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컨에서 만난 여자들 4.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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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컨에서 만난 여자들 4. 이수지

도유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11월 3일, 성수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에서 ‘여성을 위한 일, 일 하는 여성 (WORK FOR WOMEN, WOMEN WHO WORK)’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제 2회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아래 여기컨)이 열렸다. 여성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워크샵과 강연 프로그램으로 꽉꽉 찬 특별한 하루에 만난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이 날 여기컨에서는 여성 기업 부스전, 그리고 커리어 리디자인과 실무 꿀팁 나누기 같은 다양한 워크샵 프로그램 이외에도 여러 여성 기획자들의 강연이 열렸다. 그 중 이수지(띵스플로우 대표)씨는 ‘스타트업 기획자의 월화수목금’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기획한 챗봇 서비스 ‘헬로우봇'이 아이디어 단계에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공유했다. 띵스플로우의 헬로우봇은 올해 6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이수지 대표를 그의 강연 후 만났다.

Q. 오늘 여기컨 강연에서 한 스타트업의 대표이자 기획자로서의 업무 프로세스 및 일과를 세세하게 공유했다. 스타트업은 그 특성상 기획자의 역할이 아주 클 것 같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획자는 어떤 모습인지?

사진 조아현

스타트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가진 자원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스타트업은 보통 첫번째 투자를 받은 시점으로부터 약 일년 반 안에는 자체적으로 매출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시드머니(스타트업 초기에 처음으로 받는 투자금을 일컫는 말)가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 자체 수익 없이 일년 반 내외로 운영할 수 있는 금액이라 그렇다. 이 첫 일년 반이 끝나기 전에 유의미한 자체 수익을 내거나, 외부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지 않으면 바로 문을 닫게 되는 게 스타트업이다. 일년 반이 엄청 짧은 기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반 서비스업이다 보니 제조업과는 달리 서비스 개선 및 피봇(서비스 방향 전환)이 훨씬 용이해서 생각보다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즉, 이런 스타트업에 필요한 기획자란 조직이 가진 아주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좋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최적의 솔루션으로 문제를 개선하여, 다음 투자를 받거나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여기서 좋은 서비스 기획이란 게 추상적인 개념 같지만 숫자로도 설명 가능하다. 즉 반영구적으로 가입 전환율, 구매 전환율, 추천 비율 같은 핵심지표를 올리는 기획이 바로 좋은 서비스 기획이라고 본다.

지금 헬로우봇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지표는 리텐션(잔존율)이다. 예를 들어 홍보 예산을 집행해서 광고를 하거나, 기사가 나가거나 해서 서비스 사용자가 갑자기 늘어났는데 리텐션이 낮다면 한 달 뒤에는 지난번에 유입되었던 사람들 중 여전히 남아 있는 사용자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리텐션이 낮을 때 하는 서비스 홍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자칫하면 큰 위협이 되기도 하고. 서비스 하나가 세상에 나오고, 살아남고, 잘 되기까지는 내부에서 끝없는 고생과 토론, 그리고 고민이 필수다. 때로는 실수도 반복하면서 배우고 있다.

Q. 띵스플로우가 두번째 창업이다. 첫번째 회사는 그 힘들다는 엑싯(인수합병, 기업상장 등의 스타트업 출구전략을 일컫는 말)까지 완료했는데, 어쩌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창업을 또 하게 되었나.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이런저런 것들을 기획하게 되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계속 해왔다. 대학교 4학년 때 한 기업의 신사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기획한 서비스가 있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서울의 신촌 지역 음식 배달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운좋게 엑싯까지 할 수 있었던 서비스는 그 이후에 만든 ‘커플리'라는 서비스인데, 데이트 장소 등을 찾아주는 커플을 위한 버킷 리스트 앱이다. 이용자가 늘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한 웨딩 벤처회사에서 인수 제안을 받아서 인수됐다. 인수 후에는 그 회사에서 팀장으로 2년 정도 일했고, 헬로우봇은 퇴사 후에 시작했다. 

사진 조아현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시기별로 달랐다. 대학생 때 인턴십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한 학기 휴학하는 동안, 벌써부터 이런저런 창업을 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다 멋있어 보였다. 그 때가 2012년이었으니까 벌써 6년 전인데, 그 때가 그런 친구들이 특히 많을 때였다. 각자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서비스가 있고 그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세상에 어떻게든 내놓는 그런 초롱초롱한 모습,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열정이 넘치는 친구랑 선배들이 마냥 멋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 휴학이 두 학기 휴학이 되고, 대학생으로 창업을 무작정 시작하다 보니 선배 창업가나 전문가들이 학생이라고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다.

