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버린 여인들 6. 자유로운 신체, 어을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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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6. 자유로운 신체, 어을우동

실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자유로운 신체, 어을우동

아무도 없는 옥사 안, 올가미에 묶인 목이 마지막 기운을 쏟아내며 바르르 떨었다. 그 마지막 몸짓에 줄이 한 번 더 당겨지자, 숨통이 끊겼는지 매달린 몸이 축 늘어졌다. 초겨울 사나운 바람이 차디찬 옥사 안을 휘돌아 죽은 자의 마지막 숨결마저 훑어갔다. 죽음을 확인한 옥졸이 살 속에 파고든 올가미를 걷어내자, 목이 잘리기라도 했듯 옆으로 휙 꺾였다.

어을우동의 마지막을 그려봤다. 성종 11년 여름에서 초겨울까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을우동의 성 스캔들은 세상에 드러난 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어을우동의 죽음으로*1. 사건이 드러나고 형이 집행되기까지 겨우 4개월! 3심까지 올라온 죄안치곤 참 빠른 결정임은 분명했다. 성종은 왜 어을우동의 죽음을 서두른 것일까?

억울하게 쫓겨나다

어을우동은 승문원지사 박윤창의 딸이자 효령대군(세종의 둘째 형)의 손자 이동의 아내이다. 어을우동은 일찌감치 남편에게 쫓겨났다. 쫓겨난 사연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느 날 어을우동이 집에 온 은세공업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가, 남편한테 걸려 쫓겨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이 연경비라는 기생을 너무 사랑해서, 아내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내쫓았다는 것이다.

사연은 상반되지만 결론은 같다. 어을우동은 남편에게 쫓겨났다. 어을우동과 이동, 이 둘이 몇 살에 만나 결혼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보통 여자 나이 십대 중후반이면 결혼을 했을 시절이니,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을 거다.

어을우동은 억울했다.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다른 남자를 좋아했네 어쩌네, 불명예를 씌워 쫓아내다니! 백번 양보해서, 남편의 주장처럼 자신이 은세공업자를 좋아했다고 치자. 그래서 뭔 일이 있기나 했는지?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기라도 했는지? 뭐 하나 뚜렷한 증거도 없으면서 이런 수모를 안기다니. 

그러는 남편은 버젓이 딴 여자를 옆에 꿰차고 살고 있으면서! 차라리 솔직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을 하지. 그럼, 사족의 딸이자 종친의 아내가 그깟 질투를 하겠냐고. 칠거지악에 질투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럼, 그러려니 눈 감아 주고, 못 본 척 외면해 줬을 거 아니냐고!

이대로 조용히 쫓겨난다는 건 어을우동으로서는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해서 나라에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리고 곧 남편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성종은 이동에게 어을우동과의 이혼을 허락할 수 없다며 같이 살 것을 명한다*2. 하지만 이동은 강경하게 어을우동을 내쫓아버린다. 아무리 임금의 명이라 해도 이것만은 결코 받들 수 없다는 듯이. 이런 딸을 친정 아버지 또한 야박하게 외면한다.

어을우동은 친정어머니와 살게 된다. 친정에서 안 받아줬는데 무슨 말이냐고? 당시 어을우동의 어머니는 종과 간통해서 이미 쫓겨난 상태였다. 그렇게 모녀는 함께 살았고, 해서 뭇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을 거다. ‘모전녀전’이라고.

일러스트 이민

거침없이 탐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거다. 한 번 실추된 명예는 바로 세우기 힘들었고, 간통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한 번 찍힌 낙인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당장 혀라도 깨물고 죽어, 원통함을 세상에 알리던가. 아니면 남편의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 꿋꿋이 절개를 지키며, 한숨 속에 여생을 마치던가.

하지만 어을우동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박씨 집안사람으로도 못 살고, 이씨 왕실의 사람으로도 못 산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난, 나로 살면 되잖아. 인간 어을우동으로 말이야! 절개? 도리? 명예? 그깟 허울뿐인 말에 인생을 허비할 필요는 없지!’

한탄 대신 자유를 선택한 어을우동은 비로소 한 인간으로,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첫 남자 오종년을 만났다. 썩 괜찮은 남자였다. 둘은 찐하게 사랑하고 담백하게 헤어졌다. 이 만남을 계기로 어을우동은 스스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사족의 옷을 벗어던진다.

여기서 말하는 사족의 옷이란 상징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을우동은 일반 백성들이 입는 허름한 옷을 입거나, 기생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거리를 활보한다. 출입에 제한이 많았던 사대부가의 여자였을 땐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옷차림은 어을우동의 매력을 부가시켰다.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활기를 도드라지게 만든 거다. 남자들은 어을우동의 생기 넘치는 몸에 빠져들었고, 어을우동은 이 남자, 저 남자 자유롭게 만나며 자신의 정욕을 불태웠다. 이 말을 난잡하게 만났다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어을우동은 누구보다 담백하게 그들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몸 주고 마음 줬다고 지지부진 상대를 구속하려 들지 않았다는 거다. 당연히 자신이 구속당하는 것 또한 확실하게 거부했다. 매혹시키고 매혹당하고! 하지만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주기!

