 있는 밀레니얼 여성이다. 학교 토론팀의 캡틴이며 차별, 불평등, 환경 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다.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엘레나는 사회 정의에 관한 한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다. 인터넷에서 만난 퀴어 동지들과 함께 시위를 조직하고, 부모님이 멕시코로 추방 당한 친구를 숨겨주고, ‘열정적인 동의’를 서로 표시한 후에야 연인과 스킨십을 시도한다.
물론 인생은 항상 올바른 실천만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엘레나는 잔 다르크 같은 전사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협할 줄 아는 따스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차별적이고 고루한 전통이라 욕하면서도 엄마를 위해 15세 생일 킨세녜라(quinceniera) 파티를 하는 데 동의하기도 하고, 연인 시드가 청하기에 역시 성차별적이고 유치한 전통인 졸업 축하 파티(prom)에 참석하며, 할머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성차별적이고 불편한 화장을 해보기도 한다.
엘레나는 아직 어리다. 그 앞에 펼쳐진 인생이 어찌 흘러갈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다. 엘레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자기 자신과 같거나 다른 약자들을 위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원데이앳어타임>은 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