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넘치는 여성 배우 여덟만으로 주연 자리를 꽉 채운 <오션스8>이 지난 13일에 개봉했다. 영화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박했다. 일부 관객의 평가는 더했다. 이야기의 전개가 빈약하다, 캐릭터가 상투적이다, 어떻게 여자만으로 사기를 칠 수 있냐, 개연성이 없다, 재미가 없다 등. 조금 더 문장을 정확하게 바꿔 보겠다. <오션스8>에 대한 남성 '평단'과 남성 관객의 평가는 박했다. 스쳐지나가는 일련의 혹평을 보며 리부트된 <고스트 버스터즈>와 <스타워즈: 로그 원>이 떠오른 건 우연일까.
<오션스> 시리즈는 대대로 오락영화였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 <오션스8>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오션스8>은 열 한 명의 남성(혹은 열 둘, 혹은 열 셋)이 아니라 여덟 명의 여성이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오락영화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오션스>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편당 2천만 달러 이상의 출연료를 챙긴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메인 캐릭터, 대니 오션이 죽은 이후에야 이 시리즈가 더 나은 영화가 되다니. <오션스8>은 시리즈가 대대로 갖춘 화려한 볼거리와 유쾌한 스토리라인이라는 장점을 이어가면서 여성들이 뭉치면 얼마나 멋지게 일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여자만으로 사기를' 쳤는지,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짚어 보았다. 그들은 '여성 무리'가 일하는 모습에 대한 모든 편견을 시원하게 반박한다. 전작의 남성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그들의 프로페셔널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1. 폭력은 필요 없다.
<오션스8>을 보고 나오는 길에 이 영화에서 없었던 것 몇 가지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첫번째가 불필요한 유혈과 물리적 폭력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흥분하면 주먹을 치고받거나 멱살을 틀어쥐는 전작의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오션스8>의 사기꾼들은 대화를 나누는데 주먹질이 필요하지 않으며, 서로에겐 물론이고 한탕을 위해 잠입하고 누군가를 꾀어내는 데에도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2018년에 어떤 문명인이 욱하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른담? 유치하게.
2. 기싸움 같은 것은 없다.
여자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캣파이트'나 누가 더 예쁜지 신경전을 벌이며 남성의 승인을 얻으려 서로 경쟁하는 판타지를 상상한 어떤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겠으나, 일곱 명의 사기꾼들(그리고 한 명의 배우)은 서로의 외모 평가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서로의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태미는 바나나 리퍼블릭의 마네킹같은 스웨터와 셔츠, 스커트를 입고 나인볼은 레게 모자와 밀리터리 패턴의 자켓을 걸치고, 콘스탄스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지만 누구도 간섭을 않는다.
<오션스> 전작의 남성 사기꾼들이 결국 수트와 수트와 수트를 걸치며 교복과도 같은 일관성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심지어 보기에도 더 즐겁다. 일 하러 왔는데 누가 옷차림을 지적하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한심하게.
3. 경청하고 협업한다.
<오션스8>의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할 때는 물론이고, 등장하는 내내 한 번도 목소리를 높여 소리지르거나 울지 않았다는 (누텔라를 퍼먹으며 훌쩍이던 로즈는 그럴 만 했으므로 예외로 쳐 주었으면 한다) 것을 혹시 알아챘는지. 그들은 누구보다 이성적이며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계획에 끊임없이 차질과 방해물이 등장할 때조차 크루를 탓하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대신 재빠르게 해결책을 찾아내 기민하게 움직인다.
사기 계획의 설계자는 데비 오션이고 행동대장은 루지만 일할 때 발언권은 여덟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구도 타인을 권위와 윽박지름으로 찍어내리지 않는다. 각자의 전문 영역에 대한 실력은 팀원으로 들인 뒤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협동 작업은 매끄럽게 성공가도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혹은 인종을 이유로 발언의 무게를 차별하지 않으며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협업한다.
4. 성별에 대한 편견을 역이용한다.
<오션스 8>의 메인 이벤트 배경이 되는 멧 갈라에 잠입하기 위한 사기꾼들의 위장은 흥미롭다. 그들은 장소적인 의미의 사각지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에 의거한 사각지대를 제대로 활용했다. 만찬 담당 영양사, 설거지꾼, 웨이터, 임시 고용된 잡지사 어시스턴트. 누구도 중요하게 눈여겨보지 않고 모두가 당연히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만찬의 그늘진 자리에 이들이 있다.
앤 헤서웨이는 CGV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지만 현실이기도 해요. 영화에서 산드라가 팀원을 꾸릴 때 남자가 끼면 금방 걸릴 거라고, 이 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하죠. 우린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길 원하니까요.
씩씩대 봐라, 나는 재밌더라
<오션스8>은 오락 영화다. 110분간의 러닝타임 내내 즐겁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과연 그 분류는 사실적이다. <오션스8>에 여성 주인공들이 잔뜩 등장한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감동을 굳이 찾으려 들 필요도 없다. 그저 즐기면 된다.
다만, <오션스8>의 의미에 대해선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이제서야 대단한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상업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폭력도, 차별도, 여성혐오도 없는 상업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여성들이 뭉친 결과물이 얼마나 생각보다 휘황찬란하고 멋진지, 그리고 이 영화에 왜 그렇게 누군가는 분노하는지. <오션스8>을 보고 나서 오락 영화를 본 것 이상의 여운이 계속 맴도는 것은 그래서다.
추신: 솔직히 다 필요 없고, 여덟 명 모두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다. 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배가 다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