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지내니?’라고 말을 꺼낸 친구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힘겨움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묻자, 잠시 말을 않던 친구가 입을 뗐습니다.
내가 창피해서 전화를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도저히 물어볼 데가 없어서...
얘기인즉슨 얼마 전 취업한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예상과 달리 성사되지 않자 대표가 월급을 처음에는 3일, 두번째에는 일주일을 미루더니 이제는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금방 주겠지하고 기다리다가 통신비까지 밀리게 되는 상황에 이르러, 대응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체불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닥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지만,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는 일입니다.저 또한 당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요. 오늘 서바이벌 생활노동법에서는 임금체불을 당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시점
‘임금체불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회사에 재직하고 있는 경우에는 급여를 받기로 한 날(급여지급일)로부터 하루라도 지체되면 임금체불이 됩니다. 또한 지급받기로 약속(계약)한 급여가 아니더라도 주휴수당이나 연장, 야간, 휴일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이 또한 급여지급일이 지났을 땐 임금체불이 됩니다.
이와 달리, 퇴직한 경우에는 퇴직한 날로부터 14일이 경과해야 임금체불이 됩니다. 특히 원래 월급을 받던 날이 퇴직일로부터 14일이 지난 이후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퇴직일로부터 14일 내 지급해야 합니다. 만일 퇴직일로부터 14일보다 기한을 연장하여 임금 및 퇴직금 등을 지급받기로 합의하였다면, 그때까지 지급일이 연장되는 것이므로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임금체불을 당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1. 입증자료 확보하기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는 그 입증서류로 본인의 본래 임금을 확인할 수 있는 근로계약서(또는 연봉계약서)와 취업규칙, 임금명세서, 급여 통장 내역 등이 주요하게 필요합니다.
받기로 약속한 계약임금을 단순히 체불한 문제라면 위와 같은 자료만 구비하여도 입증이 간단하지만, 만일 연장, 휴일, 야간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했다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제반 근무기록(업무일지, 회사 출입기록, 이메일·통화·문자기록, 동료 근로자 진술서, 기타 근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함께 확보하셔야 합니다.
본래 근무하기로 계약한 시간이 아닌, 회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시간 외에 근무를 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회사가 업무를 지시하지 않았다거나, 업무시간 외에 근무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임금체불 혐의를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문자 또는 내용증명 보내기
사업주의 성격, 회사의 재정 상황 등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처음부터 법적인 절차를 밟기보다는 우선 회사에게 요청을 하여 자체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수월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전 언급 없이 곧바로 법적인 절차를 밟을 경우에 회사에서는 근로자의 주장이 타당한지와 관계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근로자로서도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되면 절차도 복잡하고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자 또는 내용증명을 보낼 때 유의할 점은 일정 기한을 명시하지 않으면 또 회사에서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정 기한 내 임금이 지급되지 않을 경우 공식적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을 예정임을 명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3. 고용노동부 진정 또는 고소, 고발
문자 또는 내용증명상의 일정 기한이 경과하였음에도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그 다음 단계로 고용노동부 회사 소재지 관할 노동청에 임금체불에 대한 진정(민원)을 제기하여야 합니다. 임금체불 신고 시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절차는 '진정'이기 때문에, 아래 글에서는 고소, 고발 절차는 생략하겠습니다.
진정이 접수되면 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이 여러 차례의 출석 조사 등을 거쳐 임금체불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조사 결과 임금체불이 확인되면 범죄를 인지하고 지급지시 명령을 한 후에 지급이 되지 않으면 검찰에 송치하게 됩니다.
유의하여야 할 점은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절차는 (민사적인 절차가 아니라) 임금체불이라는 범죄가 있는 경우 회사에 처벌을 하기 위한 형사적인 절차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진정 과정에서 회사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합의금이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등 간접적인 효과로 체불임금을 지급할 수는 있지만, 회사가 고용노동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근로자가 곧바로 체불임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회사에서 국가에 벌금만 내고 근로자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근로자로서는 고용노동부의 진정 절차만을 통해서는 체불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다음 단계인 민사소송 및 소액체당금 절차를 통해 체불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4. 민사소송 제기 및 소액체당금
고용노동부 진정 단계에서 근로감독관이 최종적으로 체불임금액을 확정하면 고용노동부는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발급해줍니다. 이 확인서를 입증자료로 회사 관할 지방법원에 지급명령 신청이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확정판결을 받으면, 강제집행 또는 경매 등의 절차를 통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제집행, 경매를 통한 임금채권 회수는 시간도 더 경과되고 임금채권보다 우선되는 채권이 있거나 회사에 재산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 회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체불된 임금이나 퇴직금 일부를 국가에서 회사 대신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해주는 ‘소액체당금’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폐업, 파산, 법정관리 중으로 임금을 체불한 기업 근로자의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체당금도 있지만, 여기서는 소액체당금 제도만 언급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받은 근로자가 소액체당금의 지급요건에 해당하여 소액체당금을 신청하면, 최대 1000만원까지는(임금, 휴업수당 700만원/퇴직금 700만원 상한) 국가로부터 소액체당금을 통해 확실하게 회수할 수 있습니다. 소액체당금 지급요건은 여기서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체불임금액 계산은 임금 구성, 근로시간 형태 등 계약된 근로조건에 따라 계산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체불임금을 받기 위한 절차도 근로자가 혼자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절차가 더욱 복잡하고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월 평균임금이 400만원 미만의 근로자에게는 공공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무료로 소송을 지원하고, 소액체당금 한도액을 초과하는 체불임금에 대한 가압류도 함께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체불임금 등·사업주 확인서’를 발급받은 이후에 위와 같은 지원요건에 해당되신다면 이러한 지원절차를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