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 옆 딸들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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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 옆 딸들에게 -1

'돌보며 생하는 손'들을 지닌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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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없어..." 아뿔사, 비상이다! 근 3년은 항상 이런 패턴이었다. 날이 더워지고, 입맛은 없는데 선풍기 바람에 장시간 노출돼 몸이 찬 상태에서 또 약은 먹어야 해서 억지로 밥을 먹었으나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질 않아 배에 가스가 찬다. 가스와 변이 찬 상태에서 소화제와 식사를 반복하다가 컨디션이 나빠지고 혈압이 떨어지고 혹은 열이 오르다 폐렴에 걸리고 염증수치가 오르고... 이틀에 한 번은 자다 깨서 부랴부랴 차를 몰고 응급실을 드나든다. 밤을 새거나 한 시간 정도 새우잠을 자다가 출근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또 입원을 하 고 말았다.

나와 자매들은 환자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양친 모두 15년 가까이 난치성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엄마는 결국 미루고 미루던 입원을 했다. 그렇게 의사가 입원을 권유할 때는 싫다고 버티다가 꼭 혈압이 80까지 떨어지고 열이 38도까지 끓어서야 입원을 하는 게 답답할 따름이지만 병원생활이 싫다는 마음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병동으로의 이동을 잠시 당부하고 자매에게 잠시 와 줄 것을 부탁한 후 늦은 출근을 했다. 정신없이 일을 마친 후 집으로 와, 큰 가방을 꺼내 익숙하게 입원 짐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경우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주 정도 입원을 해 왔다. 짐을 병원 사물함에 풀고 같은 병동을 이용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응급실에서의 처치로 잠시 괜찮았다. 그러나 어떤 병이든 왜 그렇게 밤에 통증이나 증상이 심해지는지... 알부민 수치가 바닥인데다 전해질 균형이 무너져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엄마는 작년 발병한 심장질환의 증상조차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다. 의료진의 빠른 처치로 수 시간 내에 안정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어째 입원도 길어지고 살펴야 할 면들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엄마는 체중이 빠르게 감소해 팔도 다리도 뼈만 남았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몸이 안 좋으면 항생제 진통제 맞고 잠이나 푹 자면 좋으련만 만성적인 불면증과 불안증 때문에 잠조차 자지 못하는 엄마는 밤새 없는 체력으로 온 몸을 흔들어댔다. 그런 밤이면 온 몸과 마음이 모래처럼 스르르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것 같다. 새벽에 병원에서 운전대를 잡고 직장으로 향할 때면 까닭없이 눈물이 흘러 크게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동생들과 메시지로 일정을 조율했다. 일을 잠시 쉬는 자매와 재택근무를 하는 자매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간병사를 고용할 형편도 아닌 나 혼자였다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2주간의 간병 일정이 시작되었다. 해가 갈수록 의사가 던지는 '만약'의 메세지는 강도가 세졌고, 전에 없던 증상까지 보이는 통에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가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면 일을 하면서도 상대를 향해 농담도 하고 웃는 내가, 나인데도 너무나 낯설고 무정한 타인처럼 느껴지곤 한다.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식욕은 언제나처럼 빨리 돌아오진 않아서 병원밥의 9할은 내가 먹었지만 병원 매점의 간식을 찾는 횟수가 늘었고 양도 조금씩 늘어 기운을 찾고 있었다. 의사가 고지한 '고위험군 질환'과 '만약의 사태' 는 천운으로 피했다. 가장 어린 자매는 내가 없는 사이 의사에게서 상기한 어두운 말들을 듣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병실로 향하다 본 나는 엄마를 들여보내고 동생과 같이 우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동생을 데려다 주고 병실로 들어서 짐정리를 하고 한숨 돌릴 때 병실 내 다른 환자는 의사에게서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다' 는 고지를 듣고 있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당사자와 힘없이 한숨만 쉬는 보호자의 움직임을 커튼 너머로 느끼며 공연히 울었다. 

 처음 엄마가 아팠던 건 나를 가지면서. 임신성 폐결핵으로 3년을 약을 먹었다. 완치 이후로는 건강했다. 학부모 운동회 때 빠른 다리로 경품들을 휩쓸었다. 그러다 내가 중학생 때, 다른 질환을 앓으면서 첫 번째 난치성 질환이, 스물 즈음에 두 번째 난치성 질환이, 스물 세 살 때 세 번째 난치성/이식이 필요한 관리형 질환이 차례차례 엄마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 모든 질환이 다른 기관들에게 천천히 영향을 끼치면서 엄마의 건강은 때로 천천히 때로 강하게 나빠졌다 안정되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노화와 질병이 사람 가리겠냐만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의료인이다. 다양한 직업을 거쳐왔지만 노동의 시작도, 작년에 휴직할 때까지도 엄마는 의료인이다. 때로 병동의 스테이션을 보는 엄마의 눈빛은 많은 말을 담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건강 관리 잘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라고 내가 말했을 때 엄마가 얼마나 박수를 치며 웃었는지 모른다. 꼭 자기 마음이라며. 젊을 때 건강은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몰랐다며. 


젊을 때 건강은 그냥 따라오는 건 줄 알았어. 내 몸은 왜 이럴까 정말...

