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버린 여인들 4. 조선의 남편들, 근비의 목을 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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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4. 조선의 남편들, 근비의 목을 자르다

실소

일러스트레이: 이민

 조선의 남편들
근비의 목을 자르다!

한 사건에 세 번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3심 제도는 현대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사형수는 신분에 관계없이 재판을 세 번*1 받을 수 있었다. 사람 목숨이 걸렸으니 재판에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다. 근비에 대한 판결 또한 이 과정을 거쳐 나왔다.

근비는 차경남, 박종손과 간통했다. 그리고 간통남 박종손이 차경남을 죽일 걸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결국 근비는 몸을 6토막으로 잘라 죽이는 능지처사를 선고 받지만 임금의 선처로 목만 잘려 죽는다*2

헌데 얼핏 봐선 근비의 죄가 죽을 죄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더구나 벌이 능지처사급이라니. 혹시 근비라는 여자, 대역죄라도 지었나? 아니면 희대의 악녀?

8일 간의 정사
그리고 살인사건

근비는 대역죄인도 희대의 악녀도 아니다. 생기발랄한 20세 여성으로 민효원 집의 노비였다. 

근비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죽기 몇 달 전부터다. 뜨거운 여름, 집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살던 박중손이란 남자가 슬며시 접근해 온다. 박중손은 근비를 좋게 본 사람이 있다며 자기가 다리를 놔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박중손의 소개로 차경남이라는 남자를 만나보니, 나쁘지 않았다. 해서 몸이 이끄는 대로 8일간 정을 통했다. 

그리고 그 8일 동안 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았다. 딱 한 번 정을 통한 그 남자의 이름은 박종손. 차경남을 소개해준 박중손의 집안이다. 헌데, 이 남자 약간 집착증이 있나? 차경남을 죽이고 저와 결혼까지 하겠단다. 빈말인 줄 알았다.

며칠 후 깊은 밤, 흐릿한 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옆 검은 형체에 기겁하듯 놀라 일어났다. 형체 밑에 깔린 차경남은 새끼줄에 목이 졸린 채 버둥대고 있었다. 근비는 두려움에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벽에 착 달라붙어 겨우 목소리를 내려하자, 검은 형체가 고개를 들었다.

소리 지르면 너도 죽어!

차경남 살인 사건의 범인 박종손은 금방 잡혔고 죄가 명확해 참형의 판결이 바로 내려졌다. 문제는 근비였다. 

그런데 근비가 왜 문제지? 근비는 살인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고, 살인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 일뿐인데. 헌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형조에서 근비를 차경남의 아내이자 살인의 공모자로 지목한 것이다.

근비에게 차경남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만난 남자였다. 더구나 차경남은 부인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근비더러 아내란다. 부인이 버젓이 있는데 내가 왜 부인이냐고 따졌더니, 차경남한테 본부인이 있건 없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소개(중매)를 받아 정을 통했으니 근비한테는 차경남이 남편이 된다나 어쩐다나.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는지. 더구나 살인 공모혐의까지. 말도 안 돼!

억울하다고 매달렸지만 상황은 근비에게 불리해져 갔다. 살인이 일어난 직후 근비가 시체를 숨기듯 갓과 그물 등으로 시체를 가려놨고, 칼을 씻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공모한 게 아니라면 왜 이런 짓을 했냐는 취조에 근비는 그저 무서워서 그랬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이렇게 해서 근비 사건은 삼복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참형이 집행되기 약 1주일 전, 형조에서 마지막 결과가 올라온다*3. 근비가 남편을 죽이는 데 참여했으니 목을 매달아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목에서 성종은 고개를 갸웃한다. 아내인 근비가 남편인 차경남의 죽음을 모의했으니 죽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근비가 차경남과 함께 지낸 게 겨우 8일이고, 그 중간에 살인자 박종손과도 간통했는데, 과연 차경남을 근비의 남편이라 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 이민

법보다 강상

다음날, 임금이 제기한 의문에 전례 없는 재판정이 구성된다. 이날 근비 사건에 의견을 제시한 인원만 35명*4. 노비 한 명 재판하는 것치곤 놀라운 인원이다. 35명은 마치 검사측과 변호인단처럼 양쪽으로 나뉘어 성종이 말려야 할 정도로 열띤 혈전을 벌인다. 

