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SF 읽기 4. <좋아하면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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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SF 읽기 4. <좋아하면 울리는>

해망재

SF(Science Fiction)는 남성이 쓰고, 읽고, 향유하는 남성의 장르일까? 아니다!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고, 여성이 향유한다. 어떤 작가의 어떤 이야기를 오늘은 읽어 볼까, 외롭게 덕질하던 SF 팬들에게 좋은 SF를 골라 추천한다.

SF와 판타지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며, 종종 한 카테고리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또한 신화나 설화와도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김보영 작가의 <진화신화>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설화적 존재들이 만약 사실 그대로를 서술한 것이라면 어떨까'하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왕족이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화를 이루어나가는 이야기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셈레이의 목걸이>는 조상이 남겨준 목걸이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여왕의 이야기로, 북구 신화적 요소와 무릉도원 설화에 광속 우주여행이 결합된 이야기다. 이들을 어디까지는 SF고 어디부터는 판타지라고 칼로 자르듯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판타지로 분류되는 작품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자신이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SF로 분류되는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변화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 웹툰에 연재중인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은 순정만화인 동시에 훌륭한 SF다.

'정통' 여성 SF만화의 계보를 잇다

한국 SF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순정만화의 존재를 빼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정확히는 남성작가가 그리는 만화들은 저마다 무협이나 SF, 스포츠 등으로 장르가 나누어졌지만, 여성작가가 그리는 만화들은 게으르게도 '순정만화'라는 카테고리로 한번에 묶여버렸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작가들의 SF만화들은 동시대 남성작가들의 SF만화들 이상의 깊이와 스케일로 독자들을 압도해 왔다. 강경옥 작가의 <별빛속에>와 <라비헴폴리스>, 김혜린 작가의 <아라크노아>, 김진 작가의 <푸른 포에닉스>등 80년대~90년대 초의 작품들은 물론, 90년대 후반의 권교정 작가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나 서문다미 작가의 <END>와 같은 작품들은 걸출한 순정만화인 동시에, 저마다의 확고한 개성을 지닌 SF 만화이기도 하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바로 이 계보의 연장선상에 있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표면적으로는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이며, 흔히 생각하는 순정만화의 정석을 밟고 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이모 댁에 더부살이하며, 사촌인 굴미에게 구박을 받는 조조가 학교 최고의 인기남 선오, 선오네 집 가정부의 아들인 혜영, 굴미를 좋아하는 덕구와 얽힌다. 한번씩 비틀어진 형태로 얽혔던 그 관계들은 어른이 된 뒤 조조가 혜영의 고백을 받으며 사춘기 때와는 다른 좀 더 복잡한 형태로 옛 갈등을 이어가거나 풀어낸다.

기술이 바꿔 놓은 근미래의 어떤 풍경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신기술이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 그리고 신기술로 인해 바뀐 세상에서 주인공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만화의 제목이기도 한 '좋아하면 울리는', 작중에서는 흔히 '좋알람'으로 줄여 부르는 앱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고, 좋알람 하트에 숫자가 늘어나는” 앱이다. 다시 말해 이 앱은 인류 최고의 난제인 사랑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변화시켰다. 

조조가 고등학교 때, 처음 런칭할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앱은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사람들의 동경을 모으는 '좋알람 배지 클럽', 사랑을 수치화하는 좋알람을 반대하는 '안티 좋알람', 그리고 좋알람에 대한 소설이라고 알려진 소설 '울리는 세계'로 대표되는 다양한 선망과 논란과 함께, 사람들의 연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치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더는 갓 시작한 연인들이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의 확장판처럼.

밀당이 축소되고,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 다가오면 좋알람이 울려 복잡한 고백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세계에서, 조조는 학교 다닐 때 덕구에게서 받은 '좋알람 방패'로 자신의 마음을 가려 둔 상태다. 그녀는 그 방패 덕분에, 자신이 선오와 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순간 더는 그의 좋알람을 울리지 않음으로써 그와 헤어질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혜영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데도 그의 좋알람을 울려 줄 수 없어 고민한다. 이 이야기는 기술에 의해 '축복이자 저주'를 받게 된 여자아이가, 자신의 저주를 풀고 진심과 마주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성장기이자, 순정만화고, 기술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보여준 SF만화다.

막장 드라마와 SF의 절묘한 만남

현재 연재분에서 혜영을 제외한 주인공들은 '짝짝짝'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좋알람의 개발자로 알려진 브라이언 천은 또 다른 기술, “나를 좋아하게 될 사람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기술을 공개함으로써 이 세계의 연애를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 화 한 화를 볼 때는 묘한 막장성, 소위 '미원맛'에 다음편을 찾아 가슴을 쥐어뜯는 괴로움을 겪게 되겠지만, 한 시즌씩 몰아서 보면 이 만화가 다루는 것이 단순한 막장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기술이 바꾸어 놓은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 섬세한 감정선과 독자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자극적 요소의 적절한 배치, 여기에 3D로 캐릭터를 구현하여 배치하여 만화를 만드는 특이한 기법까지. 이 만화의 곳곳에서 작가의 내공과 격, 그리고 오랜 연구가 느껴진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현재 휴재중이다. 최근 천계영 작가의 투병 및 수술 소식이 전해져 독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건강하게 완쾌되시기를, 그리하여 기술이 바꾸어놓은 세계의 어떤 모습을 마저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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