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9. 2019 세계의 크기를 넓힌 책들

생각하다

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9. 2019 세계의 크기를 넓힌 책들

오혜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회와 나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또는 그렇지도 않을 책들을 끝없이 읽고 써댄다. 그럼에도 아직 다 읽지 못한 채 머리맡에 쌓아둔 책들이 한가득이다. 언제 읽어도 좋은 것이 책이지만, 때로는 특정 시기에 꼭 읽혀야 할 책들을 놓쳤을까봐 조바심이 앞선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속한 세계의 크기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각각의 세계에는 나름의 아귀지옥이 있기 마련이지만, 종일 학교와 집안 책상만을 오가며 학위 취득과 구직을 위해 아카데미 주변을 기웃거리는 게 삶의 전부인 사람의 관심사는 얼마나 넓고 다양할 수 있나. 

나는 종종 최근 중견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직업이 소설가・영화감독・기자 등이 전부일 때, 그가 온갖 문화예술단체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국내・해외의 각종 레지던시들을 방문하며 여행하는 삶이 그들 소설에서 대단히 문학적인 사건으로 등장할 때, 그들 자신의 직업세계로 수렴되는 이해관계나 그 세계에 몰입하며 사는 자신과 타인에게서 발견되는 모종의 기만과 속물성에 대해 조금 써놓는 것이 엄청난 작가적 결단처럼 취급될 때, 고요히 떠올려보곤 한다. 삶의 반경에 따라 구획되는 상상력의 스케일과 깊이에 대해. 과연 ‘한국’소설에는 고생대의 들판이나 우주공간은 등장해도 당장 ‘남한’보다 북위가 조금 높을 뿐인 ‘북한’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재벌 3세가 서민이 겪는 빈궁의 디테일을 모른다고 해도, 그러니까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현금 기준으로 50원인지 1200원인지 모른다고 해도 그리 기막혀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원래 다 그런 거니까.

세밑에 각종 매체나 단체들로부터 올해의 책, 2010년대의 책, 심지어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2020년의 책과 저자들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꽤 받았다. 내가 모든 분야에 두루 박학다식해서 받는 요청은 당연히 아니고, 그저 네가 꾸준히 공부하고 목도해 온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만한 저작을 소개해보라는 제안이다. 책의 판매량이나 작가의 유명세, 해당 시기의 트렌드나 이벤트와 상관없이 어떤 책들에 한 번 더 눈길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에겐 한번이라도 더 제목을 발음해보고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 늘 있다. 내가 속한 세계와 상상력의 크기를 한뼘이라도 더 넓혀준 2019년 ‘올해의 책’들.

일러스트 이민


한 번 더 불러보는
2019년 올해의 책들

엄마의 육신과 정신이 “해체”되며 끝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흔치 않은 관점과 문체로 기록한 구술생애기록자 최현숙의 책 <작별일기─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후마니타스)는 올해 가장 단숨에 읽은 책이다. “혈족”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인간은 가장 ‘내실 있는’ 사유를 하게 되는 것 아닌지, 그때야 비로소 자기 삶과 세계를 ‘책임’지는 방식을 배우게 되는 것 아닌지 생각했다. 

오로지 돈과 의료산업 구조로만 다 설명되지 않는, 그렇다고 무한히 영적이거나 사적인 상실이라고만도 할 수 없는, 한 인간의 멸실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경험을 자신에게 납득 가능한 언어로 기록해보는 것.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일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이라는 주제가 조금 덜 무서워진다.

‘역사’와 ‘몸’에 대해 연구하는 사학자 염운옥의 <낙인찍힌 몸─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돌베개)는 새삼 “인간을 분류하고 구분하려는” 인간의 오랜 탐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 탐욕 앞에서 “이성, 자유, 평등, 생명 같은 단단한 명사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정치와 예술, 철학과 과학이 그 무심하고도 잔인한 작업에 복무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동서양을 막론한 인종주의의 역사는 잘 보여준다. 

“나는 차별에 찬성하지 않아요.” “나는 혐오에 반대합니다.” 같은 구호가 적힌 스티커들을 노트북이나 벽에 붙이고 심지어 몸에 새기기도 하지만, 무엇이 ‘차별’・‘혐오’인지, 어떻게 하면 차별과 혐오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언어는 드물다. 계급・장애・성별・성적 선호 등을 ‘인종화’함으로써 차별과 혐오의 근거를 만드는 오늘날의 통치담론을 사유하는 데 매우 유용한 책.

30대 초반의 게이 작가가 초점화자로 등장하는 네 편의 연작소설이 수록된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이 각기 다른 두 개의 표지를 내세운 것은 꽤 아이러니컬하다. 나는 언제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고층건물들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레트로 풍의 자동차가 그려진 나가이 히로시의 음반 커버 일러스트보다, 미술작가 전나환이 2016년 올란도 게이클럽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목도하며 그린 작품 <Pray for Orlando>를 채택한 동네서점 에디션 표지가 이 소설집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그림에는 각각의 진실이 있을 테지만, ‘게이클럽-혐오범죄와 죽음-포옹’이라는 의미소들이 더없이 아름다운 색채감으로 표현된 후자가 ‘대도시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에 대한 더 설득력 있는 재현이라고 여겨졌다.

조해진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민음사)은 정체성신화에 대한 최근까지의 지적 탐구들을 능란하게 접수하면서도 ‘소설’이라는 미적 양식의 성격과 효용에 대해 가장 성실하게 대답한 사례다. 전작 단편 <문주>를 재구성한 이 작품에는 기실 장편소설 한 편과, 다큐멘터리 두 편, 희곡 한 편이 숨어 있다. 이런 서사구조가 어쩌면 지나치게 공학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이 작가만큼 ‘구조’에 대해 치열하고 예민하게 고민해본 사람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진심’은 그것을 담아낼 적절하고도 탁월한 ‘구조’ 없이는 스스로에게 파악되지도, 타인에게 전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두 권의 책 제목을 한 번 더 적어두고 싶다. ‘낙태 처벌’이 헌법에 불합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진 2019년 4월 11일에 성과 재생산 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필자들이 함께 쓴 책 <배틀그라운드─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후마니타스, 2018)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다. 임신중단권은 나이・장애・계급・성별・성적 선호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여되며, 이는 여성신체를 통제해 “국익”에 유용한 인구만 선택적으로 보호하는 통치술임을 날카롭게 고발한 이 책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의 자유주의적 맹목을 경계하면서 ‘인권’의 조건을 재사유하는 가장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책이다.

작년 여름 제주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찾아왔을 때, ‘난민에 대한 낭만화를 경계’해야 한다며 난민 혐오를 주장하는 말들이 ‘페미니즘・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횡행하는 장면을 목도하는 일은 끔찍했다. 바로 이때 연대와 환대, 반군사주의와 탈식민을 사유하는 페미니스트 집단지성이 모여 <경계 없는 페미니즘─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와온, 2019)이라는 책으로 책임 있게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기적 같았던, 내가 올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다.

미래의 역사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틀린 선택’을 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게 한 이 책들의 존재를 내 2019년의 독서사에 꾹꾹 눌러 기록해둘 것이다. 

지금까지 <허윤, 오혜진의 백일몽>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혜진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허윤, 오혜진의 백일몽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책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