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백만 가지도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잘 잡히지도 않고, 승차거부를 당할 때도 있으며, 빠른 길 대신 아는 길을 고집하는 데다가 종종 불친절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일부' 택시기사를 떠올리면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우버 같은 서비스가 한국에도 있기를 바랐다. 대신 한국에는 모바일 카풀 앱이 있다. 그동안은 이를 우버와 다르지 않은 서비스로 생각해 왔다. 일종의 대체제인 셈이다. 그래서 올해만 해도 모바일 카풀 앱을 100번도 넘게 이용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카풀 앱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최근 내가 겪은 일이다. 아마 카풀 앱을 이용하는 여성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일 것이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지난 봄, 회사에 야근이 많아 카풀앱을 자주 사용했다. 카풀은 서로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왕이면 최적의 동선을 가진, 시간이 잘 맞는 사람을 찾으면 이동하기가 더욱 용이하다. 나는 카풀앱을 사용하면서 말도 잘 통하고 동선도 비슷한 두 명의 드라이버를 알게 됐다. 그 둘은 제각각 나에게, 퇴근길에 미리 연락을 주고받고 시간이 맞으면 카풀앱으로 서로 연결해서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두 명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두 명과 연락을 끊었다.
한 명은 몇 주 지나지 않아 "이제 카풀은 안 한다" 면서 연락이 끊겼던 경우였다.
다른 한 명은 내가 연락을 끊었다. 그가 "집 근처에서 술 한잔 하자"고 연락해왔기 때문이다.
안심번호는 무용지물
이미 한국의 여러 스타트업에서 업소나 배달원이 고객의 신상정보를 찾아내어 위협을 하거나 추근덕거리는 사고가 있었다. 공유차량 서비스 역시 전 세계에서 승객 안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 흔히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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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앱은 승차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승객과 드라이버 사이에 전화번호를 주고받아야만 한다. 내가 사용했던 카풀앱의 경우 실제 전화번호가 서로에게 노출되지 않는 안심번호 서비스를 갖추고 있었다. 안심번호는 실제 번호가 노출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면 번호 자체가 폐기되기 때문에 플랫폼 서비스에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도입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승객인 내가 직접 드라이버에게 전화번호를 건네지 않는 한, 드라이버는 이후 사적으로 연락을 해오거나 카카오톡 등을 나에게 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용했던 카풀앱은 달랐다. 매칭된 드라이버가 탑승지에서 나를 태우기 위해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안심번호가 정상적으로 표시되었지만, 이후 서로를 찾지 못해 다시 한번 안심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실제 번호가 유출되곤 했다. 네비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거나 서로 위치가 엇갈릴 경우 승객과 드라이버는 서로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전화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니 실제 전화번호가 서로에게 유출되는 일도 잦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머나! 내 정보가 유출되었네! 카풀 승차를 중단하고 택시를 타야지! "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정보가 유출된 와중에도 나는 나를 찾아 근처를 뱅뱅 도는 드라이버를 기어이 만나 빠르게 차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해야 했다. 전화번호 정도는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12월이 오기 전까지는.
전에 카풀했던 사람입니다!
기억하시죠?
나도, 내 주변 여성 동료들도, 고객으로서 카풀 서비스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이동수단,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여기지 않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목적지로 가는 것 외에 더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남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래 카톡은 내가 느닷없이 12월에 받았던 카카오톡 메시지의 일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카풀앱을 가장 많이 사용했던 시기는 봄이었다. 가을부터는 카풀 앱을 거의 이용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메시지를 받은건 12월이었다. 나에게 위협을 가한 건 저 드라이버이건만, 나는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자기검열을 시작하며 곰곰이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우선 동선이 비슷하다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던 두 명이 떠올랐다. 그래서 정중하게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해보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자기 소개를 하지 않았다. 안심번호도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용의자는 내가 만났던 100여명의 카풀 드라이버로 늘어난다. 이 메신저 계정에는 이름은 커녕 프로필 사진도 없었고, 간단한 정보조차 드러나 있지 않았다. 계정 너머의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내용이라곤 저 메시지 그대로 '전에 카풀 했던 사람'이 전부이다.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카풀 앱을 통해 나의 이동 동선도 알고 있고, 내 집 주소도 알고있다. 나의 인상착의도, 전화번호도, 신상정보도 알고 있다.
나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이 메시지를 받은 순간,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안전해질 수 있는 걸까?
드라이버 묻는 말에 친절히 답하세요
적어도 40대는 넘어 보이는 남자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차량을 카풀 앱을 통해 탄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던지는 쓸데없는 사적인 질문에 짜증이 났지만 운행 중인 차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대강 대답했었다.
"가시는 곳은 집인가요?"
"무슨 일 하세요?"
"회사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카풀을 이용하면서 간단한 대화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 이야기나 관심사 이야기 정도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적인 질문까지 솔직하게 답하면서 내 개인정보를 40대 아저씨에게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매번 거짓말을 하기도 지치는 일이다. 가뜩이나 피곤한 채로 탄 카풀인데 말이다.
몇일 뒤 다시 이 카풀 앱을 이용했더니 새 드라이버가 나에게 물었다.
남 드라이버 : "별점이 4.3점이시네요?"
나 : "네? 4.3이요? 저 4.9였는데?"
남 드라이버 : "떨어지셨나봐요.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4.5 이하면 잘 안 태우려고 해서 사실 태워드릴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나 : "아 그래요?"
