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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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1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영안실에서 엄마가 나왔다.

가만히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뛸 것 같아서 귀를 대 보았지만 숨이 넘어갔던 그 날처럼 가슴이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무엇을 알고 그랬는지, 혹은 엄마가 오랫동안 아파서라거나 할머니와 같이 살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너무 자주 생각하며 살아왔다. 너무나 자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공장에 영구히 불이 꺼지고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그리고 아주 자세히 했었다.

책에서 본 작은 세포와 세포 내 모든 소기관이, 작은 혈구들과 혈액의 흐름이 그 순간부터 모두 멈추는, 따뜻하게 빛나는 피부의 색과 눈동자의 빛이 한 순간에 꺼지고 타액도 점막도 활기를 잃고 모든 근육이 편안하게 영원히 멈추는 인간의 암전.

모든 작동이 조용히 아주 조용해지는 상상.

얼마나 자주 상상을 해 왔는지 엄마를 어루만지면서도 모든 것이 꺼져버린 작은 공장같은 엄마의 세포들을 상상했다.

너무나 열심히 버텨 온 신장과 반은 죽어버린 폐, 그리고 끝까지 버텨보려고 애썼을 심장.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비유나 떠올리는 내가 참 어이없고 질리기도 했다. 

언젠가 은희경 작가였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눈을 보며 단어를 고르는 자신의 직업적 관성을 스스로 개탄하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무슨 작가도 아니면서 이런 비유들이나 떠올렸던 것일까. 그냥 그만큼 죽음을 너무나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생각했던 탓인가 한다.



비가역

엄마의 모든 세포는 조용히 멈췄고 모든 신체의 빛이 꺼졌다.

그냥 편안히 잠든 얼굴과 죽음을 맞은 얼굴은 너무나 달랐다.

아주 가만히, 그 어떤 표정도 지어 본 적 없는 듯한 매끈하고 무표정한 얼굴. 처음부터 멈춰 있었던 것처럼 조각처럼 고정된 편안함.

그리고 왠지 느껴지는 평안과 평화.

나는 엄마가 똑바로 누워자는 모습이 내내 어색했다.

금방이라도 깊은 기침을 내뱉으며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휴지를 찾을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똑바로 누워있다니 얼마나 편할까.. 편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기침을 하지 않아서,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게 되어서, 갑자기 다리가 떨리지 않아서, 배가 아프지 않아서, 투석을 해야 할 시간에 맞춰 힘겹게 일어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9편에서도 살짝 썼지만 우린 고모들이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사진을 찍었다. 곧 있으면 가루가 되어 30년은 족히 유골함에 들어가게 될텐데 뭐가 대수겠느냐 싶었다. 고모들도 말없이 우릴 지켜봐 주었다.


응급실 소생실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고생 많았다고, 열심히 사느라 정말 수고 많았고 어떻게든 행복 찾느라 너무 애쓰고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꿈 꾼 것처럼 신나고 시원하게 달려서 부디 좋은 곳에 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영안실 직원들이 자리를 비켜주며 인사할 시간을 충분히 주긴 하지만 발인과 화장까지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 전날 할 말을 많이 생각해두도록 하자.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 그 때 가서 보여주도록 하고 가능한 한 많은 말을 하자. 

봉안당에서 유리벽 너머로 사진이나 휴대폰을 들이밀어도 성에 안 찰 때가 있다. 물성이 이렇게 중요하다. 


입관


인사가 끝나면 얼굴에 포를 덮고 입관을 한다. 유족은 다같이 관에 인사를 하고 영구차로 운구한다. 

혹시 모를 시신 뒤바뀜 등 방지를 위해 관에 유족이 싸인을 하는 등 사전조치가 있으니 몇 번이고 확인해도 좋다. 실제로 작년까지도 시신이 뒤바뀌어 화장된 사건이 있었고 해마다 종종 일어나는 사고다.


운구는 상주인 내가 직접 하고 싶었지만 직원의 만류로(여자라 혹시 관이 쏠릴 염려를 한 것인지, 내가 너무 울어서 몸을 못 가눠서인지) 남성 친척들이 운구를 도와주었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지만 영정사진은 막내동생이 들게 되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상주인 나와 앉아서 갔다. 


병원을 떠나는 것조차 큰 이별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참 좋았다. 맑고 청명한 가을 아침이었다.

기사님에게 부탁하면 종교에 따라 찬송이나 법경을 틀어주신다. 


화장터에 도착하면 미리 준비한 서류를 들고 기사님과 함께 사무실에서 화장비와 봉안당 대여료를 지불한다.

