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주소 : 서울 중구 수표로 52 3층
영업시간 : 월~토 11:30~24:00 (11:30~19:00=커피 / 18:00~24:00=와인),
일요일 12:00~20:00
메뉴 : 아메리카노 4500원, 잔 라떼 5000원, 땅콩 카라멜 라떼 6000원, 베트남 연유커피 6500원, 아이스크림 팥 도너츠 7000원
방문이유 : 매장 컨셉이 확실한 곳이라서
최근 들어 거리에서 빈티지 소품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릇, 의류, 가구 등의 빈티지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빈티지 그릇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언니Y가 '잔'을 검색하면서였다. 언니Y는 카페 잔의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잔꽃무늬의 밀크글라스처럼 부드럽고 아기자기하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높은 천장엔 미러볼이 반짝이고 벽마다 특이한 벽지들이 발린 화려한 공간이 나타났다. 을지로 빌딩 숲 사이의 오래되고 낮은 건물의 외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강렬한 색감으로 가득 찬 공간도 충분히 고객들의 발길을 끌만한 이유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마실 음료의 잔을 직접 고른다는 생소한 컨셉이 사람들을 주말에 을지로로 발걸음하게 한다. 나와 언니Y는 카페 컨셉을 알고 나니 상호명까지 기발하다며 웃었다. 제일 먼저 바 옆에 마련된 진열장에서 잔을 고르고 그 다음에 직원에게 잔을 주면서 메뉴를 주문한다. 마음에 드는 잔이 많아 고르면서 꽤나 고민을 했다. 나에게는 한강변 편의점에서 처음 라면을 끓여먹었을 때 만큼이나 신선하게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잔>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땅콩카라멜라떼, 베트남 연유커피, 그리고 겨울철에는 중단했던 아이스크림 팥 도너츠를 먹었다.
이곳은 카페 컨셉에 맞게 메뉴도 특이하다. 메뉴들 중 특히 베트남 연유커피는 베트남식 드리퍼인 커피핀이 함께 제공되고 베트남 로부스타 g1 원두를 사용한다. 로부스타를 사용해서인지 미숫가루를 섞은 것처럼 고소한 맛이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으로 로부스타 원두가 아라비카 원두보다 맛이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데 카페 잔의 연유커피는 로부스타의 인상을 반전시킬만한 메뉴다.
연유커피 외의 커피메뉴는 프릳츠의 올드독 원두를 사용한다. 아메리카노는 신맛이 없고 풍부한 향으로 무난히 마시기 좋았고, 땅콩카라멜라떼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이름 그대로 종이곽에 담긴 ‘땅콩카라멜’이 떠오르는 아주 달달한 맛이었다. 첨가된 에스프레소가 음료의 식감을 사탕같은 가벼운 단맛이 아닌 카라멜의 무거운 단맛으로 만들어준다.
디저트 메뉴로는 톰과 제리가 떠오르는 치즈케익, 당근케익,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팥 도너츠가 있는데, 그 중 카페 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팥 도너츠를 주문했다. 호떡같은 비주얼의 넓적하고 두꺼운 팥도너츠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크게 한 스쿱 올라가있다. 누구나 다 아는 맛이지만 이 공간과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메뉴라 그런지 여러 테이블에 서브되어 있었다.
잔은 오후 7시까지 카페로 영업을 하고 7시 이후엔 와인 등의 주류도 판매하는 바가 된다. 나와 언니Y가 방문했던 시간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창문 안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패브릭의 색감을 가볍게 만들어 키치한 느낌을 주었다. 나와 언니Y가 보지 못한 어둠이 내린 잔의 분위기는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을지로 회사원들에게는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탈출구가 될테고, 나와 언니Y같은 방문객들에게는 뜻밖의 곳에서 보물을 찾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오르고 나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순간 잊어버리게 되고, 이곳을 떠나면서도 한동안 여기에서의 경험을 회상하거나 이야기 나누게 되는 그런 장소.
나 역시 이곳 <잔>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잔들의 귀여움과 매번 다른 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색다름을 경험해보니 언니Y가 느끼는 그릇수집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잔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되는 그 짧은 순간이 굉장히 즐거웠다.
이번에 <잔>을 방문하면서 같은 분이 운영하는 카페 <루이스의 사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디저트 접시까지 선택이 가능하고 매장 내에 택이 붙은 사물들은 구입도 가능하다고 한다. <잔>을 만든 분의 새로운 공간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언니Y의 한 줄 : 개성이 뚜렷해 가치 있는 곳.
동생S의 한 줄 : 이 곳에 딱 맞는 '잔'이라는 훌륭한 매개체.
자매의 동상이몽 : 좀 더 차분한 느낌의 빈티지를 좋아하는 언니Y와 빈티지라면 이 정도의 개성은 있어야 한다는 동생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