어을우동은 인간의 타고난 정욕을 인정했고, 정욕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정욕이 사라지는 순간 한 톨의 미련도 없이 놓아주었다. 어을우동의 치명적인 매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정을 통한 남자들에 대한 어을우동의 애정도는 각기 달랐다. 특히 두 명을 사랑했다. 어을우동은 자신의 몸에 그 두 남자의 이름을 먹물로 새겨 넣는다. 전의감 생도 박강창, 요즘으로 치면 의대생이다. 또 한 명은 말단 관리 감의향. 박강창의 이름은 어을우동의 팔에 새겨졌고, 가장 사랑했던 감의향의 이름은 어을우동의 등에 새겨졌다. 이에 앞서 종친 이난은 어을우동의 이름을 자기 팔에 새겼다.

이렇게 몸에 상대의 이름을 새긴다는 거,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문신한 살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몸에 그 이름이 남겨지는 것이니까. 그 만큼 자기 행동에 후회가 없다는 뜻이고, 그 만큼 자기감정에 떳떳하다는 의미이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자기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 어을우동 말고 누가 또 있을까?

강상죄는 여자한테만!

처음 거론된 남자는 총 16명이었다. 그 중 고위 관리인 어유소·노공필·김세적의 경우는 처음부터 성종이 말도 안 된다며 거론도 못하게 했고, 김칭·정숙지·김휘는 조사 후 무혐의 처리된다. 해서 종친(이난·이기), 하급 관리(구전·오종년·감의향·박강창) ,과거 합격자(홍찬), 과거 1차 합격자(이승언), 일반인(이근지), 노비(지거비) 등 10명과 간통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남자 10명과 간통한 죄로 처음 어을우동에게 내려진 처벌은 곤장 1백 대와 귀양 2천 리였다. 즉 누가 봐도 죽을 죄가 아니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어을우동은 죽는다. 왜일까? 의금부의 보고를 받은 성종이 어을우동에게 내린 벌이 너무 가볍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면서 어을우동을 죽일 수 있는 법률 조항을 찾아오라고 명한다. 아니, 죽일 죄가 아닌데 왜 극구 죽이겠다는 것인지?

성종의 명에 신하들은 양쪽으로 나뉜다. 심회 등 4명은 강상죄를 범했으니 가차없이 극형에 처해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정창손 등 7명은 죄에 따른 법률이 버젓이 있는데 이 법률을 임금이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음탕하고 난잡한 어을우동을 죽여 백성들을 교화시키겠다 마음먹은 성종은 자신이 내린 명을 철회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죽이겠다는 뜻이다.

성종 11년 10월 18일, 의금부에서 변경된 죄안이 올라온다. 죄명은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가서 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한 죄’, 이에 따른 처벌은 목을 매 죽이는 교형이다. 딱 봐도 어을우동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죄명과 처벌이다.

처음 어을우동 스캔들이 터졌을 때, 성종은 ‘남편 이동이 버린 아내 박씨(어을우동)’*3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 가서 딴 남자와 결혼했다고? 얼마나 적용할 법률 조항이 없었으면 이런 걸 들이댔을까. 죽이기는 해야겠고, 마땅한 법률은 없고, 의금부도 난감했을 거다. 그리고 이날 바로 어을우동은 교형에 처해진다.

어을우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지거비 때문이었다. 간통남 10명 중의 한 명인 지거비는 노비이다. 신분을 넘어선 사랑! 이건 강상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성종이 용서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죄가 바로 이 강상죄였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상하와 존비라는 신분질서 속에 드러나는데, 어을우동이 이걸 무너뜨렸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논리다.

헌데, 너무 어이없는 건 이 지거비란 놈과는 좋아서 정을 통한 게 아니라 협박에 의한 강간이었다는 것이다. 뭐, 간통이건 강간이건 강상죄건 다 좋다. 문제는 사건이 드러나고 남자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 이 상황에 죽은 사람은 어을우동 뿐이라는 거다. 심지어 어을우동을 죽게 만든 강상죄의 원인, 노비 지거비마저 감형을 받았는데 말이다.

강상죄를 적용하려면 어을우동을 죽이기에 앞서 상전을 강간한 지거비부터 죽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어을우동만 죽었다. 그것도 죄명까지 바꿔서 짓지도 않은 죄로 죽인 것이다.

성종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어을우동을 죽이려 한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자유분방한 성 풍속! 성종은 이걸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성종은 개가금지, 처첩제도 확립 등 법질서를 공고히 해서 조선에 유교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그런 성종 눈에 정욕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어을우동은 불온한 세력의 대표쯤으로 보였을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빨리 죽여 추종자들이 생기는 걸 막아야 했을 거다. 성종은 어을우동을 본보기 삼아 여자의 본능을 나라에서 관리하고, 더 나아가 여자한테서 본능을 거세하려 한 것이다.

*1 성종실록 122권, 성종 11년 10월18일
*2 성종실록 71권, 성종 7년 9월5일
*3 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 6월13일

 

필자 김석연

글향, 그 알싸한 꼬드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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