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장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이튿날보다 더 분주하고 바쁘게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고 도우미들께서 마련해 주신 아침밥을 두 그릇이나 싹싹 긁어 먹었다.
체력전 감정소모전의 마지막이자 고인과 물리적으로도 같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의 아침이다.
친척들도 전날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기분으로 아침 정리를 도와주셨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발인제를 지낸 후에 영구차와 함께 장지로 향하기 때문에 식장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의복 반납 및 자차를 찾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빈소 대여가 발인과 함께 종료되기 때문에 출발 전 빈소 대여료 및 물품 대여료, 기타 비용 정산까지 완벽히 마무리 된 후 영구차 버스에 같이 타고 장지로 가게 된다.
그렇기에 전 날 부의금 총 정산 및 확인이 필수다.
결혼식처럼 부의금에서 장례비용을 계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인하는 전날 저녁 부의금을 모두 맞춰두고 금액을 확인 한 후 금고에 넣어두어야 한다.
부의금 가방을 들고 괜히 왔다갔다 하다가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 우려가 없지는 않으니, 금고는 사무실에서 정산을 요청하는 가장 마지막에 열어서 돈을 꺼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 전에는 아침을 먹은 후 유족 개인짐을 정리해 차에 실어둔다.
빈소를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역할분담을 해, 빈소에서 사용한 물품 리스트를 들고 다니면서 재고 체크를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재고정리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동생의 덕을 보아, 슬리퍼와 음료수 1박스 등 작은 비품 재고 오류를 발견해 적은 비용이나마 절약할 수 있었다.
시리즈 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슬리퍼, 초, 화투, 휴지, 컵, 고인에게 바치는 조문용 술 등 정말 작은 물품 하나까지도 전부 돈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철저히 체크하는 것이 좋다. 물론 식장 측에서도 같이 다니면서 확인시켜 주지만 물건이 어질러져 있으면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슬리퍼 등 이미 개봉된 물품은 비용이 지불되어 가져가도 무방하니 챙기도록 하자.
얼추 짐이 챙겨지면 마지막 제사를 다같이 치른다. 간단한 제사 음식을 놓고 절을 올린다.
우린 이 때 현장 직원의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해 보통 영구차 앞에서 지내는 발인제를 제대로 못 했다. 이게 두고두고 할머니 가슴에 한이 될 뻔 했는데 아주 고마운 친구 덕에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장지 이야기에 적을 예정이다.
장례식장마다 다르겠지만 식사 도우미에 대한 비용은 현장에서 바로 도우미들께 지불했다. 너무 애 써주셨고 잘 해 주셔서 부끄러운 금액이지만 아주 조금 더 드렸다.
이불과 베개, 각종 자잘한 짐을 챙기고 나면 사무실에서 호출이 온다.
공포의 정산 타임
직원분의 권유에도 불구 유골함에만 조금 욕심을 냈고 수의나 관, 화단 등은 전부 최소금액에서 했고 빈소의 크기도 크지 않았는데다 손님이 엄청 많지도 않았음에도 턱하니 나타난 비용은 놀라웠다. 미리 설명을 들었음에도 수의, 관, 유골함, 염, 식대, 빈소, 의복, 작은 소품들, 화단,
저축이나 비상금이 전혀 없는 - 수술비를 위해 깨려던 보험 제외 - 우리집으로서는, 조금 속물되지만 순간 들러주신 수많은 손님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정산하는데 속이 벌벌 떨렸다.
그리고 순간 든 생각이, 아! 그냥 회사에 4대보험 해 달라 그럴걸!
4대 보험이 없는 나는 현금영수증을 받을 수 없었다...
사실 그렇다고 신용카드 세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공연히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슬픔 사이로 파고드는 세속적 인식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켜 몰려왔다.
엄마가 태어났을 땐 어땠을지 모르지만 떠날 때는 이런 비용을 치르며 가는구나.
손님이 없는 빈소는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하는 공연한 생각이 들었다.
정산이 마무리 되면 고인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이어지는 운구가 장례식장에서의 마지막 절차다.
사망진단서와 영구차 이용 계약서, 장지에서 받은 서류를 기사분께 드려야 하니 잘 챙겨두도록 하자.
장례식장에서 장지로 이동할 때는 왕복 영구 버스, 편도 영구버스, 리무진 서비스 선택지가 있었다.
보통은 왕복 영구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마음 같아서는 리무진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고인의 남편은 돈도 세상도 차차 잊어 정신이 흐려진 지 오래고 자식들은 초라했다.
정산까지 끝나면 영안실에서 호출이 온다.
벌써부터 차오르는 울음에 불안해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작은 안치실 문이 열리고 이틀 동안 추운 곳에 가만히 잠 자고 있던 엄마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