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하드캐리한 왕후들 2. 원경왕후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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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하드캐리한 왕후들 2. 원경왕후 민씨

실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남편을 왕으로 만든 대장부


회안대군과의 싸움은 어찌 돼가고 있는지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은 커졌지만 이 또한 진득하니 내리눌렀다. 순간 들린 말울음 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대군께서 돌아오신 줄 알았는데 바람소리였나 보다. 우리 부부는 바라고 또 바랐다. 오늘과 같은 싸움이 일지 않기를. 하지만 오늘은 오고야 말았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고, 앉아서 죽음을 맞을 수는 없었다. 이른 새벽 남편은 형제의 목에 칼을 겨누려 일어서야 했고, 난 또 다시 남편에게 갑옷을 입혀야 했다.
주인 없는 말 한 필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결국… 이렇게 끝났구나! 남편의 패배가 확실했다. 허면 내가 가야할 길 또한 정해졌다. 난 두 눈을 부릅뜨고 그길로 싸움터를 향해 나섰다. 시작을 함께 했으니 끝도 함께 해야 한다. 노복들이 막아섰다. 난 잡힌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놓거라! 대군 혼자 죽게 둘 순 없다! 비켜서지 못할까!”*1 

맨몸으로 싸움터를 향해 달려 나가는 이 사람, 태종 이방원의 아내이자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다. 위 내용은 일명 ‘제2차 왕자의 난’이라 일컫는 이방원과 그의 형 이방의 싸움, 그 현장이 소상히 기록된 실록 기사의 일부다. 어떤 사람은 싸움의 현장이란 소리에 고개를 갸웃할 거다. 이 싸움은 개경 거리에서 치러졌는데 어떻게 이방원의 집이 싸움의 현장이 될 수 있냐고 말이다. 실상은 싸움의 현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싸움의 중심! 그 중심에 민씨가 있었다.

막강한 개국 세력, 여흥 민씨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 해도 혼자선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고려 말 난립했던 권력들은 민씨의 시아버지 이성계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 가장 큰 힘이 된 건 누가 뭐라 해도 장성한 아들들과 사돈인 여흥 민씨 세력이다.

여흥 민씨는 고려의 이름난 귀족집안이자 줄줄이 과거급제자를 배출한 걸출한 집안이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수저 집안이다. 이성계는 여흥 민씨 집안에 두 아들을 장가보낸다. 민선의 딸과 결혼한 넷째 아들 이방간, 민제의 딸과 결혼한 다섯째 아들 이방원, 즉 제2차 왕자의 난의 주역들이 바로 민씨가의 사위들이다.

당시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연대는 단순히 두 집안의 연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자식들의 배우자와 그 집안들까지 얽히고 설켜 거대 세력이 형성된다. 이렇게 자식의 결혼으로 이성계는 중앙 정계에서 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고 그 중심축에 민씨 집안이 있었다.

태종 이방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조선의 개국과 두 차례의 왕자의 난, 그 과정에서 정몽주, 정도전 그리고 배다른 동생들의 죽음까지. 많은 사람의 피를 보며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이자 이 때문에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아들. 오죽했으면 함흥차사란 말이 생겼고, 아버지가 아들 머리를 향해 활을 쏘았다는 야사가 생겼을까.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이방원의 입장에선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 만 했다. 개국에 누구보다 공이 컸던 자신을 배척하고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어린 11살 아들을 세자로 세웠고, 정도전의 사병혁파 안으로 아들들*2 의 팔다리를 자르려한 아버지였으니. 해서 새 나라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모든 꿈을 접어야 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 배신감을 이방원만 느낀 건 아닐 거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요동치는 이방원의 삶을 곁에서 굳건히 지킨 사람, 바로 원경왕후 민씨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러스트 이민

불세출한 민씨가의 딸,
계책을 결단하다

고려 말 개경의 유력한 가문이자 중앙정계의 중요 정치세력인 여흥 민씨, 원경왕후 민씨는 그런 집안을 휘어잡은 영민하고 당찬 둘째 딸이다. 집안 좋고, 아름답고, 영특하다고 소문난 민씨는 당시로써는 꽤 늦은 나이인 18살에 두 살 어린 이방원과 결혼한다.

