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가까워왔다.
할머니가 부산에서 출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기차로 우리가 사는 곳까지 도착하는 시간이었다.
근처에 사는 손님이 하나 둘 올 시간이었고 나는 친구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연신 받아가며 할머니에게 갈 준비를 했다.
빈소의 일은 동생에게 잠깐 맡겨두었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내내 막내동생과 울었다.
운전을 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출근길에 섞여 울면서 하는 운전은 유독 힘들었다.
엄마는 살이 많이 빠져 엉덩이 뼈가 많이 드러난 상태였다. 차 문을 열면 아직도 보조석에 뼈가 눌러놓은 자국이 그대로 있다.
기차역에 도착하고서도 동생은 계속 할머니를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출근과 퇴근으로 바쁜 평일 기차역에서 우린 외롭게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걱정돼 플랫폼까지 올라가 기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할머니가 말 한 차편의 기차가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기차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하던 찰나, 출발하기 위해 닫혔던 기차의 문이 다시 열리면서 승무원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내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오시느라 이런저런 짐을 짊어진 할머니가 우리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가 눈이 어두운 게 다행인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부은 눈도, 어두운 옷도, 눌러 쓴 모자도 할머니에겐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수술이기에 그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했느냐고 물었다. 마침, 네 엄마 주려고 끓인 죽을 식히느라 늦게 자서 전화를 바로 받았다며, 너희가 나한테 이런 일로 뭘 부탁한다고 전화를 잘 안 하는데 어쨌든 급하게 약이며 옷이며 바리바리 챙겨왔다면서. 무슨 일이건, 그 먼 길을 힘겹게 오면서도 딸과 손주들 있는 곳으로 왔다는 기쁨에 살짝 들떠있는 목소리가 너무나 슬펐다.
나는 할머니에게 "수술은 잘 끝났고, 엄마는 지금 엄청 편하게 잘 쉬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 내가 어떤 의도와 마음으로 이 문장을 구상해 말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사실을 전하고 싶었고 엄마가 편하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기차표를 어떻게 끊었고, 어떤 도움을 받아 오게 되었는지. 하마터면 이 역을 지나쳐 내릴 뻔 했다가 어떻게 간신히 내리게 되었는지 신나게 설명했다. 이 길로는 오랜만에 와 본다며(할머니는 우릴 15년 가까이 길러주다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이 길이 참 예쁘다는 둥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점점 병원에 가까워져왔다.
내 손님이 왔다는 전화가 급히 울려 출근길에 밀리지 않고자 대학교 내부를 통과해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참 신기한 일인데 요금소를 빠져나와 병원으로 진입하려던 때에 아주 찰나의 순간 비가 잠깐 내렸다. 학생들 몇몇이 우산을 쓰다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병원에 진입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는 가셨다. 주차장에 진입하는 순간 이미 동생과 나는 반쯤 오열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입구에 아이를 안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주차를 하고 할머니에게 울먹이며 '할매 미안하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고 했다. 할머니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왔는지 뭐냐고 엄마 수술이 컸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했다. 나는 '할머니, 엄마 갔다.' 라고 했다. '아...? 엄마 갔다고? 갔나!!' 하고 할머니는 '아이고...아아아..!'
할머니의 놀란 얼굴이 비통으로 차오르며 옆으로 무너졌다. 백미러로 할머니의 모든 표정이 보였다. 엄마가 쓰러지고 장례를 끝내고 그 이후까지도 그 모든 순간 중에도 극도로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 나는 운전대를 붙들고 울다가 내려 할머니의 벨트를 풀어주며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거짓말 해서 미안하다고 빌었다. 동생에게 할머니 부축을 부탁하고 나는 일단 입구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 달려갔다. 친구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며 서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대신하듯 울어주었다. 나는 친구의 아기와 친구 셋을 안고 입구에서 잠시 울었다. 내가 엄마 가슴뼈를 다 부숴놨다고 말하면서.
아이가 있는 친구는 입구에서 잠시 나를 보고 가려고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다시 오겠노라고 내게 약속을 맡기듯이 한 후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빈소로 향했다.
할머니가 빈소에 들어서서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럴 줄은 몰랐다며 꿈에도 이런 소식은 생각도 못했다며 계속 울기만 하셨다.
독 씻고 단지 씻고 달랑 하나뿐인 딸
할머니는 상중에 이 말을 계속 읊조렸다. 귀한 사람, 귀한 자식 하나를 일컬을 때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 할머니에겐 길고 모진 세월 딸이라곤 엄마 하나 뿐이었다. 난산으로 힘겹게 나은 딸. 아들아들 노래를 불러가며 지독히도 바람을 피던 남편을 떠나 홀로 하숙을 쳐 밀가루로 치댄 술빵 비슷한 음식을 배고프게 먹고, 하숙생들의 행패를 견뎌가며 옷을 지어 입히고 가르쳐 훌륭히 간호사로 키워낸 소중한 딸. 멀리 해외로 파견 간호사로 보내고자 하던 꿈도 사그라지고 결혼이나 해서 잘 사는 모습이나 보고 싶었는데 혼후 아이를 셋이나 낳는 동안 쉼없이 모진 병에만 걸려 아프기만 하다가 이제 애들 좀 크고 재미있게 살려나 했더니 대뜸 젊은 나이에 치매 걸린 남편 옆에서, 모자라고 늦된 자식들 밑에서 고통받다가 속절없이 떠나버린 가여운 딸.
'독 씻고 단지 씻고 귀한 외동딸' 이 남들 다 보는 재미 하나 못 보고 떠나버렸다는 원통함. 힘들게 사는 동안 지어 입힌 옷에도 투정 한 번 부린 적 없던 말 없고 착한 딸이 병 하나 털어내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버렸다는 상실감. 조부의 다른 자식들은 잘만 사는데 당신의 딸은 평범하고 작은 행복조차 친정 엄마와 함께 마음 놓고 제대로 누려 본 적 없다는 억울함. 가여운 딸을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영원하게 사무치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그리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무력함.
나는 무슨 말로도 할머니를 위로할 수 없었다.
천기저귀를 빨아가며 우리 자매를 키워 준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냥 엄마와 다를 게 없다. 나는 상을 치르는 내내 할머니에게 의지했다. 언제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