40대가 넘어보이는 그 남자 드라이버가 한 짓이 분명했다. 불쾌한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했다고 나의 별점을 떨어트렸던 것이다. 분명 4.9로 기억하고 있었던 나의 별점을 다시 확인해보니 정말 4.3으로 내려가 있었다.
남 드라이버 : "앞으로는 드라이버가 말 걸면 친절하게 응하세요. 너무 피곤하시면 차라리 피곤하다고 솔직하게 말하시는게 좋아요. 그래야 별점이 올라가요. 지금 꿀팁 드리는거에요."
"네. 정말 그래야겠네요." 하고 고분고분 대답해야 했다. 운행중인 차 안이었으니까. 그리고 내 별점을 지켜야 했으니까. 나는 내일도 카풀 앱을 타고 외근을 나가야 하니까. 잡히지도 않는 택시 대신 카풀 앱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잡기 힘들어지면 곤란해진다. 카풀 차량을 잘 잡으려면 남자 드라이버들에게 친절을 배풀어야 한다니, 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시즌 3의 '추락(Nosedive)' 편이다. 주인공의 사회적 별점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친절하게 웃으며 대해주지 않으면 별점이 뚝뚝 깎여나간다. 내가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 듯 했다.
취객이었거나 행패를 부리는 승객에 대해서는 평판을 기록해 피할 수 있다면 좋기야 할 것이다. 아마 그게 승객 별점의 도입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플랫폼의 별점은 달랐다. 이건 드라이버의 승객 평가 별점이다. 그리고 그 카풀 앱 드라이버들의 90%는 남성들이다. 안전한 이동 외에 남성 드라이버들이 카풀을 하는 진짜 이유, 그 '다른 요소'도 별점에 반영되는 것이다. 어째서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카풀 드라이버에게까지 스타일이나 친절함을 평가 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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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싶으면 옵션 잘 고르세요
어느 날인가 내 남자 동료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남자 드라이버에게 매칭 후 10번 정도 바로 취소를 당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카풀 하는 남자들은 좋은 차를 끌고 나와 여자만 골라 태우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카풀 거부를 자주 당한다고 억울해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의 하소연은 카풀 서비스의 본질을 꿰뚫는 이야기였다.
드라이버는 나의 대답에 신이 난 듯 '꿀팁'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 드라이버 : "드라이버들 원래 성별 골라서 태우는 거 아시죠? 남자 승객이면 태우지도 않아요."
어떤 카풀 앱에는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출신 학교나 직업은 무엇인지 등 나에 대해 더 적어내면 매칭률이 높아지니 입력하라고 권하고 있다. 드라이버에게 나의 정보를 더 제공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부분의 카풀 앱들은 아래와 같이 옵션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카풀을 이용하면서 운전자와 함께 앞자리에 앉을 것인지, 아니면 뒷자리에 앉을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조용히 가고 싶다는 옵션도 있고, 반대로 운전자와 즐겁게 대화하고 싶다는 옵션도 있다. 어떤 옵션을 고르느냐에 따라서 그에 맞는 드라이버가 매칭되는 시스템이다.
이런 옵션에 대해서도 그 드라이버는 나에게 '충고'라며 한마디 더 보탰다.
남 드라이버 : "뒤에 앉으면 택시기사 취급하는 것 같잖아요. 드라이버 옆자리에 앉으시는 게 좋아요.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요."
그러니까 그의 충고(?)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남성 드라이버들이
-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 대화를 할 수 있는
- 여성 승객
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옵션을 채우지 않으면 나는 카풀 차를 얻어타기 어려운 셈이다. 심지어 옵션 설정에서 "조용히 가고 싶다"고 선택했음에도 사적인 질문에 시달렸는데, 여기에 내가 얼마나 친절하게, 애교있게 답하느냐, 나아가 남성 드라이버의 취향에 맞는 스타일이나 외모인지에 따라 별점까지 매겨진다. 대체 이 카풀 앱의 별점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별점 시스템일까? 저 옵션은 승객을 위한 것일까? 남성 드라이버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둘 중에 어느 쪽이 카풀 앱 사업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사업자는 판단했을까?
내가 그동안 타 왔던 카풀 차량이 그저 운송수단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의 공간이었는지 순간 아찔해졌다.
그 카풀은 그냥 카풀이 아니다
드라이버 중엔 카풀 앱을 쓰면서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좋은 동네 이웃을 찾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카풀 앱을 이용하다 이동 시간대도 비슷하고 관심사도 비슷해 점차 친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그러다가 연애 상대로 호감을 가지게 되어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걸 말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연애 상대를 찾기 위해 카풀 앱 드라이버가 되는 이가 많다면 승객 입장에서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 카풀 앱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같은 단순 '공유차량' '공유경제' 앱이 아닌 것이다.
내가 겪었던 사례는 특정 카풀 앱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생겨나게 될 수많은 카풀 앱, 나아가 수많은 공유경제 플랫폼 서비스에서 빈번히 나올 문제이다. 서로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누군가와, 간단한 목적을 위해 잠시 만나는 그 짧은 시간의 안전조차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끝없이 성장하는 공유경제 플랫폼 시장은 결코 모두를 위한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 벌써 수많은 카풀 앱에서 번쩍거리는 외제차를 끌고다니며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고, 앱스토어 평가엔 이 모든 세태에 대한 항의가 넘쳐나고 있다. 카풀 앱 회사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지금까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카풀 생태계는, 공유 차량 서비스는, 공유 경제 플랫폼은, 과연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카풀 앱을 쓰지 않기로 했다.