 배선실을 오가며 얼굴을 익힌 간병사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실 때마다 인사도 주고 받으며 배선실 더럽게 쓰는 보호자 욕도 같이 하고, 간병사 직업병에 좋은 제품들이나 팁 등을 나누며 다시 병원생활에 익숙하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24시간 환자의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필요한 처치를 돕고, 목욕, 식사와 운동, 미용은 물론 말상대까지 하는 간병사는 보통 체력과 직업적 관성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임을 매번 느낀다. 때론 부모가 두고 간 어린 갓난아기 환아 옆에서 눈물을 훔치고, 환자의 개인사까지 알게 되어 감정적인 동요까지 겪는데다 신체적으로도 큰 활력이 필요한 간병사라는 직업을 중, 노년 여성들이 대다수 도맡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한 동시에, 흔히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해 오던 일들의 직업적 연장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나 역시 간병사 시험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도 하였으니. 그 생각의 발로는 이런 가내 돌봄일 수도 있겠지. 

 입원시에는 대개, 병원에서의 오후 ~ 다음 날 새벽이 끝나면 곧장 병원에서 출근해 일을 하다가 집에 잠시 들러 집안일을 하고 오후 ~ 저녁께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패턴으로 생활한다. 자매들과 번갈아 쉬면서 쉬는 날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서로서로 먹을 수 있게끔 했다. 


그리고 집에 들를 때마다 아빠의 상태도 살펴야 한다.


 7~8년 정도 흔한 관리형 성인병 중 하나를 앓던 아빠는 4년여 전, 경도 인지장애 - 치매 판정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치매판정을 받은 아빠는 인지장애가 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퇴직했고 치매보호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잠시 참여했다가 현재는 집에서 생활중이다. 노동과 사회생활에 대한 인지와 욕구는 남은 상태에서 모든 사고와 움직임이 마음 먹은대로 움직이지 않는 괴리상태에서 힘들어하는 아빠는 약을 먹으며 매달 상태를 체크 중이다. 나갔다가 집을 찾아오거나 간단한 대화를 하고 용변을 가리고 식사를 혼자 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학습능력이 급격히 퇴화됐고 현관 번호키도 어렵게 누르고 스마트폰의 복잡한 기능은 물론 문자 메세지 사용마저 잊었으며, 내가 올해 초에 보낸 신년인사 카톡은 아직 읽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고바야시 유미코의 자전적 만화 "부모님이 쓰러졌다"에서 치매에 걸린 작가의 아버지가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아."라고 하는 부분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빠가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을 했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아.


 아빠의 식사와 위생을 주로 하여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남은 시간은 잠으로 채우는 빡빡한 스케줄이 2~3주 정도 이어졌다. 병원 생활 패턴도 다시 금방 몸에 익었고, 의료인이었던 엄마의 사정을 아는 병동 의료진들은 같이 처치를 해주어도 약간의 응원과 마음을 더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엄마의 상태는 차차 눈에 띄게 나아졌고, 혼자 걸을 체력은 아니었지만 휠체어에 오래 앉아서 눈에 힘을 주고 대화도 가능하고 퇴원이 가능할 정도로 대부분의 수치가 회복되었다. 

 퇴원 허락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하여 곧장 수속을 밟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퇴원 며칠 전에 주문한, 스테이션에 드릴 작은 간식선물을 들고 병실을 나서면서 병실 환자들께도 차례차례 인사를 드렸다. 그러다 인심이 후하고 다정하시고 많이 아프셨던 분 앞에 서자 엄마는 비틀대며 일어서서 손을 붙들고 울었다. 그 분도 웃으며 손을 흔드시다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말없이 훌쩍이는 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병원에서 만나지 맙시다. 

 여기서 만나지 말아요 우리.


 씩씩하고 몸이 쟀으며 어렸던 다른 보호자가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 무거운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저 밝고 씩씩한 어린 보호자도 그 나이대였던 예전의 나와 비슷한 마음의 그늘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안녕을 빌며 병실을 나섰다. 간호사 여러분들의 어딘지 더 따뜻한 전송을 받으며 나 역시 마음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의 건강을 빌었다.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병동 문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집에 와 짐을 풀고 약을 정리하고 새롭게 잡힌 외래진료의 일정을 체크하고 노곤해진 몸을 이불 위에 뉘였다. 대여섯이 주르륵 누워 시간마다 간호사의 바이탈 체크를 받고 식전후 약과 식사를 받고 필요한 처치를 받는 지루하고 고요하며 외롭고 건조한 생활이지만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에게서 아이와 함께 도망쳐 나와 거처 없이 떠돌다 응급실로 온 젊은 여성, 어쩜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고 위생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위생유지 방식을 가족들에게 교육하기까지 했던 간병사, 큰 사고를 몇 번이나 당해 대수술을 했음에도 간병사로 일하는 분, 물건을 던지는 남편에게 어떻게 대항했는지 흥미진진하게 말씀하시던 간병사, 아픈 엄마 옆에서 돌봐줄 가족 없이 간호사와 주변 간병사 품을 전전하던 어린 아기, 엄마와 손을 맞잡고 말없이 울던 환자, 여자 의사라고 무시당하자 처치하다 말고 "제가 의사예요!" 라며 토해내듯 언성을 높였던 의사, 간병할 젊은 식구나 간병사가 없어 휜 허리와 불편한 다리로 할머니를 간병하던 보호자 등등...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식사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입원 및 입원 후 모든 계획을 수다떨듯이 나누었던 기억까지. 

 어머니를 간병하던 간병사는 시어머니를 간병하다 현재는 다른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본인이 일하는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신 간병사들도 꽤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내 또래까지 전연령대의 여성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환자의 옆을 지키고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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