그런데 성종은 왜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해 사안을 공론화 한 걸까? 이 사건이 임금이 쌈빡하게 판결 내리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나? 맞다. 근비의 죄안은 참 애매했다.

근비 사건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8일 간 정을 나눈 차경남을 근비의 남편으로 볼 수 있느냐? 둘째, 죽어가는 차경남을 지켜보고 있던 근비는 과연 살인을 공모했느냐? 셋째, 만약 죄안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형을 낮춰 살려줘야 하는데 근비 건도 여기에 부합하는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재판은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의견을 제시한 35명 중 14명은 죽이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중매로 만나 정을 통했으니 근비에게 차경남은 남편이고, 남편을 죽이겠다는 말을 들었으면서 전하지 않았고, 죽어가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도 구하지 않았으니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21명은 죽음은 가혹한 결정이라고 선처를 호소한다. 노비의 혼인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주인은커녕 가족과 주변의 누구 한 사람 근비가 중매 받은 사실을 몰랐다는 것, ‘죽이겠다는 말’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화났을 때 쓰는 말이어서 근비 또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차경남이 죽어갈 때 구하지 못한 건 박종손이 소리 지르면 죽이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라는 것, 시체에 갓과 그물을 덮어 놓고 칼을 씻어 흔적을 없애려 한 것은 무지해서 라는 것이다. 큰일을 당하면 먼저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이고, 더욱이 근비는 어리고 무지해서 그런 것이니 죽음은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수적으로만 봐도 살리자는 쪽이 배는 됐다. 하지만 최종 판결은 임금의 몫이니 모두의 시선이 임금에게 향했다. 성종은 별다른 갈등 없이 근비의 죄가 강상에 관계된다며 죽음을 언도한다. 결국 근비를 죽여야겠다는 성종의 처음 생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억울한 죽음

이럴 거면 이 난리를 치면서 기나긴 토론을 왜 한 걸까? 혹시 근비를 죽이기 위해서? 맞다. 성종이 조정의 대신들을 모두 불러 모아 논의에 붙인 건, 근비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였다. 차경남이 근비의 간통남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자기 생각에 보다 확고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근비는 죽어 마땅한 여자가 되니까.

성종은 14명의 의견을 받아들여 근비와 차경남이 중매를 통해 만났다는 걸 인정해버린다. 해서 근비는 죽어가는 남편을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저 혼자 살아남은 못된 아내, 간통남이 남편을 죽이는데 이를 알고도 구하지 않은 나쁜 아내가 됐다. 강상의 도를 무너뜨렸으니 몸이 찢겨져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근비를 살려두면 백성들 중 간통남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모두 자기 남편을 죽일 것이고, 그런 풍습이 자라게 둘 수 없다는 게 성종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성종은 근비가 부부의 도리를 다 하지 않아 강상을 어지럽혔다며, 마치 근비 때문에 조선의 남편들이 죄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폈다.

그런데 성종이 이렇게 까지 한 이유가 뭘까? 강상 바로 세우기! 이 시기 성종은 음란한 풍속을 처단해서 강상이 바로 선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 강상! 그 강상을 노비한테도 목숨 걸고 지키란다. 노비도 사람 취급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신분질서의 맨 끝, 여자이자 노비 한 명 희생시켜 백성에게 강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 건 아닐까? 도대체 20살밖에 안 된 어린 여자한테 뭘 어떻게 남편을 구하란 거였을까? 무기를 든 남자한테 목숨 걸고 대항하라는 걸까? 남편을 위해 그 자리에서 같이 죽어야 옳았다는 걸까? 그런데 그 남자가 근비의 남편이긴 한 걸까? 성종이 주구장창 주장했던 강상. 그 강상이 이렇게 억지 논리로, 애꿎은 죽음으로 지켜지는 것인지 성종에게 묻고 싶다.

겨우 8일 만난 남자 때문에 죽어야 했던 근비! …참, 많이, 억울한 죽음이다. 

*1 삼복법(三覆法):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8월 30일. 박은의 건의로 시행.
*2 성종실록 110권, 성종 10년 윤10월 1일 12번째 기사
*3 성종실록 109권, 성종 10년 10월 26일 1번째 기사
*4 성종실록 109권, 성종 10년 10월 27일 4번째 기사

필자 김석연

글향, 그 알싸한 꼬드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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