민씨의 남편 이방원을 눈여겨 본 사람은 민씨의 아버지이자 이방원의 스승인 민제다. 민제는 당시 신진 사대부들이 그러했듯이 원나라에서 들어 온 성리학에 심취한 관료이자 학자였다. 먼 훗날 두 사람은 이 시기를 회상하며 민제는 왕위에 오른 사위를 ‘선달’이라 부르고, 태종은 장인을 ‘사부’*3 라 부른다. 이렇듯 일찌감치 장인과 사위는 성리학이라는 공통적 키워드로 뜻을 함께 했다. 이방원은 결혼한 다음해에 과거에 급제해 고려 조정에 입성한다.

조정에는 나갔지만 이방원의 눈에 고려는 이미 회생 불가능 상태였다. 이방원은 새로운 세상을 꿈 꿨고, 이런 이방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사람이었다. 그리고 처가인 민씨 집안을 중심으로 이방원의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원경왕후 민씨의 남동생 4명은 말할 것도 없고, 이방원의 킹메이커 하륜과의 인연도 민씨 집안에서 시작된다. 하륜은 민제와 동문수학한 친구로, 하륜을 이방원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바로 장인 민제다. 그리고 하륜은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이숙번을 끌어오고….

결혼 10년차인 1392년, 조선이 세워졌다. 하지만 건국의 주도 세력인 민씨의 남편 이방원은 공신명단에 이름조차 올릴 수 없었다. 당시 조정을 장악한 정도전 등은 왕자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걸 철저히 차단했다. 특히 정치의 구심점을 왕과 재상 중 어디에 두냐를 두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따라서 개국의 공이 크고, 왕 주도의 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은 정도전 등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이방원은 끝없이 견제 당해 주변부로 밀려나야 했다. 견제 된다는 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위험은 남편 이방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막둥이(세종)까지 민씨의 3남 3녀*4 는 물론이요, 그간 남편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거기다 가장 큰 지지 세력인 친정 또한 몰락할 운명에 처해 버렸다.

조정에서 명이 내려왔다. 왕자들과 공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와 사병을 당장 나라에 귀속시키라고 했다. 나라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권력은 통일되지 않았고, 어수선한 시기에 병권은 목숨줄과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병권을 내놓으라는 건 남편을 위시한 왕자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정치판을 읽어내는 능력과 행동력까지 두루 갖춘 민씨는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했고 대처 능력 또한 뛰어났다. 민씨는 아무도 모르게 무기 일부를 집안 깊숙이 숨긴다. 1398년, 태조가 병으로 위중할 때, 아들들은 자연스럽게 궁에 모였다. 하늘이 도와 정도전 등 반대세력은 궁 밖에 있었다.

남동생 민무구로부터 궁 안팎의 상황을 전해들은 민씨는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민씨는 자신이 아프다는 핑계로 남편을 궁에서 불러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결론은 하나였다. 먼저 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쳐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것! 민씨는 숨겨 두었던 무기를 남편에게 내준다. 그렇게 ‘제1차 왕자의 난’*5 이 일어난다.

상대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노린 싸움은 이방원과 민씨의 승리로 끝이 난다. 승리의 결과 왕위가 교체된다. 아버지 태조에서 둘째 형 정종으로.

2년 후인 1400년, 서두에 언급했던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넷째 형 이방간이 군사를 일으켰다. 정종을 왕위에 올린 이방원이 자신을 제치고 다음 왕위를 이을 거라 여겨서다. 남편 이방원은 차마 형제의 목에 칼을 겨눌 수는 없다고 싸움을 주저했다. 그런 남편에게 민씨는 갑옷을 입혀주며 설득한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싸움은 부부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방간은 유배 보내진다.

두 번의 난에서 승리한 이방원은 조선의 3대 임금에 오른다. 즉위식 날*6 , 민씨의 감회 또한 남달랐을 거다. 남편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들을 헤쳐 나왔는지, 목숨을 건 선택의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을 테니까.

면류관을 쓴 남편은 어린 아들(세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내의 공이 얼마나 큰지 그 고마움을 이렇게 말했다.

