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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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병자 옆 딸들에게> 그 후의 이야기.

(환자가 돌아가시기까지의 비교적 자세한 상황이 적혀 있으니 힘드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장합니다. 시간 흐름에 따른 당시의 상황과 번개처럼 스쳐 돌아다니던 심상들을 적었습니다.)


2019년 가을 어느 날들.


엄마의 상태가 위중해졌다. 

가뜩이나 폐가 나빠 항상 가래 낀 가쁜 숨소리를 내던 엄마는 심하게 숨이 차고 더욱 말라가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급하게 갔더니 인공판막 수술을 이제 하자고, 더 미루지 말자고 했다.  다만, 워낙 기저질환이 많은 몸이니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시게끔 소견서를 써 주마고.  그 이야기를 듣는 그때도 뜬금없이 "이러다(판막이 좁아져서) 돌아가시면 아~이래서 돌아가셨구나!" 하고 산뜻하게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말하던 입원 당시 당직 교수 얼굴이 왠지 자꾸만 떠올랐다. 

엄마는 '숨이라도 덜 차게 해 주면 안 되겠느냐' 라는 말에 '이 이상 더 약을 쓰면 정말 돌아가실 수도 있다' 라고 했다. 

엄마는 단 1초도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새없이 움직이며 숨 차 했다. 불안한 마음에 의사에게 지금 당장 서울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럴 건 아니고 한 달 안에 예약 잡아서 수술 하고 오면 저한테 진료 받으면서 와파린(혈전용해제)만 꾸준히 드시자." 고 했다.

엄마는 외래를 마치고 나오면서 가쁜 숨으로 내게 물었다.
"의사가 검사 수치 얘기 안 했지? 나 숨 가쁜 거 보고 아무 말도 안 했지?"


서울 병원은 생각보다 일찍 잡혔다.  예약 이후 불안과 고통의 1~2주가 시작됐다. 모든 병이 그렇듯 엄마는 밤에 더욱 힘들어 했고. 이젠 기침소리보다도 숨이 차 헐떡이는 소리가 온 방을 채웠다. 나는 일을 하다가도 눈물을 몰래 훔쳐야 했고, 혹시 모를 불안과 싸우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날 오전, 일 하면서 좀 괜찮으냐며 이 일도 지나면 다 웃으면서 추억하게 될 것이다 힘을 내자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이제 많이 편하다며 항상 고맙다는 답변을 보냈다. 

점심 저녁은 거의 드시질 못했다. 좋아하던 만두도 내일 먹겠다며 물에 말은 밥을 몇 술 뜨고 상을 물렸다.

내가 급하게 노트북을 켜고 거실에 앉자 엄마는 내 하얀색 노트북을 보더니 "노트북이 하-얀 게 이쁘다." 며 웃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때 순간 '아 나는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는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왠지> 로 흐르고 남고 맺히고 그랬다. 

동생도 불안했는지 자꾸 재밌는 얘기를 짜내고 꺼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억지로라도 웃었다. 


그러다 괜히 더 불안한 마음에 같은 환자 정보라도 얻자며 마침 해당 질환과 수술을 다룬 의료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근데 너무나 이상했다. "너무나 응급인 상황" 이라는 다큐 속 모든 환자들 그 누구도 엄마만큼 가쁘게 숨 차 하고 있지 않았다. 비교적 평온해 보이는 상태에서 평소와 달리 숨이 조금 가빠 병원에 갔더니 무척 응급인 그런 상태였다. 엄마와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그만 볼까? 하는 내 말에 엄마는 일단 그냥 두라고 했다. 아마 숨이 가빠 제 정신으로 뭔가를 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뭔가 같은 상황인데도 너무나 극명하게 다른 다큐 속 환자들과 엄마의 상태를 보며 더 불안에 휩싸였다. 아마 이 긴 시간 동안 엄마의 판막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채 피가 미친듯이 역류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날은 서울 병원에 가기 이틀 전 밤이었다. 

이미 직장에 휴가도 모두 받아 둔 상태였다. 

엄마는 피곤하니 누우러 가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부축해 몸을 옮겨주고 이부자리를 봐 드렸다. 

일어나던 엄마에게 "엄마, 눈꺼플이 왜 이렇게 하얘?" 라고 했다. 엄마는 응? 하고 말없이 웃었다.

나도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5분 뒤 -.


방에서 갑자기 아!아!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먼저 뛰어들어갔고 내가 따라갔다. 엄마가 앉은 자리에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고 있었다. 구급차를 보내주겠다며 일단 상태를 보라는 말을 듣는 동시에 엄마는 악 - 하더니 뒤로 누워버렸다. 

무릎 위에서 엄마는 눈이 풀린 채로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어서 구급차를 보내달라며 전화를 내던졌고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며 온 식구를 큰 소리로 깨웠다.

10분여 정도 미친듯이 눌렀다. 이미 두 세 번 눌렀을 때 엄마 흉곽이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중간중간 숨을 두어 번 토해냈다.

구급대원들이 와 급하게 기도삽관을 하고 제세동기를 구동했다. 삽관을 하던 구급대원이 "어금니 없습니다."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고양이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고, 나는 주보호자로 구급차를 타고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 남은 식구들은 20여분 뒤 병원으로 따라왔다.

가는 내내 구급대원의 위로를 받으며 미친사람처럼 소리질렀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민망한 구석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드러누워 등으로 기고 두 손 두 발로 기고 맨발로 허우적대고 빌고 소리지르고 나 때문에 아마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많이 신경쓰이고 심란했을 것이다. 눈 앞의 모든 그림이 울렁대는데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안쓰럽게 쳐다보던 소위 여사님들과 응급실에 드나들 때마다 보아서 얼굴이 익은 간호사들이 보였다. 

아마 40여분 정도 지났을 것이다. 커튼 아래로 훔쳐 본 소생실 안에서 의료진은 쉴새없이 최선을 다 해 주셨다. 언젠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당직의가 나와 이제 더 이상 해 드릴 게 없고 가능성이 없으니 그만 하자고 했다. 나는 조금만 더 해주시면 안되냐고 허무한 말을 했다.

당직의는 "여기서 뭘 더 하라는 거예요. 가서 환자 보세요." 라고 강하게 말했다. 나는 두 번 정도만 그렇게 부탁했는데 혼내는 듯이 던졌던 말이 "이렇게 돌아가셨구나~"라던 교수의 말만큼이나 아직도 사무친다. 

가서 확인했다. 다 확인했고, 아마도 나와 의사들이 번갈아 냈을 가슴의 멍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과 손발톱은 하얗고 폐질환 때문에 오십 넘어서는 똑바로 누워 자 본 적이 없어 척추까지 휘었던 엄마는 천장을 보고 똑바로 말없이 누워있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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