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SF 읽기 2.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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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SF 읽기 2.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해망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SF(Science Fiction)는 남성이 쓰고, 읽고, 향유하는 남성의 장르일까? 아니다!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고, 여성이 향유한다. 어떤 작가의 어떤 이야기를 오늘은 읽어 볼까, 외롭게 덕질하던 SF 팬들에게 좋은 SF를 골라 추천한다.

얼마 전 아는 집의 돌잔치에 갈 일이 있었다. 사실 돌잔치라는 것은 대부분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뻔한 장소에, 돌림노래처럼 뻔한 식순에,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뻔한 뷔페 음식들이 나오는 행사다. 결혼식보다는 소규모인데 앉아서 밥 먹으며 행사를 보다 보니 한 테이블에 낯선 사람들이 둘러앉아 서로서로 어색해지는 경우도 은근히 많은 모임이다. 

하지만 이 돌잔치에는 전형적 로맨스 서사의 결말,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 이어지는 무척 행복한 후일담같은 면이 있었다. SF 이야기를 할 지면에서 갑자기 돌잔치라니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이 돌잔치의 주인공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잠시 해야 할 것 같다. 

현실의 로맨스에서 시작된 소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몇 년 전, SF를 무척 사랑하는 한 출판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척 특별한 프로포즈를 하려고 했다. 고민 끝에 그는 연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게 청탁해 받은 더없이 로맨틱한 SF 소설을 읽어주며 프로포즈에 성공했다. 결혼한 부부는 첫 아이의 이름을 그 작가의 다른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지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대모님이나 다름없는 작가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짧은 소설과 함께,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소설 플랫폼 <브릿G>에 짧게 알렸다. 그 돌잔치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이였고, 그 부부를 위해 흔쾌히 소설을 써 주었던 작가는 바로 김보영 작가다.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을 통해 데뷔하여, 21세기 한국 SF를 이끌어가는 바로 그 사람.

우주, 시간, 사랑

로맨스에서는 사랑하는, 맺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두 사람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흔히 존재한다. 흔히 나오는 클리셰로는 양가의 부모, 특히 남자 쪽 부모가 돈봉투를 내밀면서 “우리 애와 헤어져.”하고 말하는 것이 있다. 

로맨스가 결합된 SF도 예외는 아니다. 곽재식 작가의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을 가로막는 것은 양가 부모님 정도가 아니라, 지구를 한 바퀴 돌아가야 하는 물리적인 장벽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외출장을 나온 주인공이 백두산 화산 폭발로 항공편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결혼식 시간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는 모험담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백두산 화산 폭발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제약을 통해 “아주 압축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풀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따로 길게, 이 소설에 대한 팬심을 풀어보고도 싶지만, 이 연재에서는 여성 작가의 SF를 다루고 있으니 그건 다음 기회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장벽은 좀 더 스케일이 크다. 두 사람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상대적 시간”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에 따르면 서로 다른 두 물체가 상대적 시간을 갖고 있을 때, 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다른 물체에게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관측되는 시간지연(time lag)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광속에 가깝게 우주선을 타고 날아갔다가 돌아오면, 우주선 안에서는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도 지상에서는 4년이 흐르거나 하는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궤도

알파센타우리에서 돌아오는 예비 신부를 기다리던 예비 신랑은, 신부가 올 때까지 그 4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기다림의 궤도라 불리는,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가 목적지로 돌아오며 시간을 넘어서는 항로를 따라 움직이는 광속우주선을 타게 된다. 하지만 광속에 가깝게 움직이는 우주선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으로도 시간선이 틀어지고, 몇 가지 사건이 겹치며 두 사람의 만남은 기약없이 멀어지고 만다. 상대가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조차 없는 편지를 써서 보내며, 지구의 시간으로 수백 년이 흐르고, 전쟁이 일어나고, 고향이 불타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시간을 향해 그저 서로 만나기 위해 계속 달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무척 절절하고 안타까우면서도 로맨틱하다.

안타깝게도 SF에 대해, 과학에 대한 이야기, 사고실험으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쪽 장르도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분야다. 역사나 전쟁, 혁명이나 정치, 그렇게 인간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많은 모습들이 소설 내 논리구조 안에서 구축되고 변주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수많은 이야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신화도 그렇고, 가장 보편적인 서사인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시간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려는 한 남자의 간절한 로맨스이자,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는 장대한 SF다. 길지 않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책인만큼 꼭 한번 만나보기를 권한다.

김보영 작가는 신랑이 주인공이었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 이어, 신부가 주인공인 <당신에게 가고 있어>에 대해 작년 봄 브릿G에 연재 예고를 했는데,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 소설도 빨리 볼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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