"네 어미의 공은 왕건에게 갑옷을 입혀 고려를 세우도록 독려한 유씨(柳氏)보다 크다."*7 

유씨는 왕건의 왕비 중 한 명이다. 왕건이 왕위에 오르는 걸 주저하고 있을 때 갑옷을 입혀 왕위에 오를 것을 격려한 인물이다. 태종은 이런 유씨보다 자신의 아내 민씨의 공이 더 크다고 치하한다. 민씨가 있어서 자신이 난국을 정면 돌파할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결혼에서 옥좌에 오르기까지 18년, 목숨을 걸고 함께 한 두 사람은 부부 이전에 동지였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하는!

내명부의 기틀을 다지다

외부의 적이 내부의 결속을 강화시킨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내부의 결속 또한 깨진다는 의미이다. 원경왕후 민씨의 삶이 그랬다. 남편의 배신! 뜻을 같이 했던 동지의 배신!

즉위식 날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의 공을 운운하던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한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왕실의 자손을 번성케 한다는 명목 하에 젊은 후궁들을 들이기 시작했고, 외척의 발호를 염려해 병권을 쥐고 있던 민씨의 남동생 민무구와 민무질*8 을 유배 보내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9.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었다. 분노한 민씨는 남편에게 거세게 따진다.

“상감은 어떻게 예전의 뜻을 잊을 수 있습니까? 제가 상감과 함께 어려움을 이기고 같이 난세를 넘었기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거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10 

하지만 따진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원경왕후가 따질 때마다 태종은 폐비를 운운하며 몰아붙였다. 뭐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 원경왕후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개인사적으로 원경왕후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원경왕후가 왕비로 지낸 20년 동안 눈물과 한숨으로 그 세월을 보냈을 거라 단정지어선 안 된다. 배신당했다고 자리보전만 하고 누워 있을 원경왕후가 아니니까.

원경왕후에겐 누구 못지않은 권력욕이 있었다. 그게 사욕뿐이었을까? 새로운 나라에 대한 구상이 남자들에게만 있었을까? 원경왕후가 남편을 몰아내고 여왕으로 군림하려 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겠다는 열망, 그 큰 뜻이 남편 태종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부분에서 남편과 의기투합하지 않았다면 18년을 동지로 살 순 없었을 테니까.

그런 원경왕후였기에 자기 삶을 개인적인 비극상태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죽어가기엔 권력의 속성을, 남편 이방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문제는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원경왕후는 변한다. 현실적 유능함을 갖춘 조선국 왕비로! 

내명부 수장으로써 위계를 세우고, 명나라 사신을 맞아들이고, 명나라 황제가 요청한 공녀를 간택하고, 공녀로 간 처녀의 집안을 돌봐주는 등. 조선의 왕비로서 20년 간 내명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조선의 불세출한 왕, 아들 세종이 왕위에 오르고 2년,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시호 원경(元敬)에서 원(元)이라는 글자는 으뜸, 처음, 우두머리라는 의미와 임금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권력의 장 안에서 상황을 주체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내고, 가장 적극적으로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최초의 여성, 원경왕후 민씨. 원(元)이란 글자야 말로 민씨를, 민씨의 삶을 가장 극명하게 대변하는 글자가 아닐까!


*1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28일
*2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 한씨는 6남 2녀를 낳았지만 막내 이방연은 일찍 죽었다. 해서 아들이 5명이다.
*3 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 12월 10일
*4 세종실록 9권, 세종 2년 8월 24일: 원경왕후는 세종이후 1남 1녀를 더 낳아 공식적으로 4남 4녀를 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첫 아들 양녕대군 이전에 3명의 아들을 더 낳았었고 이들은 어려서 죽었다. 이들까지 하면 총 7남 4녀를 낳았다.
*5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8월 26일
*6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월 10일
*7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월 10일
*8 태종실록 19권, 태종 10년 3월 17일
*9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1월 13일: 민씨의 남동생 민무휼과 민무회 또한 유배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죽음에는 아들 양녕대군의 책임이 크다. 임금이 무고한 자신의 형들을 죽였다며 두 외삼촌이 원망하는 말을 했다고 양녕이 아버지한테 말을 전해 결국 죽게 됐으니.
*10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3월 7일

 

필자 김석연

글향, 그 알싸한 꼬드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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