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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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직장과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순간이 시작된 새벽 3시였다.

우선 수납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고인을 정리하기 위해 접해야 하는 수많은 분야가 있겠지만 무엇이든 8할 아니 9할을 아마 돈이 차지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는 데에도 돈이 들어간다.  

                                   아주 세세하고 커다란 돈이


응급실 수납창구에서 40여만원을 지불했다.

당장 가지고 온 게 나의 핸드폰과 엄마 신분증과 카드가 든 핸드폰이었기에 엄마 카드로 수납을 했다. 할부 개월수를 무심코 말하면서 '할부가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평생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온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빚을 지는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처치료, 방사선비 등을 포함해 40여만원이 청구되었다.

수납 후 깨닫고 보니 응급실은 나의 울음이 그친 이후로 너무나 조용했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사망 고지를 하기 위해 왔다가 좀 더 처치해달라는 나의 소용없는 부탁에, 여기서 뭘 더 하라는 것이냐는 말을 한 의사에게 고맙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소생에 힘썼던 의료진이 앉은 스테이션에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


이후 엄마는 정리되어 해당 대학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우리는 걸어서 올라가고, 엄마는 차를 타고 -정확히는 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을의 찬 바람이 새벽의 까맣고 먼 밤하늘에서 불어왔다.  적막한 병원 주차장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장례식장 안치실에서 간단하게 안내를 받았다. 시신은 깨끗하게 닦여 염을 하고 발인하는 날까지 냉장 안치실에 보관된다. 보관료는 일일 3만원 정도였다. 우리가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누워있는 엄마를 돌아보다 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직원이 고인의 옷을 벗기는 바람에 그 장면을 동생이 보고 말았다. 병원에 온 순간부터 조금씩 자존심과 존엄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망연자실해 어떡해 어떡해만 읊조리다가 응급실에서 신용카드를 두고 갔으니 찾아가라는 전화를 받고 다시 응급실로 혼자 향했다. 찬 바람이 유독 매섭게 느껴졌다. 텅 빈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어떻게 사냐고 혼잣말을 하며 울기만 했다.  세상이 더 끝없이 넓고 광활하고 삭막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그 삭막한 세상이 내 공간을 침범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넓고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 내 자리가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드를 찾아와 장례식장에서 장례 절차와 금액에 대해 안내를 받았고 곧바로 빈소의 크기와 꽃 제단, 영정사진, 유골함 등을 빠르게 정해야 했다.

새벽에 돌아가셨다 해서 그 날 하룻동안 천천히  결정하고 다음 날부터 장례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 날부터 삼일장의 첫째 날이 기산된다. 가슴이 아프다는 호소를 하다 쓰러진 엄마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이후부터 울며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은 게 불과 두 시간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여섯 시간 뒤에 시작될 장례를 위해 모든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정해야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단은 형태와 규모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헌화용 국화를 포함한다면 50여만원부터 200여만원 정도 넉넉하게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가장 싼 제단을 선택했다. 영정사진은 액자까지 해서 6만원 정도. 상주들의 의복 역시 2~3만원대에 대여한다. 남성은 대개 검은 정장이 있으면 그것으로 입으면 족하나, 여성들은 검은 한복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2만원에 대여해 입게 된다. 남성이 상복을 대여할 경우 셔츠와 타이는 구매가 되니 되도록이면 집에서 준비하는 편이 좋다. 여성용 상주 예복은 4계절용이라 좀 도톰한 편이다. 디자인도 별로고^^;; 언제부터 이런 검은 한복을 입게 된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긴 저고리와 벙벙한 치마가 의외로 아무렇게나 편하게 앉기에는 편했다.  예복은 필수는 아니니 바지정장을 입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상주용품에는 완장과 여성들 머리에 꽂는 근조리본도 있다. 실핀에 흰 리본을 묶은 것인데 어째서 여성들에게만 이 핀이 지급되는지는 알 수 없다. 머리가 흘러내릴까봐 그러는 것인지... 10개에 삼천원이었다. 일단 주는 것이니 했고 3일장이 지나고도 두 달 정도는 밖에서도 그냥 하고 다녔다. 

고인에게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으로는 수의, 매장베, 목관, 유골함, 염습 비용 등이 있다. 수의와 관은 가장 싼 것으로 했다.  금사가 들어간 수의나 고급 오동관, 화려한 유골함 등에 혹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치만 정말 의미가 없고, 태워서 보낼 예정이었고(매장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급 유골함은 멋지다거나 예쁘다거나 엄마에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리 자매가 어려 보였는지 장례 상담을 해 주던 직원은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우리는 국립대 병원이라 한 번 가격이 보고된 물품은 한 해 동안 가격의 중간 변경이 안되는데, 마침 원래는 고가인 유골함의 가격이 잘못 기재돼 싸게 판매되고 있으니 이것으로 하는 걸 추천한다." 시며 원래는 50여만원인대 20만원대에 판매되는  유골함을 추천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가는 디자인의 유골함이 있었다. 그걸 보다가 잠시 호출을 받아 동생들에게 유골함을 골라보라고 한 뒤 자리를 비운 후 10분여 뒤에 돌아왔다. 정했느냐는 말에 동생들이 하나 골랐다고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순간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하고 유골함 진열장으로 가 "이거지?" 하고 한 유골함을 짚었고 동생들은 맞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둥글고 흰 바탕에 금으로 된 부드러운 나뭇가지, 큐빅이 박힌 파스텔 색의 나비와 꽃들이 장식된 유골함이었다. 외모도 취향도 아기자기하고 화려했던 엄마에게 어울리고,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었다.

저 작고 예쁜 유골함에 엄마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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