화장터는 시간 예약 순으로 시신이 화장되고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유족이 쉴 수 있는 방이 마련되어 있는 곳도 있으니 이 곳에서 기다리거나 화장하는 곳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기다려도 무방하다.


관이 가마에 들어간 후에는 커튼이 내려와 화장중이라는 메세지가 뜬다. 방송으로 안내가 나올 때까지 마련된 대기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족들과 함께하면 된다. 종교에 따라 어마어마한 조문행렬을 거느린 고인도 있다. 저렇게까지 시간을 내 주다니 어쩐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엄마는 형제나 친척 중에서도 발인에 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화장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길하며 할머니가 발인제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 게 걸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불심이 깊은 불교도지만 일본에서 자란 경험과 지긋한 연세 덕에 미신에도 일가견이 있다. 엄마 저승길에 문제가 생길까봐 내내 발을 동동거리셨다.


나는 매점에 들러 과일상이라도 사야겠다고 나섰고 전 날에도 발인날에도 이틀에 걸쳐 두 번이나 이른 시간에 먼 곳에서 발걸음 해 준 친구가 나를 제치고 과일상을 계산해 주었다.

엄마의 마지막 제삿상을 친구가 사 준 것이다. 

언제나 크고 작은 도움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내 친구는 이렇게 내 가족의 마지막까지 챙기며 화장장까지 따라와 마음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또 내가 가진 넘치는 복에 대해 잠시 떠올렸다. 



화장시간은 긴 듯 짧았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커튼 앞에 섰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라는 안내와 함께 커튼이 빠르게 올라갔고 작은 뼛가루가 되어 나온 엄마를 보며 할머니와 우리는 오열했다.

엄마 사주가 온통 불이라 큰일이라며 평생 걱정이었던 할머니는 얼마나 뜨거울꼬 얼마나 뜨겁겠노 걱정을 끊지 못했다.


화장 상태가 확인이 되면 분골에 들어간다. 

막자사발에 빻아 갈아주는 곳도 있지만 요새는 대개 기계로 분쇄한다.


이 때 유족은 분쇄 상태를 곱게/거칠게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입자를 곱게 갈면 나중에 봉안당 대여기간이 종료된 후의 처리가 편하지만 습기에 노출되면 분골이 상할 염려가 있다.

입자를 거칠게 갈면 사후 처리가 불편하지만 습기 등 보관 중 환경변화에는 강하다.


우리는 거칠게 갈기로 선택했고, 기계에 순간 갈아지는 뼛가루를 보니 섬짓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한지에 모인 뼛가루는 유골함에 잘 담겼고 유골함 입구는 이중 밀봉되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봉안당으로 향한다. 고인을 만나러 온 가족들, 우리처럼 처음 떠나보내는 가족들이 봉안당 여기저기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찬송이, 어딘가에서는 통곡이, 어딘가에서는 훌쩍임이, 또 어느 곳에서는 조용한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손녀의 재롱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가족, 편지를 읽는 가족.


봉안당에 납골되기 전, 유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준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불의 열기를 아직 지닌 유골함을 끌어안고 한 명 한 명 오열한다. 장례식의 모든 과정은 계속 새로운 마지막, 새로운 마지막 인사의 연속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일일지 모르지만, 과일상을 사 준 친구에게도 엄마에게 인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충분히 인사할 시간을 갖고 나면 유골함은 봉인되고 별도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 대여 기간 동안 위패를 넣기 위해 단 한 번만 열 수 있으며, 그 외에는 절대 열 수 없게끔 단단히 격벽이 고정된다.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세로로 쓰인 엄마 이름이 낯설다.

생몰년월일이 적힌 유골함에는 이미 이틀이나 전에 멈춘 엄마의 시간이 쓰여 있다.

아마 꼭 저만큼의 크기로 엄마는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봉안이 완료되면 장례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뒤에 무언가 작고 여린 것을 두고 도망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봉안당을 나서니 산 깊숙히 위치한 추모공원의 탁 트인 공동묘지 터 너머 완만한 산등성이가 빛나고 하늘은 맑고 눈부셨으며 새들이 지저귄다. 맑고 아름다운 날에 엄마가 떠났다. 


이불을 챙겨 차에 싣던 새벽이 떠오른다.

눈 감은 듯 아래로 둥근 초승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오는데 문득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이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여기저기 묻어있는 엄마와의 흔적이 생각난다. 엄마를 이 산등성이마다 남긴 채 돌아서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돌아와 기사님께 대금을 지급하고 의복을 반납하면 장례의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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