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2

핀치 타래장례이별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나와 식구들은 믿을 수 없이, 갑자기 벼락이 치듯,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얻어맞은 듯이, 강도를 당한 듯이 두어 시간만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상황에 눈물이 났다가 기가 막혔다가 비명을 질렀다가 빨리  수긍하려다가 안타까워하다가 끝에는 끝없이 억울해했다.  

너무너무나 억울했다. 엄마의 인생이. 이 상황이. 모두 너무너무나 억울해서 소생실 안을 미친듯이 휘젓고 다녔다.  

40여분을 소생에 힘쓴 모든 의료진이 지친 기색으로 주변 정리를 한 뒤 자리를 비켜줬고, 마지막 남은 의사가 맥박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앰부를 짜 엄마의 폐에 숨을 불어넣어주고 계셨다. 우린 삼십분 여를 이 말 저 말 중얼대다 울다 하며 재빨리 이승에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으로 듣고 갈 모든 말들을 뱉어대기 시작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도 마구 찍었다. (우린 염을 할 때도 사진을 찍었다.) 심장의 전기신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삼십여 분 그 긴 시간동안 의사는 말없이 앰부를 짜 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팔이 아팠을까 싶다.  

급하게 죽어버린 엄마도 아마 짧은 순간 수많은 순간과 생각과 기억과 추억이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듯 스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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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숨이 차기 전 신장내과에서 마지막으로 진료를 봤을 때 피검사의 모든 수치가 이제까지 외래 본 중에 가장 좋게 나와 기분이 좋다며  삼계탕을 사 준 적이 있었다.  헤모글로빈, 백혈구, 인, 칼륨 등 모든 수치가 투석을 시작한 이래 몇 년 동안 모든 검사를 통틀어 가장 수치가 좋았던 그 날 저녁, 우리는 축하하듯이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설리의 부고를 전해듣고 밥을 먹다 울었다.    

 그 전, 가을 초입 쯤 항상 쫓기고 무서운 꿈만 꾼다던 엄마가 어느 날

 "꿈에서 내가 너무 신나고 시원하게 달리는 거야. 그래서 아 맞아 내가 이렇게 시원하게 달렸었지. 이렇게 달릴 수 있구나 하고 진짜 신나게 뛰었어. 아! 간만에 기분 좋은 꿈 꿨다. 신기했어." 

 라며 꿈 얘기를 해 줬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좋은 꿈을 꿨냐며, 이제 좋은 일만 있으려나 보다고 잘 됐다고 웃었다. 심장도 신장이식도, 가능하다면 폐절제까지도 수술과 재활만 잘 되면야 언젠가 자반증도 나아 정말 신나게 달릴 수도 있지 않겠냐고. 엄마는 항상 최악은 피해가는 골골백세의 전형 아니냐며 웃었었다.   

 어느 날은, 운전연습을 하자며 교외로 드라이브를 간 적이 있다. 그 곳에 앉은 점쟁이가 엄마에게 내년에는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이니 근심도 시름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두고 마음 편하게 즐겁게 지내라고 했다. 내년에는 아픈 것은 낫고 곪은 상처는 도려내는 해가 될 것이라고. 금전운도 잘 풀릴 것이라고. 내년에는 많은 게 좋아지니까 올해까지만 고생하라고. 

 엄마가 떠나기 20여일 전, 나는 초보 주제에 엄마에게 내가 운전할 테니 할머니가 있는 부산에 다녀오지 않겠냐고 느닷없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말릴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흔쾌히 그래볼래? 라고 했다. 첩첩 산복도로가 있는 부산, 할머니 집은 오르막길에서 급하게 꺾인 좁은 골목길에 주차장까지 열악한 빌라인데도. 정말 나는 초보의 용감함으로 엄마와 즐겁게 부산을 다녀왔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할머니가 당신의 딸을 본 건 이게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울면서 할머니에게 "엄마, 효도할테니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말하곤 했었다. 마지막이었던 그 날, 비 오는 골목을 우산을 쓰고서 서로 끌어안고 걸어올라가는 엄마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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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부를 짜던 의사에게 "청력이 마지막까지 남는다는데 맞나요." 라고 물었고 의사는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답했다.  

엄마의 아직 부드럽고 따뜻한 얼굴에 뽀뽀를 하며 으스러지고 멍이 든, 소리없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쉼없이 했다. 전기신호는 점점 미약해졌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러면서도 엄마가 당황해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봐

"엄마 꿈 꾼것처럼 달려서 가. 날아서 가. 실컷 달려서 가."

라고 말하고 쳐다본 엄마의 눈 안쪽으로는 작은 눈물이 고였고 심장의 전기 신호는 완전히 멎어 낮게 일직선을 그렸다.

정말 끝났다. 가 버렸다. 없어져 버렸다.

의사는 조용히 앰부를 뗐고,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뒤 뒷정리를 더 해주었다. 시신-이렇게 부르는 것조차 당시에는 소름끼치게 힘들었다.-을 조금 더 정리하고 장례절차를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어 급하게 소생실로 다시 들어갔다. 

"복막투석 도관 잘라서 저 주세요."

의료진은 도관을 잘라 깨끗한 봉투에 담아 내게 주었다.

신장 이식 후 뺄 줄 알았던 도관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끄트머리만 자르게 되었고 도관의 끝부분은 뱃 속으로 조금 밀려넣어졌고, 봉합되었다.

엄마 몸에 들어있고 닿아있던 도관은 아직 따뜻했다.

나는 시신이 정리되는 동안 상사에게 전화를 해 사정이 이러하니 당분간 출근이 힘들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새벽 세 시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통 고령의 노인에게 직계비속의 부고는 알리지 않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구순의 나이에도 워낙 영민하고 똑똑하신 분이고 엄마랑도 지속적으로 내왕하고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법이 문제였는데 하는 수 없이 엄마가 큰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좀 와주셔서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원래도 잠이 늦는 편인데 그 날은 공교롭게도 입맛이 부쩍 떨어진 엄마에게 주겠다며 갖은 채소와 새우를 곱게 갈아 넣은 죽을 한 솥 만들어 식히느라 그 새벽까지 깨어 계셨다고 했다. 그걸 들은  나는 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침착하게 삼키며 밝은 목소리로 할머니 너무 미안한데 엄마가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아침 첫 기차로 꼭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어리둥절 해 했지만(평소 아무리 급한 일이어도 혼자 오가게 하지도 않거니와 다른 수술 때도 알린 적이 없다.)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눈도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부산역까지 가서 영어로 된 좌석을 제대로 안내받아 우리 지역 기차역까지 제대로 오실 수 있을까 벌써 걱정이 되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하나뿐인 딸과 마지막으로 인사 할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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