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새에 장례 방법, 수의, 봉안함 종류, 봉안당 위치까지 전부 결정되었다.
말이 하룻밤이지 사실 10시간 전만 해도 엄마는 살아 있었다.
서울에 가서 수술 전 검사 받을 때 검사하는 사람한테 미안할 것 같다며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던 배에 앉은 각질이라도 잠깐 밀어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에 지금 체력으론 씻을 수 없으니 수술하고 씻겨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상을 치르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집에 들러 이불이며 빈소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길 때 엄마가 누웠던 이부자리, 입었던 옷, 앉았던 자리를 보는 게 가장 괴로웠다.
10시간 만에 나는 급하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을 감은 얼굴에 퍼붓고 최선의 이별을 고르고 또 골라야 했다.
이제 오전 10시 경이면 근처에 사는 고인 및 유족의 손님들이 하나 둘 빈소를 방문하기 시작한다.
아기를 돌보느라 힘들텐데도 비타민 음료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달려와 주었던 친구, 아기를 안고 빈소 밖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다려주던 친구, 말없이 가방을 팽개치고 들어와 안아주며 울어줬던 친구, 동문들에게 연락을 돌려주겠노라며 저녁에 반드시 가겠다는 다짐을 해 주던 멀리 사는 친구, 연락한 지 오래라 차마 부고를 알리지 못했음에도 부고를 받은 친구와 같이 동행해 위로를 건넨 친구,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먼 길을 차를 달려 30분도 앉지 못하고 갔던 친구 등 많은 얼굴이 아직도 어제 본 듯이 어른거리고는 한다.
경조사에는 들르기만 하고 가 주더라도,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전해주어도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부고 문자를 전해야 할지 막막해 할 때, 부고를 알리고 나서 몰려오는 연락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괴로워 할 때 친구들은 나만큼이나 놀라고 당황해서 어떤 얼굴로 나를 보러 와야 할 지 무거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와 주어서 자신의 놀람이나 당황보다는 나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느라 진을 뺐다.
모부가 떠나기에 크게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렀다.
그렇기에 내가 친구들에게서 당겨 받은 듯한 슬픔이 있었다.
'가실 때가 되었지...' 라며 의연하게 받아들이기에 엄마는 젊었고, 오랜 기간 아파서 누리지 못한 것들이 있었으며 내 또래는 아직 엄마와 즐겁게 친구처럼 지낼 시기이다.
엄마의 삶을 살피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하고 깊은 대화도 가능한 좋은 때에 서로를 잃고 말았다는 아쉬움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비통함.
그리고 엄마의 오랜 투병 기간을 아는 친구들이기에 더욱 슬퍼해 주었다. 나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엄마를 잃었기에 더 슬퍼해 주는 친구들의 눈물에서 위로를 받았다.
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내가 받은 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상주는 바쁘다!
상주는 무척 바쁘다.
밀려드는 손님을 입구에서 맞고, 잠시 서로 슬퍼한 뒤 빈소로 안내해 고인에게 인사를 부탁드리고 방명록과 부의금을 받고, 식사 여부를 물은 뒤 자리를 안내 해 음식이 차려지면 얘기를 주고 받는다. 그 와중에도 손님은 계속 온다. 그러다 시간이 촉박한 손님은 일어나고 가급적이면 장례식장 입구까지 배웅을 나간다(상주는 빈소 떠나지 말라며 보통 빈소 입구에서 인사를 마치기도 한다.).
손님은 가족 중 누구 손님이랄 것 없이 오고 갈 때 상주는 무조건 동행해 인사를 해야 한다. 슬픈 날 바쁘디 바쁜 한국인이 시간을 쪼개 거리와 시간 상관 않고 어디서든 달려와 주었음을 생각하면 절로 그렇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화환이 오면 확인 후 위치를 정하고 사인을 한다. 나중에 인사를 전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주방에서는 음식이 무엇이 모자란지, 얼마나 더 주문할 지 묻는다. 올 손님을 어느 정도 예상해 적절히 음식 주문량을 조절해 영수증 내용을 확인한 뒤 사인을 하고 영수증을 전부 모아둔다. 손이 없어 바쁘면 상을 치운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문제로 콜이 오기도 하면 바삐 가야 한다. 유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필요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한층 더 바빠진다.
앉을만 하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체력이 실시간으로 거덜난다!
잠시 빈소에 앉으면 친척들에게 또 이런저런 얘길 들어야 하고 그마저도 없이 멍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 때는 고인에 대한 슬픔이 차오르고 또 울게 될 수도 있다!
장례는 체력전이다!! 슬픔 감정 소모가 크고 무척 바쁜데 바쁘지 않으면 울게 되기 때문에 체력이 엄청나게 깎인다.
산 자만 밥을 먹는 게 아니다. 고인에게 차려지는 간단한 제삿상이 삼일장 내내 너댓 번 정도 바뀐다. 아침이 되면 새로운 상이 차려지고 삼일 째에는 발인제라고 제삿상이 간소하게 차려진다.(우린 이것을 안내받지 못해 놓치고 말았다.)
그 사이사이 유족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친인처과 친구들이 사다주는 간식과 라면 등 부식을 꼭 챙겨먹도록 하자. 슬퍼도 먹고 슬퍼하도록 하자.
라면을 좋아했던 엄마에게도 컵라면 하나를 놓아드렸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이 있다면 아낌없이 올려놓도록 하자.
자정이 가까우면 빈소를 닫아 걸고 당일 부의금을 유족 서넛이 앉아 정산한다.
환자가 있다면 약 챙기기를 잊지 말자.
땀과 눈물에 몸이 찝찝하다면 씻도록 하자.
유족 수면실과 휴게공간에서 둥둥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잠이 든다.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잠도 자도록 하자.
부의금 정산하는 동안 음식 주문 등 영수증도 잘 챙겨야 한다.
마지막 날 한꺼번에 정산에 들어간다.
첫째 날이 정신없이 후루룩 지나고, 손님이 밀려드는 둘째 날이 밝는다.
엄마도 당황한 것일까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