첫 서비스 엑싯 후에 하게 된 회사원 생활 2년도 재미있었는데,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 중에 사용자 반응이 있는 아이템이 있다 보니 또 창업을 결정하게 됐다. ‘89스타트업'이라고, 89년생 또래 창업자들의 모임 같은게 있는데 그 친구들이 다 각자 자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백만명 단위 사람들이 그 친구들 서비스를 사용하는 걸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띵스플로우의 헬로우봇은 이수지 대표 본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서비스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이런 저런 고민이 있던 차에 우연히 한 타로집에 들러 타로점을 보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그 타로점이 본인에게 큰 위로가 된 경험을 하게 된 것. 이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이용자를 위로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자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헬로우봇에는 타로점을 봐주는 타로챗봇,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진단해주는 진단챗봇, 연애 상담을 도맡아주는 연애챗봇 등이 지금도 메신저를 통해 이용자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중에서도 타로챗봇 ‘라마마'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2017년에는 한 업체가 라마마를 표절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지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획과 내용의 유사성이 매우 (흡사해) 악의적으로 느껴진다. 고의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봉봉 측의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했고, 봉봉 측에서는 “라마마를 보고 연구개발 차원에서 테스트로 만들어 본 프로젝트일 뿐"이라는 답변 및 사과와 함께 해당 서비스를 삭제했으나 당시 온라인 상에서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Q. 작년 표절 사건도 그렇고, 항상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니 스트레스가 극심할 것 같다.

당시 표절 건 같은 경우에는 다른 것보다 팀원들이 엄청 우울해해서 많이 힘들었다. 아무리 힘들여 기획하고 개발을 해놔도 누군가가 이렇게 쉽게 가져가버릴 수 있는 거면 정말 위험한 거 아닌가, 이런 기류가 있었다. 우선 상대측이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해당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게끔 하자는 행동 방침을 정하고, 법적 자문도 받기 시작했다. 

외부 대응도 중요했지만 내부 사기 독려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우리가 잘 하고 있으니까 이런 표절 사건도 일어나는 거다', ‘우리의 경쟁자는 우리고, 우리는 우리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것만 생각하자, 그 이외의 모든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때 사건을 계기로 시나리오 저작권을 정식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일이 터지면 행동 방침을 정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하는데 집중하려고 힘을 쓴다.

Q.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힘든 점이 있다면?

학생 때부터 창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아왔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 이건 어디나 마찬가지일 거다.

업계 내 여성 창업자들이 워낙 적다 보니 피칭이나 데모데이(스타트업이 자신의 서비스/제품을 업계 관계자, 투자자, 잠재적 사용자 등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선보이는 행사)에 여성 창업자 할당제 같은 게 요즘 생기고 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좋겠다', ‘거저 먹는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번은 한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에서 누가 내 앞에서 ‘OO 여자 대표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투자자에게 아양을 잘 떨어서 투자를 받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바로 ‘무슨 개소리냐'고 했다. 

여성 창업자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데도 단순히 여자라서 주목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따라다니기도 하고. 초창기에 들었던 말 중에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게 있는데, ‘진짜 대표세요?’ 이런 거. 뒤에 남자 대표, 주주가 따로 있고 나는 간판으로 내세운 소위 ‘바지 사장'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이런 질문을 대놓고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 일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조아현

Q. 직접적으로 사용자와 소통하는 콘텐츠 서비스다. 젠더 감수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단어 하나하나의 사용이라던가, 사용자의 성별을 지레짐작하고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신경쓰게 된다. 특히 주요 서비스 중 하나가 연애 타로점이다 보니 성별 호칭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타로점 해석에서 한국어로는 어떻게든 성별을 모호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 영어 버전에서는 him/her 같은 식으로 성별을 콕 집어 이야기하게 되다 보니, 이런 성별 대명사를 쓰지 않도록 번역에 많은 공을 들였다.

우리 콘텐츠에 이런 관점의 검수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지난 서비스에서 받았던 사용자 피드백이었다. 커플들을 위한 앱을 기획했을 때 사용자의 성별 포함 기본정보를 받은 다음 당연하게 상대방을 이성으로 설정했다. 한 사용자로부터 동성커플로는 왜 사용할 수 없냐는 피드백을 받았고, 서비스 설계를 싹 바꿨다. 사용자의 성별이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정보였는데 그 구조를 바꾸다 보니 개발을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하다시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남자/여자를 디폴트로 작성했던 콘텐츠들도 성중립적 표현으로 바꾸었다.

여전히 실수를 할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피드백을 받는다. 피드백을 받을 때 적극적으로 내부 토론을 하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 내 팀원 관리 역시 중요하다. 띵스플로우에서는 피어 리뷰를 통해 정기적으로 팀 내부에서 성차별 발언 등을 수집하고 해당 발언자에게 피드백을 시행하고 있다.

Q.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창업을 계획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수지: 우선 다른 것보다 그냥 시작하고 봤으면 좋겠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 주변인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만나는 게 중요하다. 미약할지 모르지만 내게도 언제든 편하게 손을 내밀어 주시라. 나도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목소리를 내자. 요즘 업계 내부에 몇 안 되는 영향력 있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계시고, 나도 거기서 힘을 많이 얻고 있다.

부록: 아래는 여기컨 강연에서 이수지 대표가 공유한, 창업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리스트다. 

린 스타트업 (스타트업)

린 분석 (데이터 분석 실전)

훅 (서비스 기획)

프라이싱 (서비스의 가격 책정)

웹 데이터 분석학 (데이터 분석 기초)

칸반과 스크럼 (프로젝트 운영)

로지컬 씽킹 (제안서 작성)

인간관계론 (커뮤니케이션)

인간중심 UX디자인 (UX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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